안녕하세요. 00구치소에서 수감 중인 000입니다. 저는 사실 작년 11월 09일에 3년간의 수감생활을 하고 출소하여 사랑하던 가족과 만났고, 사회생활을 바르고 성실하게 했어야 했는데 또다시 잘못된 행동을 하여 73일만에 구속이 되었습니다. 세 번의 생일을 수감시설에서 보냈는데… 올해는 정말 사랑하는 부모님과 보내고 싶었으나, 저의 잘못된 행동으로 헤어지게 되어 네 번째(32번째) 생일을 또다시 수감시설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 기준으로 생일까지 8일이 남았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어느덧, 출소하고 사회에 있었던 시간보다 재구속된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지난 삼년 동안 힘들게 절 걱정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바르고 성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갔어야 했지만 실망을 안겨드리게 되어 깊이 후회를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복귀를 할 수 있다면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가족사진 한번 찍어보고 싶습니다. 보통 편지 드릴 때 사랑한다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고, 접견 때도 얘기를 못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가
나는 2016년 한국에 들어왔다. 외국인은 아니고 가깝고도 먼 북한에서 넘어왔다. 북에 남은 가족들이 나 때문에 처형당했을 수도 있다. 가족 생사도 모른 채 한국에 왔으니 잘 살아야 하는데 이 교도소란 곳에 오니 더욱더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남들은 가족 접견이 당연하지만, 나에겐 꿈과 같은 일이다. 더시사법률을 통해 수용자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연한 가족 접견이 누군가에게는 꿈에서조차도 어려운일이라는 걸. 가족들에게 잘하시고 다들 건강하게 출소하세요. 북에 살아계시는지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생사도 모를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출소하고 이 마음 잊지 않고 부모님 몫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교도소란 곳에서 삼시 세끼 먹는 것조차 죄스럽습니다. 저를 건강하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교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목소리에도 위엄이 느껴지고 외모에도 근엄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나니 인정이 많으신 계장님이셨습니다. 눈이 크시고 미남형이지만 성격은 카리스마 있는, 기본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혼을 내시는 계장님. 구치소가 처음이라서 무섭고 생소했는데 701동 9실 룸메이트분들이 너무 좋고 잘 대해주셨습니다. 한 달 정도 생활을 해보니 이00 계장님도 너무너무 인자하시고 마음이 넓으신 분이라는 걸 느낍니다. 제가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해 옷을 잘 만들고, 옷 수선도 스스로 하는데 어느 날 바느질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입에서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노래를 흥얼거리게 됐습니다. 그때 계장님이 듣고는 지금 제정신이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저도 그때 너무 당황했습니다. 계장님께서 “여기 놀러 왔냐”고 크게 꾸짖었습니다.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저도 제 행동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계장님이 비싼 영양 두유를 먹으라 주시면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후 몇 번의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말로 주의 주시고 넘어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00 계장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교
젊었을 적에는 몰랐죠. 주위에서 제일 무서운 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던데 제가 이제 나이 먹어 보니 정말 실감이 납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사람들과 깊은 관계형성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지금 00교도소에서 일명 “법자”라는 이름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징역을 9개월 넘게 살고 있는데 이 법자라는 타이틀을 가지면 인간 대접 못 받습니다. 아참, 저 죄인이죠. 그러니까 같은 죄인이라도 쓰레기 취급합니다. 제가 아무리 100% 잘해도 법자는 30~50% 정도로만 사람 취급합니다. 쉽게 말해 이 나라가 자본주의 국가 아닙니까. 여기 직원들도 수용자를 볼 때 영치금 확인 먼저 하죠. 쉽게 말해 영치금이 신분이고 영치금이 많으면 징역 생활도 정말 편합니다. 내가 아무리 생활을 못 해도 다 용서가됩니다. 사회나 여기나 똑같습니다. 돈의 힘은 정말 무섭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여기서의 생활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필이면 여기 00교도소가 생긴 지 11년째 되어가는 새교도소라는 겁니다. 때문에 위탁공장도 얼마 없어 출역을 나가 영치금을 버는 것도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여기서 징벌방을 4번이나 가게 되었답니다. 영치금이 없다 보면 할 수 없이
