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술래
교도소에서는 드물게 말끔하게 생긴 소지
들을 만난다.
나는 그 중 한명과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 : 야, 너는 잘생겨가지고 여기 왜 들어왔어?
소지 : 성 문제로요.
나 : 강간죄 이런거?
소지 : 예, 근데 강간이 아닌데 여자친구가 고소해가
지고 제가 사과했거든요, 그랬는데도 징역 먹었어요.
나 : 너가 정말 강간 안했다면 끝까지 무죄주장을 했어야
지 사과를 왜 해
소지 : 민사도 걸려서 돈도 물어주고 했는데 저도 지금은
사과한게 후회됩니다.
이 소지는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는데 외모나 언행도
필요이상으로 단정하여 교도관 및 재소자들로부터 평판
이 좋았다.
그 주장 그대로 믿자면 상당히 억울해 보인다.
사과는 감형의 요건도 되지만 유죄 인정의 증거도 된다.
나는 사회에 있을 때 모텔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CCTV 녹화 영상이 필요하다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개인정보 보호문제를 핑계로 그 부탁을 거절하였
다. 그랬더니 수화기 너머 그 남자는 애원하듯 내게 말하
였다.
“제가 경찰공무원 시험 합격해서 곧 임관을 앞두고 있는
데 성 범죄자로 몰리게 생겼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형님.”
울먹이는 듯 한 그의 말투에 누그러진 나는 일단 모텔로
와보라고 말한 뒤 그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한 남자가 와서 다짜고짜 주머니에서 지폐 수십
장을 내 앞에 내밀며 다급하고 간절한 말투로 자초지종
을 설명하였다.
나는 그가 준 돈을 받아 챙긴 후 그를 모텔 CCTV PC가 있
는 곳으로 안내하여 그가 원하는 영상 부분을 복사해주
었고 그는 연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모텔을 떠났다.
그 날 그가 복사 받아간 것은 전날 저녁 한 여성과 함께
모텔을 들어오는 그의 모습과 몇시간 뒤 함께 모텔을 나
가는 모습이 녹화된 영상이었다.
누가봐도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가 나가는 커플의 모습에
서 쉽사리 강간범죄를 상상하기에는 어려워보였다.
그 후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가
그 순간을 적절히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모텔 입구 CCTV 영상은 보존기간이 짧은 경우 한달 정도
지나 자동 삭제되는데 그는 위기의 순간에서 쉬운 사과
보다는 무죄의 증거를 찾아 헤매는 술래가 되었다.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