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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관이야기

    천동성 전 교도관 20화 남기고 싶은 이야기 (최종화)

    2002년 봄, 수용자들이 작업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거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운동장을 지나갈 때였다. 어느덧 피어난 민들레, 개나리 등을 보며 봄기운에 시선을 두고 사동 쪽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장님! 계장님!” 계속해서 부르기 고개를 돌려보니 몽골 수용자 바타르였다. “나 내일 집에 가요. 계장님!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했다. 나는 바타르에게 “그래? 나가서 잘 살아”라고 대답해주고 거실로 들어가는 수용자들 쪽으로 향하는데 마음 한곳이 찡했다. 몽골 수용자 바타르는 작년 초 내가 작업팀장으로 근무할 때 소속 작업장 수용자였다. 운동하다 발을 다쳐 의료과 진료 후 처방약을 받아 왔는데 다음 날 작업장에 출역하고 보니 다친 발에 부기가 빠지지 않아 보여 내가 의료과에 전화를 넣었다. 아무래도 뼈나 인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X-RAY를 찍게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뼈에 금이 가 있었다. 바타르는 병사에 두 달여 간 입병해서 치료받고 작업장에 다시 나왔지만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다른 수용자들이 운동하러 가는 시간에 내 사무실(작업팀 사무실)에 와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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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관이야기

    천동성 전 교도관 19화 온정주의 교도관

    후배들은 나를 온정주의 교도관이라고 불렀다. 단호하게 할 때는 칼같이 잘라내지만, 가능하면 앞뒤 상황을 살피고 대화를 먼저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 경우도 보았고, 원칙만 고수하는 불합리한 구조와 행정으로 인생이 180도 바뀐 사람도 본 적 있다. 그러니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후 사정을 보지 않고 단호하게만 대할 수는 없었다. 수용자 H는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하고 15살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와는 연락이 끊어져 할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고등학교 중퇴 후 직장생활을 하던 중 여자문제로 친구와 다투고 살인을 저질러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26세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내가 담당하던 집중근로 작업장은 일이 힘들긴 하지만 작업장려금이 월 30만 원 이상으로 다른 작업장에 비해 많아 장기수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작업자를 담당인 내가 신입수용자들 중 직접 선발해 오기도 했는데, 초범이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H가 눈에 띄었다. 나는 교대 시간에 미지정사동에 직접 가서 초범인 H를 면담하고 작업장으로 데려왔다. 어두운 구석이 있었지만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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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관이야기

    천동성 전 교도관 18화 BBK 김경준과 흑금성

    1990년대 초 전국 교정기관에는 집시법 위반 등으로 수용된 대학생 공안사범들이 많았다. 그들은 독거실에 수용되어 있었는데, 6사동 중층과 상층독거실 1,2,3방이 그들의 수용거실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혼거수용을 할 수 없는 소년수용자들이 그 방에 독거수용 되었고, 2010년 천안교도소가 외국인 및 한국인 성인교도소로 기능 전환되며 BBK 사건으로 유명한 미국 국적의 김경준이 6사 중층 독서실에 수용되었다. BBK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던 MB와 관련된 사건이라 김경준과 관련된 일은 상급기관인 교정본부나 법무부에서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특히 기자들이 친지를 가장해 김경준과 접견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원실에서 기자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김경준과 접견을 허용하였고 이 사실이 알려지며 대전청에서 우리 소 관련 직원들을 밤 11시가 넘도록 조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당시 소장님이 좋은 분이라 직원들을 질책하는 대신 다독이고 격려했지만 관련 직원들에 대한 문책은 막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이 있고부터 몇 달 지난 어느 날, 총무과 사무실 밖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70대의 노인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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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관이야기

    천동성 전 교도관 17화 동그라미 이야기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죄지은 사람을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벌을 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죄인들이 동그라미 밖을 벗어나지 않아 그 벌이 계속 유지되었지만 어느 순간 동그라미를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그라미는 벌로써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그라미 대신 높은 담을 만들어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었다. 하지만 담을 넘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튼튼한 지붕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겪으며 오늘날의 교도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그라미는 우리 개개인의 양심이고 우리 사회의 원칙과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심의 동그라미를 벗어난 사람들을 눈에 보이는 동그라미 속에 가두어 놓기 시작했고, 동그라미의 원칙과 약속이 깨질수록 또 다른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급기야 그 안에 가두고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처벌까지 만들게 되었다. 수용자 중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자신은 재수가 없어 교도소에 오게 된 것이고, 본인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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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도관이야기

