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시설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이른바 ‘수발업체’들이 대거 폐업하거나 연락이 두절되면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 ‘먹튀’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도서 미배송뿐 아니라 스포츠토토 대리 베팅을 빌미로 한 거액 사기 정황도 다수 포착됐다.
<더시사법률>이 최근 2주간 접수된 수형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수발업체 36곳에 직접 연락을 시도한 결과, 이 중 31곳은 ‘없는 번호’로 확인됐다. 연락이 닿은 5곳 역시 “수형자들이 잠깐을 못 기다려서 그렇다”는 식의 유사한 해명을 내놓았다. 심지어 한 업체는 “고소를 하려면 해라. 경찰이 범죄자들 말을 믿어줄 것 같냐, 우리 말을 믿어줄 것 같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업체들의 실명은 법적 문제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편집자 주>
수발업체들이 최근 대거 폐업하거나 연락이 두절되며 이른바 ‘먹튀’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14일 <더시사법률>의 취재에 따르면 수발업체가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나 피해를 호소하는 수형자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문제의 원인은 최근 제도 변화에 따른 시장 구조의 급격한 붕괴다. 2024년 8월 ‘우송도서 등록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기존 수발업체 상당수가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실상 폐업 상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피해 제보가 들어온 36곳 중 31곳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수형자들의 피해 금액은 건당 수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200여 곳이 넘는 수발업체가 활동했으나, 제도 규제 이후 급속히 줄어들며, 다수 업체는 2024년 9월을 전후해 연락이 두절되거나 폐업했다는 공통점이 확인됐다.
수발업체는 2008년 11월 개그맨 권영찬 씨가 영등포구치소 수감 중 구상한 사업모델에서 출발했다. 권 씨는 억울한 고소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 후 무죄 판결을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 납품업체 ‘사랑솜’과 함께 ‘옥바라지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후 수발업체는 교도소 내 수감자들을 대신해 도서·잡지·조의금 전달, 중고차 판매 등 다양한 업무를 대행하는 ‘심부름 센터’ 성격의 서비스로 확대됐다. 특히 2013년 무렵부터는 재소자들이 출소 후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면서, 한때 월 2,000만~3,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업체도 존재했다.
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업체는 마약, 담배, 음란서적 반입 등 불법 행위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심지어 스포츠토토 대리 베팅 등 도박 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제도 개편의 계기가 됐다.
현행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47조 제2항에 따르면, 수용자가 신청한 도서는 유해 간행물이 아닌 한 반입이 허용된다. 하지만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실제로 유해 간행물로 지정하는 경우는 드물어, 음란서적 등도 사실상 반입이 가능한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법무부는 2019년부터 규제에 나섰다. 같은 해 11월, 수형자가 외부에서 도서를 반입할 경우 ‘수용자 우송도서 합리화 방안’을 통해 자비 구매만 허용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법률·외국어·수험서 등을 제외한 나머지 도서는 원칙적으로 우편이나 외부 반입을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2020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당 지침이 수용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하며 시행 중지를 권고했고, 법무부는 이를 철회했다. 이후 1인당 1일 5권까지 도서 반입을 재허용했다.
불법 도박사이트에 수감자 돈 베팅… 수발업체 사기 실태
우송도서 등록제 도입 후 줄폐업
도서 반입이 다시 허용되자 폐업했던 일부 수발업체들이 시장에 재진입했지만, 2023년 10월 법무부가 ‘음란도서 차단 대책’과 함께 ‘교정 인터넷편지 서비스’를 폐지하면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이어 2024년 8월 ‘우송도서 등록제’가 도입되며 이 같은 범법 행위가 크게 제한됐다. 우송도서 등록제는 교정시설 내 도서 발송 시 발송인을 사전 등록해야 하며, 1일 1기관당 5권, 1대의 컴퓨터로는 단 1명의 수형자에게만 발송이 가능한 방식이다. 예컨대 한 컴퓨터로 다른 지인을 등록해도 여러 수감자에게 동시에 발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24년 9월 대부분 수발업체가 이러한 제도적 규제에 업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도서 발송을 지연하거나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은 적립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업체가 폐업하면서 ‘먹튀’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10만 원 입금 시 5,000~1만 원의 적립금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수형자에게 선입금을 유도한 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폐업한 업체가 다수였다.
