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 형사 J는 수많은 강력사건을 해결해오며 다양한 범인들과 마주했다. 그중에서도 2019년에 발생한 살인사건은 형사 생활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아 있다.
사건의 중심에는 주식 투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B 씨와 그의 부모, 그리고 범인 A 씨(남성, 30대)가 있었다. 당시 B 씨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주식 투자로 부자가 된 자신의 화려한 삶을 과시했지만, 동시에 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B 씨가 구속으로 집을 비운 사이, 범인 A 씨는 B 씨의 부모를 찾아가 그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이 사건은 2019년 3월 16일, 부모와의 연락에 의구심을 품은 B 씨의 동생 C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형사 J를 포함한 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이 현장에 즉시 투입되었고 단 22시간 만에 범인을 검거하기에 이른다.
이 끔찍한 살인사건의 시작은 2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C 씨는 당시 어머니로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아버지의 친구가 돌아가셔서 부부가 급히 일본에 가봐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전화 통화는 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귀국이 늦어진다”라며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전화는 여전히 받지 않았고 점점 더 귀국 날짜를 미루고만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의 사정이라 생각했던 C 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결국 의심을 견디지 못한 C 씨는 3월 16일 경찰에 해당 상황을 경찰에 신고했다.
C 씨는 안양 동안경찰서 실종수사팀과 지구대 경찰, 그리고 119 구조대와 함께 부모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경찰들은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뜯어내고 내부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집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의 인기척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공기 중에 스며들어 있는 역한 냄새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경찰들이 가장 먼저 수색한 곳은 안방의 옷장이었다.
조심스럽게 열어 본 옷장엔 특별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 작은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는 한층 더 짙어졌고 경찰들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그리고 작은방 옷장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무언가 묵직한 물체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찰들과 C 씨는 동시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들 앞으로 떨어진 것은 나일론줄로 단단히 묶인 사람의 시신이었다. 시신은 심하게 부패되어 가스로 복부가 팽창한 상태였고, 머리는 검은 비닐봉지로 덮여 있었다. 시신은 B 씨와 C 씨의 모친 D 씨였다.
당직 근무 중이었던 형사 J와 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은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현장으로 출동했다.
형사 J가 조심스럽게 시신 얼굴을 덮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벗겨냈다. 시신의 얼굴은 청테이프로 겹겹이 감겨 있었고, 입에는 검정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오랜 부패로 인해 얼굴의 원래 형태는 알아볼 수 없었다. 시신의 팔과 다리에는 여러 차례 칼로 찔린 듯한 깊은 상처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주변으로 혈흔 흔적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범인이 락스 등을 활용해 혈흔을 제거한 것으로 예상됐다.
강력4팀은 과학수사팀에 현장감식을 맡기고 신고자이자 피해자의 아들인 C 씨의 참고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C 씨가 주식 투자자로 활동하다 사기 혐의로 구속된 B 씨의 동생이라는 게 밝혀졌다.
C 씨 역시 형의 사업을 돕고 있었고 사망한 모친 D 씨는 B 씨의 유럽 법인에 명의를 빌려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식 투자자 B 씨의 성공신화 이면에는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한 투자 사기가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원한 범죄의 가능성이 고려되었다.
또한 B 씨가 세간에 재력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단순히 금전적 이익을 보린 강도 살인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형사 J와 안양 동안경찰서 강력4팀의 형사들은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초기 조사에서는 살인의 명확한 동기를 밝힐만한 결정적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참고인 조사 중, C 씨가 내놓은 진술이 미궁 속에 갇힌 사건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C 씨가 어머니와 만난 마지막 날이 2월 25일이었고, 그날 그는 형 B 씨가 타던 고가의 외제차를 15억 원에 매각한 뒤, 그중 5억 원의 현금을 가방에 담아 어머니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살인사건 현장에서는 그 돈 가방이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팀은 곧바로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CCTV를 역순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월 25일 오후 4시경, C 씨의 진술대로 C 씨가 큼직한 가방을 들고 어머니 D 씨와 함께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형사들은 이 장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이상 점을 발견했다.
C 씨와 D 씨가 아파트 계단을 오르기 약 10분 전, 영상 속 낯선 인물들이 포착된 것이다.
CCTV가 지켜보고 있던 두 명의 남자는 아파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한 손에는 락스통을 들고 있었다. 뒤이어 일행으로 보이는 또 다른 두 명의 남자도 계단으로 올라갔다.
결국, 네 명의 남자가 아파트 계단을 이용하 위층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형사 J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들이 사건과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는 베테랑 형사의 직감이 발동한 것이다. 이어 확인한 영상에선 형사 짐작이 아니라 확신을 얹을 만한 장면들이 담겨있었다.
오후 6시경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남자를 제외한 세 명의 남자가 역시 계단을 이용해 우르르 내려와 서둘러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로부터 40분이 지난 6시 40분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남자 역시 계단으로 내려왔다.
