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 국선변호인 교체... 절차는 있어도 ‘재판부 재량’

국선·전담·피해자 국선변호사 달라...
국선변호인 교체권, 법률로 보장 안돼
불성실 국선 감시, 평가 시스템 마련돼야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사선변호인 선임이 곤란한 피고인을 위해 마련된 국선변호 제도는 형사재판에서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헌법적 장치다.

 

그러나 국선변호인과 국선전담변호인, 그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선변호사 등 제도 간 구분이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제도 운영 과정의 정보도 제한적이어서 혼선을 겪는 경우가 많다.

 

<더시사법률>은 6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질의를 통해 국선변호 제도의 구조와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국선변호 제도는 필요적 국선변호와 청구에 의한 국선변호로 나뉜다.

 

필요적 국선변호는 형사소송법 제33조 제1항에 따라 피고인이 변호인 없이 다음 사유에 해당할 경우, 법원이 피고인의 의사나 경제적 사정을 불문하고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그 사유로는 피고인이 구속된 경우, 미성년자, 70세 이상, 농아자, 심신장애 의심자,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 징역·금고형 해당 사건 등이 포함된다.

 

청구에 의한 국선변호는 피고인이 경제적 곤궁 등을 이유로 법원에 선정을 신청하는 방식이다. ‘국선변호에 관한 예규(재형 2003-10)’ 제6조에 따라 월평균 수입이 270만 원 미만이거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생계·의료·주거급여 수급자, 기타 경제적 곤궁으로 사선변호인 선임이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피고인은 소득 관련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법원은 공소장과 생활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면 국선변호인을 배정한다.

 

국선변호사는 성폭력범죄 등에서 피해자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검사가 신청하고 법원이 지정하는 제도로, 국선변호인이나 국선전담변호인과는 대상, 선정 주체, 역할 모두가 다르다.

 

국선변호인은 일반 국선변호인과 국선전담변호사로 구분되며 배정 방식이 다르다. 일반 국선변호인은 각급 법원이 매년 초 사무소 소재지를 기준으로 작성한 예정자 명부를 바탕으로 재판부에 전속시켜 무작위 또는 순차 배정한다. 반면 국선전담변호사는 법원과 계약을 맺어 특정 재판부의 국선사건만 전담하고, 지정 재판부에서 우선적으로 선정된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피고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부분 중 하나다. 한 수형자는 <더시사법률>에 “국선변호인에게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고, 접견도 한 번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한 가족들 사이에서도 “국선변호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불친절하다”는 불만이 빈번히 제기된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형사소송규칙 제18조, 제21조에 따라 국선변호인이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으면 선정을 취소할 수 있고, 불성실한 직무 수행이 반복되면 대한변호사협회장 또는 지방변호사회장에게 통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선변호인의 직무는 재판장이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평가하며, 그 결과는 다음 해 예정자 명부 작성에 반영된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변호인이 법정에 계속 출석하지 않거나 사건 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활동조차 하지 않는 등 문제가 확인되면, 법원은 직권으로 국선변호인을 교체하거나 피고인의 신청을 받아들일 수 있다.

 

피고인은 교체를 원할 경우 그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며, 법원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국선변호인을 배정한다. 다만 교체가 잦아 재판 진행이 지연되지 않도록 합리적 범위에서만 허용된다.

 

문제는 변경 신청이 가능하더라도 이는 절차적 가능성일 뿐 법률상 권리로 명문화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형사소송법에는 국선변호인 변경 청구권이 규정돼 있지 않고, 형사소송규칙 역시 상위법이 아닌 대법원규칙에 불과하다. 변경 신청은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허가되므로 결정은 전적으로 법원의 재량이다.

 

구속 피고인들 사이에서는 ‘변호인 교체 요청이 재판부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부담감에, 불만이 있더라도 제도 활용에 소극적인 피고인들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변경을 원할 경우, 단순한 불만 수준이 아닌 방어권 행사에 실질적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구체적인 사유를 소명해야 한다.

 

실제로 국선변호인이 직무를 다하지 못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교체한 사례도 있다. 지난 23년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의 피고인 최윤종 씨 사건에서, 기소 이후 첫 공판 전까지 변호인의 접견이 없었고 사건기록 열람도 이뤄지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입장이 엇갈리는 장면까지 발생하자, 재판부는 해당 변호인을 직권 해촉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한편, 국선변호인이 피고인에게 사선 선임을 유도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법원행정처는 “직무 불성실로 판단될 경우 형사소송규칙 제21조에 따라 감독·제재 조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역시 최종 판단은 개별 재판부의 재량에 따른다.

 

피고인의 사정 변경 등으로 국선변호인에서 사선변호인으로 교체되는 경우, 국선변호인의 보수는 사건 수행 정도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단순 선임만으로 전액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며, 실질적인 수행 내역이 반영된다. 2024년 기준 사건당 보수는 50만~55만 원 수준으로, 공판 이후 교체되면 실제 수행한 정도에 따라 보수가 산정된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물론 국선변호인 변경 신청권을 법률로 보장할 경우 이를 악용해 소송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국선변호인 변경 신청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2017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실제 개정까지 이어지지 못한 배경에도 이러한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국선변호인의 성실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피고인에게 돌아간다”며 “형사소송규칙상 변경 신청 절차가 존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좌우되기 때문에, 국선변호인의 직무 수행에 대한 외부적 감시와 실질적 평가 시스템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