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강도상해죄로 기소됐는데, 강도 혐의는 무죄가 나오고 상해죄만 유죄로 인정될 수 있습니까. 검사가 공소장을 바꾸지도 않았는데요.” 형사재판에서 종종 문제 되는 질문이다.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 전체가 그대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그 안에 포함된 더 가벼운 범죄사실은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법원이 공소장 변경 없이 그 축소된 사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형사소송의 출발점은 공소장이다. 법원은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사실에 대해서만 심판할 수 있다. 이를 불고불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법원이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사실을 임의로 심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과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면, 원칙적으로는 검사가 공소장 변경 절차를 통해 심판 대상을 바꿔야 한다. 피고인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혐의와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방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은 일정한 경우 공소장 변경 없이도 법원이 ‘축소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축소사실이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보다 범위가 좁거나 법정형이 가벼운 범죄사실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살인죄의 공소사실 안에는 폭행치사죄가 포함될 수 있고, 강도상해죄의 공소
특수협박이나 폭행 사건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했다”는 진술이다. 실제 형사사건 가운데 상당수는 치밀한 계획범죄라기보다 말다툼이나 감정 충돌이 격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기준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행위의 위험성이다. 특히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상대방의 생명·신체에 직접적인 공포를 느끼게 한 경우에는 단순한 다툼을 넘어 중대한 범죄로 평가될 수 있다. 한 사례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며 동거하던 사이였다. 주변에서도 두 사람이 가까운 장래에 부부가 될 것으로 여길 정도로 관계가 깊었다. 하지만 말다툼이 격해지면서 사건은 형사절차로 이어졌다. 피고인은 주방에 있던 식칼을 들고 피해자에게 다가가 위협적인 행동을 했고, 언쟁 과정에서 폭행까지 이어졌다. 공포를 느낀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형법상 특수협박은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킨 경우 성립할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실제 상해가 발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상대방이 현실적인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면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 식칼과
Q1. 최근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사기죄와 함께 범죄단체가입죄가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경우와 범죄단체가입죄까지 인정되는 경우는 어떻게 구별되나요? A1.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단순 사기 사건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조직적·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범행 구조가 확인되면서 범죄단체가입죄가 함께 적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사기죄는 피해자를 속여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그 과정에 가담한 경우 문제 됩니다. 반면 범죄단체가입죄는 개별 사기 범행 자체보다 그 범행을 가능하게 한 조직의 존재와 그 조직에 가입하거나 활동한 행위가 별도로 문제 됩니다. 법원이 범죄단체성을 판단할 때 보는 핵심은 조직의 명칭이나 사무실 존재 여부가 아닙니다. 일정한 지휘·보고 체계가 있었는지, 역할이 나뉘어 있었는지, 범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구조였는지가 중요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보통 총책, 관리책, 모집책, 유인책, 전달책, 인출책, 통장 관리책 등으로 역할이 세분화됩니다. 각자가 맡은 기능은 다르지만, 피해자를 속이고 돈을 이동시키는 하나의 범행 구조 안에서 움직입니다. 이러한 역할 분담과 지시
형사사법의 양형 저울은 종종 역설적인 방향으로 기운다. 실제 피해자가 발생한 강력범죄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를 통해 선처의 기회를 얻는 반면, 구체적인 피해자가 없는 경우 피고인은 용서를 구할 대상조차 없이 획일적인 처벌의 잣대 앞에 놓인다. 특히 음주 운전과 같이 사회적 비난이 거센 범죄일수록 이러한 역설은 더욱 두드러진다. 사회적 안전을 위한 엄벌의 필요성과 개별 사건의 구체적 타당성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정의의 저울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 형법은 범죄를 ‘실제로 법익을 침해한 경우(침해범)’와 ‘법익 침해의 위험만으로 성립하는 경우(위험범)’로 나눈다. 폭행, 상해, 사기 등 범죄 대부분이 피해자의 신체나 재산에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해야 성립하는 ‘침해범’이다. 반면 음주 운전은 교통사고라는 실제 결과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대표적인 ‘추상적 위험범’이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라는 중대한 사회적 법익을 선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다. 이러한 입법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주 운전이 초래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에 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
Q. 안녕하세요. 강간죄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드립니다. 물리적 강제력 행사나 저항의 흔적 없이 피해자 진술 위주로만 강간죄가 인정될 수 있는지, 피해자가 제3자에게 한 말이 법정에서 어떤 증거력을 갖는지, 폭행 전과와 수년 전 유사 전과가 있는 경우 양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안녕하세요. BK파트너스 대표 백홍기 변호사입니다. 궁금해하시는 점들에 대해, 법률 전문가가 아닌 분들도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물리적인 폭행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는데도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강간죄가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강간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은 두 사람만 있는 은밀한 공간에서 발생하여 목격자나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신빙성)를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만약 피해자가 사건 초기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진술하고, 당시 상황이나 감정을 직접 겪지 않고서는 꾸며내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그 내용에 비합리적인 부분이 없다면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에 무게를
