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에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뒤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피해자 진술 외에 뚜렷한 물증이 없는 사건도 있고 무죄를 뒷받침할 정황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법원이 피해자의 대응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비정형적 반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성범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어야 할 개념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판결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난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행동을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 법리는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피해자가 범행 직후 가해자에게 평온한 메시지를 보냈다거나 신고가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을 배척하는 것은 성범죄 피해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판단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사건마다 다르며 일정한 유형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점도 여
“피해자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유죄가 나올 수 있습니까?” 성범죄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자주 제기하는 질문이다. 성범죄는 사건의 특성상 목격자나 명확한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재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 판단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 역시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다.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방식이 피해자의 성격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범행 이후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 9. 7. 선고 2020도8016 판결). 미성년 피해자의 경우에도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다면 신빙성을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정말 몰랐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집행유예는 가능할까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수용시설의 벽 앞에 선 이들은 이 질문을 수없이 되뇌고 있을 것이다.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현혹되었을 뿐이고, 통장 하나를 빌려주었을 뿐인데, 사건의 전모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현실 앞에서 억울함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조직형 재산범죄 사건의 항소심을 오랫동안 수행하며 분명히 확인한 사실이 있다. 같은 범죄에 연루되었더라도 항소심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결코 같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원심의 형을 그대로 감내하지만, 항소심은 1심의 단순한 반복 절차가 아니다. 특히 보이스피싱 사건의 항소심은 범행을 부인하는 데 그치는 자리가 아니라 어떠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를 다시 묻는 마지막 절차에 가깝다. 전략은 판결 이후가 아니라 수감된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다. 첫째, 자신의 역할이 과대평가되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1심에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태도가 항소심에서 반드시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심 판결이 피고인의 가담 정도나 범행 내
PD: 변호사님, 오늘은 부부가 동시에 투자 사기를 당한 사건의 대법원 판례를 가져왔습니다. 합산해서 6억에 가까운 금액을 사기당했다고 하는데요. 개요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백변: 안녕하세요, BK파트너스 백홍기 변호사입니다. 네, 이 사건은 토지 분양 투자 사기 사건입니다. 피고인은 부부에게 토지를 분양하면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속였고, 남편이 1억원, 아내가 4억7500만원을 각각 송금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변제 능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대법원까지 다툰 핵심 쟁점은 이 행위를 하나의 사기죄로 볼 것인지, 두 개의 사기죄로 볼 것인지였습니다. PD: 각자 명의로 송금했는데, 그 구분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백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정경제범죄법은 사기 금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각각 독립된 사기죄로 본다면 1억원과 4억7500만원으로 나뉘어 가중처벌 기준에 미치지 않습니다. 반면 하나의 사기죄로 보면 총액이 5억7500만원이 되어 가중처벌 대상이 됩니다. PD: 그렇군요. 그럼 일반적인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백변: 원칙적으로 피해자가 여러 명이면 각 피해자에 대해 별도의 사기죄가 성립합니다.