<더시사법률> 취재 결과, 전국 수십 곳의 경찰서에 고소장이 접수된 상태며, 피해액이 소액이라 고소를 포기한 재소자들까지 포함하면 실 피해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 고소장 접수 잇따라
더 심각한 문제는 ‘토토 대리베팅’을 빌미로 한 사기다. 수발업체 종사자 A씨는 본지에 “대부분의 업체는 실제로 베팅을 하지 않으며, 미적중이라 주장하거나 적중 시 잠적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수발업체는 교도소 생활을 경험한 재소자들이 출소 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돈을 잘 번다’는 말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광고비, 사무실 운영비 등 예상치 못한 지출에 직면하면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토토 베팅을 빌미로 사기를 치는 구조로 빠져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수발업체는 부업으로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새로 생기는 업체는 대부분 애초부터 사기 목적으로 설립되는 경우가 많고, 기존 업체들 역시 언제 잠적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덧붙였다.
<더시사법률>이 토토 대리베팅을 의뢰했다가 피해를 입은 수감자들의 고소장 3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수발업체는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정식 스포츠토토 구매처가 아닌 불법 도박사이트에 입금한 뒤 베팅을 진행하다가 자금을 모두 탕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불법사이트를 이용한 이유는 100만 원을 입금하면 10만 원 상당의 ‘보너스’를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소장이 접수된 부평경찰서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사건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제보자는 2,000만 원을 송금한 뒤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 변호인을 선임해 고소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 교정본부는 “수발업체의 불법 행위(불법 사행행위 베팅 주선, 음란도서 제작 및 판매 등)에 대응하기 위해 수용자 전자서신 시스템 개편과 수발업체에 대한 행정처분 의뢰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대표변호사는 “수발업체가 운영 도중 예상치 못한 자금난이나 제도적 규제 등으로 인해 폐업했다면 처음부터 사기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는 있다”면서도 “처음부터 수형자의 의뢰를 수행해 줄 의사 없이 의뢰비만 받았다면 사기죄가, 잔액을 반환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면 금액이 소액이라 하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 실제 업무 내역이나 돈이 흘러간 자금 흐름 내역을 보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규제는 필요, 대안은 없어
전문가들은 수발업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마땅한 대안 없이 시행되는 현재의 체제가 오히려 수형자의 정보 접근권 위협과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천주교 인권단체 강성준 활동가는 “법무부의 범법 사실이 있는 수발업체에 대한 제재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가족이 없는 장기수형자나 무기수형자들을 위해 별도의 대체 수단이 마련돼야 한다”며 “현재 교정시설에서 시행 중인 ‘월 1회 도서 구매’만으로는 실효성이 낮은 만큼, 구매 횟수 확대 등 보다 현실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불법 수발업체들에 대한 광고를 진행하는 기성 언론들 역시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본지가 모 스포츠신문에 실린 수발업체 광고를 분석한 결과, 다수 업체가 사업자등록이 없거나, 등록돼 있더라도 실제 업종과는 무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해당 신문 광고국은 “대행업체를 통해 들어오는 광고라 사업자 유무나 세금 신고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우송도서제 시행 이후 폐업한 수발업체 운영자 B씨는 “4년 수감 후 출소해 ‘수발업체가 돈이 된다’는 말만 믿고 시작했지만, 제도적 제한으로 인해 현실은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새로 생기는 수발업체는 출소자들이 제도 변화나 구조적 어려움을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사실상 사기”라며 “출소 예정자들은 수발업체 사업에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