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들어가서 먼저 자."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엄마의 목소리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늘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엄마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입에 댔고, 취할 때마다 할머니를 괴롭혔다. 악몽 같은 날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할아버지를 더욱 원망했다. 할아버지만 없었다면 할머니는 행복했을 거라고. 그럼에도 엄마는 매년 할아버지를 찾아갔고 난 그게 끊어낼 수 없는 잔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경주의 한 관광지를 가꾸는 일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술을 마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없는 허전함을 이렇게 푸는 거냐며 할아버지를 자주 나무랐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엄마와 이모, 삼촌 모두 울지 않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장례식장이라니.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엄마와 이모가 눈물을 터트렸다. 모든 조문객을 돌려보낸 뒤, 갑작스럽게 홀로 떠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차였다.
말을 하지, 왜 그렇게 외롭게 갔대? 엄마한테 얼마나 잘못했는지 생각하느라 우리 생각은 못 한 걸까. 왜 그렇게 미련하대? 끝까지 밉게…. 한참 우는 엄마와 이모를 보며 나는 애증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이제는 같은 경험을 떠올려도 이 안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살아오며 가볍게 여겼던 감정들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는다는 것. 그때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몰랐다. 겉으로만 보고 있었기에 그 마음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깊게 할퀼 만한 행동을 했다. 내가 아둔해서 피해자분들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로 인해 고통받으신 분들께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내 입장이 아닌 타인의 삶과 마음을 헤아리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