형사 J는 집중력을 더욱 끌어올리며 영상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다. 네 명의 남자는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었다. 그들은 피해자의 주거지가 있는 층의 복도로 이동했다가 내려왔고,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렉스턴 차량 앞에서 다시 모였다.
늦게 빠져나온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남자가 차량 문을 열고 소지품을 건네자, 남은 세 명의 남자들은 소지품을 받아 들고 택시를 잡아타는 방식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형사 J가 확인한 CCTV 영상 속 남자들은 모두 초초함과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 듯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과 정황들이 하나같이 이들이 살인범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재는 이들이 철저히 신원을 감추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까지 눌러써서 체격과 옷차림만 확인할 수 있었고, 얼굴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팀이 그들의 행적을 쫓기 위해 아파트 주차장에서 빠져나간 렉스턴 차량의 동선을 추적했지만, 사건 발생 이후 보름이라는 시일이 지나면서 중간에 CCTV가 끊겨 버린 상황이었다. 수사팀은 남아 있는 단서에 집중해 범인을 추적하기로 했다.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락스통을 들고 있던 남자의 행동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의 중심에 있었고, 나머지 세 명과도 확실히 구분되는 행동을 보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장면이 잡혀 있었는데,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이 남자가 혼자 다시 피해자 부부의 주거지로 향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집에서 C 씨가 어머니에게 주었다던 돈 가방을 들고 유유히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게다가 C 씨가 예상치 못한 진술을 꺼내놓으면서 사건은 점점 더 실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C 씨는 수사팀에 범인으로 의심 가는 인물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가 바로 A 씨라는 남자인데 어머니의 소개로 직접 만나본 적도 있다고 했다. C 씨가 A 씨를 처음 만난 건 3월 초였다.
수사팀은 이 진술에서 섬뜩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팀의 추정대로라면, D 씨는 이미 2월 말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C 씨에게 A 씨를 소개했으며,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도 A 씨가 C 씨와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3월 초, C 씨는 일본에 머물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 D 씨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은 다소 뜻밖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E 씨의 친구 아들로 요트 사업을 하는 A 씨를 소개해 주겠다며 A 씨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직접 알려주었다. “한번 만나보라”는 권유와 함께였다.
C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A 씨와 만나기로 하였고 날짜는 3월 13일로 정했다. 다만 A 씨는 무슨 이유에선 지 혼자 나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C 씨는 평소 어떤 자리든 동행했던 운전기사와 함께 약속 장소에 나갔고 A 씨와의 저녁식사는 별다른 문제 없이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헤어지기 전 A 씨는 C 씨에게 특별한 파티를 준비 중에 있으니 초대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하게 “그때는 꼭 혼자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C 씨는 당시 이 만남을 단순한 소개 자리로만 생각했지만 뒤늦게 모든 상황이 수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C 씨는 A 씨가 어머니인 척 위장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후에도 어머니 D 씨의 이름으로 이상한 메시지가 계속해서 도착했다. 그중 하나는 좋은 미나리를 구해 경기도 외곽에 있는 비닐하우스에 보관해두었으니 혼자 가서 찾아오라는 내용이었다.
형사 J는 A 씨가 사망한 D 씨의 휴대폰을 이용해 상황을 교묘히 조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D 씨의 휴대폰 발신 내역을 확인하던 중, 3월 8일 오전 휴대폰 사용이 잡힌 기지국 위치가 인천국제공항이고 발신번호가 로밍센터였던 것을 발견했다.
혹시라도 용의자가 해외로 도주한 흔적일까봐 수사팀 모두가 긴장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C 씨의 진술이 상황을 새롭게 만들었다. 3월 8일 오전 11시경, C 씨는 어머니 전화번호로 메시지 하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메시지는 다름 아닌 국제전화 매너콜 문자 메시지였다.
살인범은 D 씨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해외에서 작업을 벌인 것으로 보였다. 국제전화 메시지와 로밍센터의 흔적은 살인범이 고의적으로 D 씨의 생존을 가장하려고 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살인범으로 의심되는 A 씨가 잠시 해외에 나갔다가 국내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높았다.

형사 J는 팀원들과 함께 3월 16일 밤 11시 인천국제공항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그리고 3월 8일 오전 6시경의 주차 기록에서 형사들에게 익숙한 렉스턴 차량의 주차 기록을 확인했다.
사건 현장인 안양시 동안구 아파트에 주차됐던 그 차량이었다. 이어 공항 내 CCTV를 뒤져 A 씨로 추정되는 남자가 F창구에서 발권하는 장면도 찾아냈다. 형사 J는 주저하지 않고 이 장면을 캡처해 C 씨에게 전송했다. 곧 C 씨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형사들이 찾은 이 남자가 바로 C 씨가 말했던 A 씨였다.
다음 주, 형사 J와 유명인 부모 살인범(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