항소심을 기다리는 수용자에게 밤은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한다. 수용시설에서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는 시간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긴 불안을 견뎌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 1심 실형이 선고되면 상당수 피고인은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항소심은 단순히 1심 판결을 반복하는 절차가 아니다. 사실관계와 양형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단계이며, 이후 상황과 정황 역시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음주운전 사건의 항소심에서는 범행 이후의 태도와 변화 가능성이 중요한 양형 요소로 고려된다. 따라서 항소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한 후회 표현보다 사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찰이다. 왜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었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가족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성찰이 구체적인 내용으로 정리될 때 재판부는 피고인의 변화 가능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변화 의지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PD: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오늘 다뤄볼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요? 백변: 안녕하세요. BK파트너스 백홍기 대표 변호사입니다. 이 사건은 2021년 부산 지하철에서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피고인이 19세 여성 피해자 옆에 앉아 팔을 비볐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에요. 피해자가 자리를 옮기자 피고인도 따라 옮겨 앉았고요. 원심은 유죄를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환송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추행의 고의 인정과 장애인의 고의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PD: ‘추행의 고의’는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요? 백변: 추행죄가 성립하려면 추행을 한다는 인식과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해요. 피고인이 고의를 부인하면 간접사실로 증명해야 하는데, 피고인의 나이, 지적 능력, 행위 경위, 평소 행동 양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죠. 특히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외관상 드러난 언행이 비장애인 관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고의를 추단해서는 안 되고, 전문가 진단을 토대로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심리해야 합니다. PD: 피고인이 장애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원심은 유죄로 판단했다고요? 백변: 그게 문제였어요. 피고인은 10년간 같은 정
항소심은 단순히 결과를 다시 기대하는 절차가 아니다. 형사소송법상 항소심은 원심 판단의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 양형부당 여부를 다시 검토하는 단계다. 따라서 1심과 동일한 주장이나 방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결과를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판결이 변경되는 사례를 보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확인된다. 첫째, 쟁점의 범위를 좁혀 핵심을 집중적으로 다투는 경우다. 항소심에서는 사건 전체를 다시 다투기보다, 원심 판단의 핵심 근거 중 논리적 균열이 있는 부분을 특정해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형사재판에서 유죄 인정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을 필요로 하는 만큼, 주요 증거 또는 사실관계 중 일부라도 신빙성이 흔들리면 전체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증거보다는 기존 자료의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다. 항소심에서 전혀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는 사례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기존에 제출된 진술이나 정황 증거를 다른 관점에서 재구성하면서, 1심에서 간과된 모순이나 해석의 여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일한 자료라도 해석 방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항소심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셋째,
당신은 법정에서 판결문을 받아 든 순간을 기억하는가? 재판장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주문이 낭독되는 동안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을 느낀다. “징역 ○년을 선고한다.” 그 한마디가 귓가에 울리고, 손에 쥔 판결문은 인생의 종결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30년 동안 형사사건을 다루며, 1심 판결문을 ‘끝’으로 받아들인 사람과 ‘시작’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판결문은 종결문이 아니다. 그것은 항소심으로 향하는 지도이다. 많은 이들이 1심 판결문을 받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판결문은 단순한 결과 통지서가 아니다. 그 안에는 법원이 어떤 근거로 유죄를 판단했는지, 어떤 정황을 불리하게 보았는지, 어떤 부분을 신뢰하지 않았는지가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판결문은 법원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항소는 바로 그 판단과정을 다시 검토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절차이다. 따라서 판결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읽어보는 것이 항소심의 출발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려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대법원 2014. 7. 24. 선고 2013도13416 판결)
더시사법률의 창간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년간 독자들에게 법과 사회를 바라보는 창을 열어주시고 삶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 주신 귀지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더시사법률의 기사 하나하나가 독자들의 마음속에 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신뢰를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형사재판정에서 정의가 저절로 주어지지 않듯 올바른 법 감각 또한 끊임없는 학습과 성찰 속에서 비로소 길러집니다. 더시사법률은 이러한 점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법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정의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시사법률이 독자 곁에서 정의와 희망의 가치를 널리 전하며 법이 지닌 사명과 책임을 일깨우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더시사법률의 초심과 신념이 결코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법치주의 위에 세워지는 그날까지 더시사법률의 행보를 응원하겠습니다. 더시사법률의 창간 1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나는 30년 넘는 세월을 형사법정에서 살아왔다. 매년 수천 건의 사건이 오가는 재판정에서 피고인의 말 한마디, 판사의 판결문 한 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꿔놓는지를 숱하게 지켜보았다. 또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했고, 범행의 고의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가운데, 최근 대법원에서 나온 한 판결을 통해 다시금 ‘정의’라는 단어의 무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피고인은 일자리를 구하던 중 한 업체로부터 채권 회수 업무를 맡아보겠느냐는 연락을 받고, 일명 ‘보이스피싱 수거책’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는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수거하고 이를 송금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이에 대해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다시 유죄를 선고하며 원심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은 “범죄에 공동 가공하려는 의사가 결합해 현금을 수거했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 인식했으면 공범이 된다”고 판시했다. 범행 방식이나 전체 구조를 몰랐더라도, 자신이 범행에 가담했다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공범이 된다는 뜻이다. 피고인이 고용업체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 높은 수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