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에 이어) 1심 판결이 나왔다. 다행히 피고인이 삽입했다는 부분은 무죄가 되었다. 경찰이 삽입을 했느냐고 조서에만 5차례 물었는데 그때마다 피해자는 없었다고 했었다. 그러다 사건 발생 6개월 뒤, 피해자 부친이 합의를 제안했다가 피고인이 거부한 이후에는 삽입이 ‘조금’ 있었다고 진술이 바뀌었고, 1년 6개월 후 법정에서는 ‘강압적으로 삽입’했다고 진술이 변했다는 우리의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13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판단해서 의제강간죄 미수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죄의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징역인데, 미수죄가 인정되었으므로 절반이 감경된 하한을 선고한 것이었다. 판결 이유를 보고 나와 영호 가족은 아연했다. 1심 판결은 피고인의 입장(피해자는 나이를 묻는 영호에게 “Y 중 3학년”이라고 말했고 그러자 영호는 “나는 K 고 3학년이야”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을 믿지 않는 근거에 대해서, 서로 다른 삶의 여정을 거쳐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서 둘 다 ‘지명 + 학년’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인사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부자연스럽고 연극 대본처럼 조작된 것 같다고
(지난 회에 이어) 나는 마지막 기일에 들어가 증인 한 명을 추가로 신청했다. 피해자는 인터넷에 섹스파트너를 구한다는 글을 올린 후 1달 동안 5명의 남자를 인터넷으로 만나 성관계를 했는데, 영호가 피해자를 만나기 1시간 전에도 또 다른 30대 초반의 남자를 만나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했다. 나는 이 남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남자는 이미 다른 법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내가 이 남자를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는 이 남자의 경우 피해자가 당시 12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16세 이상으로 오인한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2020년부터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의제강간죄로 인정하는 조항이 도입되었지만, 이 조항은 사건 당시 19세 이상 성인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17세였던 영호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영호 입장에서는 피해자가 13세 미만이라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 인정되기만 하면, 15세로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형법 제305조 제2항의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죄가 되는 것이었다. 당초 이 사건의 마지막 기일로 정해진 날에 내가 처음 들어가서 증
일전에 고객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고객은 내가 변호한 피고인의 어머니였는데, 그 피고인은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기소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생이던 영호(가명)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함께 한 동료 이민진 변호사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 시간이 좋았기에 다음에 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재판이 끝난 뒤에 변호인과 고객이 사적으로 만나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영호의 어머니와 계속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는 것은 영호의 재판 결과가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영호는 일부 무죄를 받았다. 나는 식사 자리에서 다시 한번 기대했던 결과를 내지 못해 송구하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진심으로 변론해 주신 것을 잘 안다며 격려해 주었다. 대신 우리는 잘못된 판결이 남긴 고통과 상처를 서로 위로했다. 어머니는 믿어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자신의 무고함을 믿어주지 않자 온 세상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듯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피고인들을 여럿 보았다. 사실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그 억울함을 제대로 알아줄 사람은 변호인뿐이다. 친구나 가족도 있겠지만 변호인만큼 사건의 내용과 그
