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시사교양 프로그램 ‘읽다’가 이른바 ‘장미비디오 살인사건’을 다시 조명했다. 방송에는 서동주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남부교도소에 수감중인 수형자의 자필 편지가 공개됐다. 편지를 보낸 이는 무기징역이 확정돼 28년째 복역 중인 이민형 씨였다.
이 씨는 편지에서 “수사에 혼선을 준 점은 사죄하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며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으로 범인이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경식 PD가 “범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허위 자백을 하는 경우가 있느냐”고 묻자, 박준영 변호사는 “여러 이해관계나 심리 상태로 인해 허위 자백이 이뤄지는 사례는 분명 존재한다”며 “이번 사건은 기존 사건들과는 결이 다른 측면이 있어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건은 1998년 1월 대구에서 발생했다. 평범한 토요일 오후,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던 30대 여성이 여섯 살 아들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던 중 한 남성이 들이닥쳤고, 이 남성은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를 13차례 찔렀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이는 어린 아들뿐이었다.
그러나 수사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현장에서는 지문이나 DNA, 범행 도구 등 결정적 물증이 확보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이틀 뒤 인근에서 불심검문을 받던 탈영병 신분의 20세 이 씨는 경찰에 체포 당했다. 그리고 이 씨는 조사 약 12시간 만에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은 자백과 일부 목격자 진술을 근거로 그를 범인으로 특정했고, 군사법원 1심은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유죄 판단은 유지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의 증거였던 ‘자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방송을 통해 뒤늦게 진술을 번복하며 “수십 시간을 잠을 재우지 않는 조사 속에서 판단력이 흐려졌고, 수사관들이 알려준 내용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와 성추행이 있었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했다.
이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송됐고, 당시 수사관들은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일부 수사관이 폭행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수사 과정의 위법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옷을 벗게 한 뒤 촬영했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수사 기법을 넘어선 행위”라며 “경찰의 직무상 범죄로 평가될 수 있고, 그 경우 자백의 임의성이 부정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사정은 재심 사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은 자백의 내용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표창원 소장은 당시 진술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는 점을 두고 “영화 장면처럼 구성된 진술”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표 소장은 “비밀의 폭로가 없는 자백은 신빙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수사기관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이라면 증거로서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적 증거 역시 뚜렷하지 않았다. 이 씨의 가방에서 발견된 칼에서는 사용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고, 실제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특정되지 않았다.
이 씨는 병원에서 접이식 칼을 훔쳤다고 진술했지만 해당 의사는 분실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법의학 감정에서도 “10cm 칼로 11cm 깊이의 상처를 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도 도마에 올랐다. 피해자 아들은 법정에서 이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전문가들은 반복된 질문과 조사 과정이 기억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씨가 제시한 알리바이 역시 배척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건 당시 현장에서 약 6km 떨어진 만화방과 여인숙에 있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 만화방 장부에는 그의 대여 기록이 남아 있었다. 업주 역시 해당 기록이 본인 필체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자백 내용 중 흉기 묘사가 피해자 진술과 일치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혈흔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제기됐다. 체포 당시 경찰은 이 씨의 손톱을 채취해 혈흔 조사를 했지만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 이 씨의 손톱이 길어 혈흔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극미량의 혈흔조차 검출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 씨는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그는 편지에서 “진범을 단죄할 기회를 잃게 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표창원 소장은 이민형 씨 재심을 검토 중인 박준영 변호사의 의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지만 현재 드러난 정황은 허위 자백 사건의 전형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의 결백을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객관적 의문이 남아 있다면 재심을 통해 사실을 다시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다른 억울한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방송은 끝내 결론을 단정하지 않았다. 표 소장은 “이 씨가 범인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이 유지돼야 한다”면서도 “반대로 아니라면 진실은 다시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