요즘 판사들 사이에서 ‘몸 사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혹시라도 법왜곡죄로 고발당할까 봐 조금이라도 재량이 필요한 판단은 피한다는 것이다. 2026년 3월 12일, 사법 신뢰 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법왜곡죄’가 신설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120명에 가까운 법관과 검사가 고발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하는 사법권력의 남용을 막겠다는 숭고한 취지가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왜곡죄 도입 취지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관이나 검사가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법을 왜곡하여 적용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권 유지를 위해 법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집행되었던 아픈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러한 제도적 통제 장치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법왜곡죄는 사법권 독립이라는 원칙이 사법기관의 ‘권력 남용’을 위한 방패막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다. 문제는 이 정의로운 칼이 현실에서 누구를 향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법왜곡죄라는 칼날의 위협은 부
성범죄 사건에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피해자 진술 외에 뚜렷한 물증이 없는 사건도 있고 무죄를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법원이 피해자의 대응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비정형적 반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성범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개념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판결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난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행동을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 법리는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피해자가 범행 직후 가해자에게 평온한 메시지를 보냈다거나 신고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을 배척하는 것은 성범죄 피해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사건마다 다르며 일정한 유형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점도 여
“피해자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유죄가 나올 수 있습니까?” 성범죄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자주 제기하는 질문이다. 성범죄는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나 명확한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역시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피해자의 성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범행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 9. 7. 선고 2020도8016 판결).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면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정말 몰랐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집행유예는 가능할까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수용시설의 벽 앞에 선 이들은 이 질문을 수없이 되뇌고 있을 것이다.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현혹되었을 뿐이고, 통장 하나를 빌려주었을 뿐인데, 사건의 전모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현실 앞에서 억울함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조직형 재산범죄 사건의 항소심을 오랫동안 수행하며 분명히 확인한 사실이 있다. 같은 범죄에 연루되었더라도 항소심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결코 같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원심의 형을 그대로 감내하지만, 항소심은 1심의 단순한 반복 절차가 아니다. 특히 보이스피싱 사건의 항소심은 범행을 부인하는 데 그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떠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를 다시 묻는 마지막 절차에 가깝다. 전략은 판결 이후가 아니라 수감된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첫째, 자신의 역할이 과대평가되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1심에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태도가 항소심에서 반드시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심 판결이 피고인의 가담 정도나 범행 내
PD: 변호사님, 오늘은 부부가 동시에 투자 사기를 당한 사건의 대법원 판례를 가져왔습니다. 합산해서 6억에 가까운 금액을 사기당했다고 하는데요. 개요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백변: 안녕하세요, BK파트너스 백홍기 변호사입니다. 네, 이 사건은 토지 분양 투자 사기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부부에게 토지를 분양하면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속였고, 남편이 1억원, 아내가 4억7500만원을 각각 송금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변제 능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대법원까지 다툰 핵심 쟁점은 이 행위를 하나의 사기죄로 볼 것인지, 두 개의 사기죄로 볼 것인지였습니다. PD: 각자 명의로 송금했는데, 그 구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백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정경제범죄법은 사기 금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각각 독립된 사기죄로 본다면 1억원과 4억7500만원으로 나뉘어 가중처벌 기준에 미치지 않습니다. 반면 하나의 사기죄로 보면 총액이 5억7500만원이 되어 가중처벌 대상이 됩니다. PD: 그렇군요. 그럼 일반적인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백변: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여러 명이면 각 피해자에 대해 별도의 사기죄가 성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