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포항교도소)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코흘리개 시절 초등학교 다닐 적에 내 아버지의 모습은 밤이 되어서야 뵐 수 있었습니다. 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 길로 학교에 등교하다가 동네 바닷가 방파제에서 그물 손질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5남매의 자식에게 배곯지 않게 하시려 당신은 배고픔도 잊은 채 거북등보다 더 거친 손으로 열심히 일만 하셨습니다.

 

행여 자식새끼들이 용돈이 없어 알사탕 하나 사 먹지 못할까 봐 힘들게 버신 귀한 돈을 손수건 속에 꼭 싸매어 둔 것을 저희 형제들에게 50원, 100원씩 손에 쥐여 주시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하시며 항상 웃으셨습니다.

 

정작 당신은 구멍 난 양말, 구멍 난 장갑 살 돈도 아껴 쓰시며 밤늦게 집에 오셔 어머니께 바느질로 꿰매게 하신 후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을 나가셨습니다. 그때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힘든 시기였고 우리 가정도 가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때론 일을 마치고 귀가하신 아버지의 몸에서 땀 냄새가 날 때마다 왜 그리도 싫어서 투정을 부렸는지...지금 생각하니 아버지의 땀에 젖은 냄새는 가장의 무거운 흔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이기에, 어머니이기에 부모님은 힘든 내색 없이 “너희 5남매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그 무엇인들 못하겠냐... 건강하게만 성장해다오.” 그때 부모님의 축 처지고 밤새 끙끙 앓으시던 그 모습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에 대한 따뜻한 깊은 사랑이 아니었는지...

 

내 나이 벌써 60대의 장년이 되어 보니 나 또한 내 자식을 위해 내 부모님이 희생하셨던 것에 단 10%라도 했었는지...

 

눈을 감고 상념에 빠지니 벌써 세상을 등지신 내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참사랑과 부모님의 흔적이 그리워집니다.

 

내 아버지, 아버지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실천하셨고 내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며 5남매를 위해 희생으로 성장시킨 이 세상 최고의 보석이자 고마우신 분입니다.

 

이 불효자식은 오늘도 내일도 부모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한 아들의 아버지로서 그 책임을 다한 뒤 내가 태어난 아름다운 작은 포구의 고향땅에서 부모님이 걸어가신 새 세상의 길을 따라 한 줌의 흙이 되어 삶의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부모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