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확정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을 앞두고 헌법재판소가 제도 운영 방향과 준비 상황을 공개했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 이후 ‘사실상 4심제’라는 비판이 제기되지 않도록 제도 운용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일 헌법재판소는 서울 종로구 헌재 별관 브리핑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판소원 제도의 취지와 준비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손인혁 헌재 사무처장이 참석해 제도 운영 방향을 소개했다.
손 처장은 “재판소원 도입으로 이른바 ‘4심제’로 비칠 수 있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다”며 “법원과 헌재가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해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소원은 공권력 행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국가 권력이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하지만 국민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헌법적 통제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심급제도와 재판소원이 함께 작동하면 기본권 보호 체계가 보다 촘촘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소원 제도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공포돼 관보에 게재되는 시점부터 시행된다. 공포 시점은 빠르면 이번 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법원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0일 이내 헌재에 재판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법 시행 이전에 확정된 판결이라도 시행 이후에는 청구가 가능하다.
심판 대상은 원칙적으로 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이다. 1심·2심·3심 판결 모두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상소 절차가 남아 있음에도 이를 거치지 않고 헌재에 바로 재판소원을 제기하면 보충성 원칙 위반으로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실제 심판 대상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가 재판소원 심판을 통해 해당 판결을 취소할 경우 판결의 효력은 소급해 사라진다. 다만 사건을 어느 심급에서 다시 심리할지는 법원이 판단하게 된다.
재판소원 제기만으로 판결 효력이 자동 정지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 사건의 경우 형 집행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헌재가 가처분을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집행 정지 등 잠정 조치가 가능하다.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 이후 연간 접수 사건이 약 1만 건에서 1만5000건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상당수 사건은 요건 심사 단계에서 각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손 처장은 “헌재는 법원의 사실 판단이나 법률 적용을 다시 심리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헌법적으로 중요한 쟁점이나 권한 문제를 중심으로 심리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소원 제도는 기존 헌법소원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 평가된다.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 행사로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법원의 재판’을 원칙적으로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이 때문에 법원의 확정판결이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도 헌법적 통제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법원의 확정판결도 일정한 요건 아래 헌재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그동안 판례를 통해 재판소원 금지 원칙에 제한적인 예외를 인정해 왔다. 헌재는 위헌 결정된 법률을 법원이 그대로 적용해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의 경우 예외적으로 헌법소원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후 위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 등으로 그 범위를 일부 확대해 왔는데, 이번 제도 도입은 이러한 판례 법리를 입법적으로 정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는 제도 시행에 대비한 내부 준비도 진행하고 있다. 재판소원 사건 번호는 기존 헌법소원과 동일하게 ‘헌마’ 체계를 사용하기로 했다. 또 사건의 적법 여부를 먼저 검토하는 전담 사전심사부를 구성해 약 15년 이상 법조 경력을 가진 헌법연구관 8명이 심사를 맡을 예정이다.
행정적인 준비도 이어지고 있다. 헌재는 약 10명 규모의 행정준비단을 꾸려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따른 행정 절차와 운영 체계를 점검하고 있으며 사건 접수와 심판 절차에 필요한 규칙 개정도 법안 공포 시점에 맞춰 시행할 계획이다.
전자 접수 시스템 구축도 완료됐다. 헌재 홈페이지에는 재판소원 청구 절차와 작성 방법이 안내될 예정이며 전화와 방문 상담을 위한 안내 자료도 마련된다.
재판소원 제도 시행이 임박하면서 법조계에서도 대응 준비가 시작됐다. 특히 대형 로펌들은 헌재 출신 변호사를 중심으로 관련 사건 대응 체계를 정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는 분위기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주요 로펌들은 재판소원 대응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거나 헌재 근무 경력이 있는 변호사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이 향후 헌법소송 시장 확대와 함께 법률 서비스 시장 구조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