노숙자들이 밖을 돌아다니다 사고를 쳐 감옥에 들어온다 봄,여름.가을도 아닌 겨울에만 다시 봄이 되면 세상 밖으로 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 노숙자들이 겨울에만 감옥을 찾는 건 찬 바람을 피해 온 게 아닌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교
문득, “1년이란 시간이 흐르면 사회에 있는 모두에게 잊혀진다”라고 적은 타 기관에 수용 중인 친구가 보 낸 편지에 내용이 떠오른다. 그런 말에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잊혀진다는 것 에 익숙해지기란 참 어렵다. 머리로는 생각한다. 이제 더이상 사회에서 소식은 기다리지 말자고 하지만, 편지 받을 시간이 오거든 마음에선 거래한다. 혹시 하고 편지를 들고 오는 직원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혹시 내 이름을 부를 것에 대비한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석 달, 여섯 달… 사회에 서의 소식이 점점 빈도가 잦아질 때마다 기 다리는 내 마음에 실망도 잦다. 난 아직 구속될 때의 그날, 그 시간에, 멈춰있 지만 벌써 계절은 돌고 돌아 구속될 때의 그리운 계절로 바뀌고 있다. 잊혀짐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있긴 할까. 아마 난 매일 기대하고, 실망하고를 반복할 테지만 그런 기대감 으로 또 하루를 기다리고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1년이 지났을 즈음에 모두에게 잊혀져도 난 매일 기 다릴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찾아올 테지. ○○○교
엄마~ 이곳에서 세 번째 겨울이 지났네. 벌써라고 해야할지 아직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번의 겨울만 더 헤어져 있으면 만나지 않을까싶네. 내가 보내는 예쁜 편지지는 방에 같이 지내는 솜씨좋은 언니동생들이 다 만들어서 그려준 거다. 꽃 그림 이쁘제~ 아끼다가 어버이날 엄마주려고 보냈당. 이쁜 우리 엄마 주름살 늘어나니까 이제 쓸데없는 걱정 고마해라. 돈이 얼마나 무서운건지 돈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엄마가 자꾸 얘기 안해도 여기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하나뿐인 내 새끼랑 떨어지면서 마음에 멍들게 하고 하나뿐인 엄마 가슴에 커다란 대못 박아 놓고 여기 와 있 는데 기나긴 세월 흩어져버린 시간 딸한테도 엄마한테도 어떤 행동과 마음으로도 보상 할 수 없다는 거 나도 안다. 앞으로 약속한대로 엄마 말 잘 듣고 다 의논하고 살게. 엄마도 지금 이 힘든 시간들 자꾸 가슴앓이 하지 말고 더 행복해지려는 갖춤이라 생각해도. 여기에 있어보니까 살아가는 게 정말 별 거 없었는데 늦게 후회해봐야 소용도 없지만 무슨 벼슬 할 거라고 내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아등바등 욕심내면서 살았나싶다. 엄마랑 토끼 같은 내 새끼 건강하고 평범하게만 살아도 내 맘에 행복만 있었음 되는 거
지금 인생의 고비에 서 있는 당신아 무언가를 쫓느라 고달픈 삶 속에 지친 당신아 막막한 현실에 잠 못 이루고 있는 당신아 이제 괜찮다. 이제 좀 멈추고 이제 좀 쉬자. 당신 참 애썼다. 지금의 멈춤은 더 나은 시작을 위한 행복의 씨앗일 뿐…. 우리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당신은 아직 성장 중이며 우리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라난다…. ○○○교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내 몸이 기억하는 습관같은 작은 몸짓이 언제나 외부에 벽을치고 있음을 요즘들어 부쩍이나 느껴집니다. 그리 좋아하지는 않아도 대놓고 싫어한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은연중 사람들을 가려본 것 같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내 사람이 아니면 등을 돌렸던 내 작은 몸짓이 다가설 기회조차 주지않았다고 말했던 어느 젊은 친구의 말이 떠올라 이젠 등돌림을 멈추고 모두를 품어보려 합니다. ○○○교
별도 따주겠다는 약속을 한 나는 육지를 떠나는 당신의 고운 손에 미안함만 안겨보냈습니다. 당신 보러가는 길은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창문에 빗금이 그어지네요. 미처 다주지 못한 사람 꽃다발에 실어 보내니 다시 만나는 날 활짝 웃으며 맞이해 주겠소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