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물품의 명의자가 아니더라도, 국내 반입 과정을 주도했다면 관세법상 ‘물품을 수입한 자’로서 밀수입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추징금 21억4733만 원을 선고하고, 형 집행을 3년간 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전자상거래 소매 업체를 운영하며 해외에서 들여온 물건을 국내 구매자들에게 판매했는데, 이 과정에서 적법한 수입 신고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그는 수입 물품은 원칙적으로 세관장에게 신고해야 하지만, 본인이 사용할 예정이거나 견본품에 해당하는 물건 중 150달러 이하 가격일 때는 수입 신고를 생략할 수 있다는 관세법 규정을 악용해 824회에 걸쳐 원가 합계 13억 원 상당에 이르는 의류 등을 밀수입했다.
또 수입품 가격을 실제 판매 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신고하는 방식으로 관세 2,028만 원을 내지 않기도 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물품의 명의상 화주가 아니므로 관세법상 ‘수입한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내 반입 과정 전반이 피고인 주도로 이뤄졌으며, 수취인으로 등록된 국내 구매자들은 통관 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자기 책임 하에 실질적인 수입 행위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관세법 처벌 조항 중 ‘세관장에게 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물품을 수입한 자’는 미신고 물품의 수입화주나 납세의무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통관절차에 관여하면서 밀수입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 등을 주도적으로 지배해 실질적으로 수입행위를 한 자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때 실질적인 수입행위자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는 물품의 수입 경위, 실제 수입 내지 통관 절차나 과정에 지배 또는 관여한 방법과 그 정도, 관세의 납부 방법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심은 이 사건 처벌 규정의 행위 주체가 ‘화주’에 한정되지 않음을 전제로 해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며 원심 판단에 관세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결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