많은 피의자나 피고인들이 자신의 변호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변호사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 내 사건에 관심이 없다,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개별 변호사의 자질도 관련이 있지만 그 근원에는 수임료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같은 수임료를 두고 변호사는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고 고객은 너무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임료에 대한 인식 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변호사의 보수 구조를 일반인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고, 공적인 성격도 있으니 이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해결 방법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로펌마다 사정은 같지 않지만, 상당수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들을 만나보면 수임료를 받으면 회사(로펌)에 납부해야 하는 돈이 60~70%라고 한다. 이 돈으로 회사는 어쏘변호사나 비서의 월급, 사무실 임대료, 마케팅비용, 자동차, 기타 관리비를 낸다. 로펌 서면의 마지막 장을 보면 변호사들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보통은 3~4명, 보통은 5~7명씩 된다) 이들이 그 남은 30~40%의 수임료를 나누어 가진다. 이중 사건을 수임해 온 변호사에게 30~50%를 주고, 남은 금액을 남은 변호사들이 나눈다. 가령
굳이 변호사 일이 아니라도 모든 일은 미리미리 일을 해 놓으면 좋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변호사 일은 더더욱 그렇다. 선고 전날 변론요지서를 제출하거나 항소이유서 제출 기한 마감일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는 것은 사실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런 경우는 대개 변호사가 마감 기일에 촉박해서, 그러니까 마감 기일 전날부터 이런 서면을 작성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시간에 쫓겨서 작성하는 서면의 품질이 좋을 리 없다. 좋은 서면을 쓰려면 기록을 여러 번 꼼꼼히 읽고, 관련된 다른 사례나 판결례를 광범위하게 조사해서 반영하고, 완성된 초안을 거듭 다시 보면서 고치고, 다른 사람의 피드백까지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마감에 쫓기면 이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판사로 일할 때 변호사가 변론 기일 전날 서면을 제출하거나, 선고 직전에 변론요지서를 제출하거나, 항소이유서의 마감날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거나, 서면 제출을 계속 미루다가 도저히 더 미룰 수가 없을 때 제출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는 판결 선고 전 일주일 전 또는 사나흘 전에 판결문을 다 써 놓았는데, 선고 전날에 변론요지서를 받으면 그것을 찬찬히 읽고 판결문에 반영하기가 어렵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갈 여유가 없어서 직원들과 배달의 민족(‘배민’)으로 유명 유튜버가 추천했다는 비싼 김밥(‘김밥계의 에르메스’라는 별명도 있다)을 3인분 시켰는데 달랑 2인분만 왔다. 직원이 바로 배민에게 얘기하고 1인분 금액 9천원의 환불을 요구했으나, 배민은 김밥집 사장이 아무리 연락을 해도 답이 없다고 한다. 배민 싸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 김밥집에는 우리와 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있었다. 주문한 양과 배달한 양이 불일치한다, 그 뒤로는 연락을 받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 찾아가서 항의하기 전에 빨리 환불을 해달라 등등. 오늘 직원들과 함께 어느 식당에 점심 먹으러 갔다가 직접 한번 그 김밥집에 가보자고 했다. 김밥집은 유리벽 내부가 조금도 보이지 않도록 초록색 썬팅으로 꽁꽁 싸매고 있었다. 왼쪽 구석에 고속버스 터미널 매표소 같이 작은 문이 나 있고 그 앞 테이블 위에 주문을 받아서 만든 김밥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 창구도 내부를 잘 볼 수 없도록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그 안을 힐끔 살펴보니 또 하나의 벽 위로 ‘출입엄금 – 이곳은 나의 사유지이므로 방해할 수 없음’이라는 취지의 글이 빨간색 손글씨로 적혀 있어서, 역시 뭔
우리나라의 수사와 재판은 서면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현실상 판사는 일주일에 수십 건의 사건을 재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쪼개서 만나고, 하나의 사건을 짧게는 반년, 길게는 1-2년씩 재판하며, 인사이동 때마다 판사가 바뀐다. 그러니 어느 한 기일에 한 순간 말을 잘 해서 좋은 인상을 주더라도 판사가 다 기억해서 재판에 반영하기 어렵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고 판결문을 작성할 시점에는 대부분 기억과 인상은 휘발되어 희미해지고, 사실상 대부분 기록에 적힌 글들만 보고 판결한다. 그래서 좋은 재판 결과를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록에 남아있는 글이다. 다른 글을 잘 안 보는 판사도 변호사 의견서는 꼼꼼하게 본다. 전관예우도 사라진지 오래라고들 하므로, 좋은 글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판사, 검사, 수사관의 마음을 1센티미터라도 더 움직이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한다. 나는 30년 동안 여러 종류의 글을 꾸준히 직접 써왔다. 대학시절부터 소설을 써서 ‘보헤미안랩소디’로 제10회 세계문학상을, ‘소설 이사부’로 제1회 매일신문 국제동해문학상을 받았고 장편소설을 4권 출간했다. 판사로서 10여년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