    천동성 전 교도관 16화 호불호 강한 교양교육 프로그램

    몇 년 전 D 교도소에서 야간 사동팀장을 할 때였다. 수용사동 담당직원 K가 수용자 한 명을 조사수용 해달라며 사무실로 데려왔다. 수용자들이 외부에 발송하는 편지에 찍힌 소인을 지우고 떼어낸 우표를 붙였다는 이유였다. 수용자 S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무릎 꿇고 울며 사정했지만, 담당 직원 K는 처벌 의사를 강력하게 표했다. 나는 사안이 크지 않고 수용자가 반성의 태도를 보이는 만큼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원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우선 조사수용을 시키고 다음 날 조사실에 연락해 훈계 처분을 해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조사실에서는 우표 소인을 지운 행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며 S에게 징벌을 부과했다. 수용질서를 바로잡고 수용자들을 교정교화 하는 데는 교도관 각자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소년교도소에 근무할 당시, 교도소 직원들과 소년수용자들은 대체로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 선생님과 학생과 같이 서로에게 끈끈한 정이 있었고 적대관계가 아닌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였다. 소년수용자들이 관규 위반을 했을 때도 큰 문제가 아니면 직원들은 조사수용 시키기보다 상담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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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동성 전 교도관 15화 수용자 도주 미수사건

    2010년 8월 28일 천안교도소가 예기치 않게 언론에 보도된 사건이 있었다. 중국인 수용자가 대운동장에서 운동 중 담을 넘어 뒷산으로 도주했다가 직원들에게 잡혔던 사건이다. 도주를 차단하기 위한 전자경비시스템 울타리가 있었지만 주벽으로 연결된 건물의 돌출 부위를 잡고 올라가 5m 높이의 담장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시설이었지만 중국 기예단 출신의 수형자는 불과 몇 초 사이에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다행히 출동한 직원들이 도주자를 체포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운동장 근무자 4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로부터 4개월 뒤였던 12월엔 운동 중이던 한국인 수용자가 정문동과 연결된 전자경비시스템 위에 올라 주벽을 타고 뛰어내렸다가 직원들에게 바로 잡히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첫 번째 도주 사건 이후 시설을 보강하고 정문동의 창살을 모두 철판으로 막고 기름칠까지 해놓았지만 손톱으로 철판 윗부분을 잡고 10여 미터 이동해서 주벽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직원이 발견해 체포했다. 도주 방지를 위해 전자경비시스템을 도입한 후에 이런 일이 연이어 발생한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한 해에 두 번씩이나 그것도 같은 소에서 수용자가 담을 넘

    • 천동성 교도관
    • 2025-04-09 16:38
  • 천동성 전 교도관 14화 교도관의 길, 수용자의 길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사람이 다니는 길, 차가 다니는 길처럼 길의 유형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그 삶 역시 하나의 길이다. 삶에 있어서 같은 길이라도 누군가에겐 오르막길이기도 하고, 내리막길이 되기도 한다. 어떨 때는 똑바른 길인 듯하다가도 구불구불 굽어진 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교도소 문을 통과하는 길도 그렇다. 같은 길이지만 입소할 때는 절망의 길이 되고 출소할 때는 희망의 길처럼 여겨진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교도소에 수용되는 길을 걷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길을 꿈꾼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수많은 수용자들의 인생 역정을 곁에서 들여다보는 교도관의 길을 걷다 보면, 교도관은 어쩌면 성직자와 같은 사명감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인내와 절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수형자들 중에는 일반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차마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건도 생긴다. 특히나 가족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백지상태인 수형자들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사고를 치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어 곤란할 때도 있다. 하

    • 천동성 교도관
    • 2025-04-02 17:17
  • 천동성 전 교도관 13화 노역수 이야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멀쩡한 청년이 노역 10일 처분을 받고 들어와 입소 절차를 밟았다. 교도소 경험이 전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는데 벌금 100만 원에 노역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 부모님께 부탁을 해보라 했더니 염치가 없어 그냥 몸으로 때우겠다고 한다. 청년이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날이 마침 근무 날이어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난방도 되고 TV도 나오고 지낼 만했지?”라고 묻자 “예 괜찮았어요”라고 대답하며 밝게 웃는다. 그는 10일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교도소를 떠났다. 노역유치집행은 벌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을 벌금액에 대한 환산 일수만큼 노역장(교도소)에 유치시켜 노역(작업)을 시키는 제도다. 나는 이 노역유치집행이 대한민국 형 집행 중 가장 모순된 제도라고 생각한다. 노역수의 대부분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작업을 시킬 수 없고, 20대 청년과 같은 건강한 사람들이 들어오더라도 단기간의 교도소 생활 동안 마땅히 시킬 작업도 없기 때문이다. 징역에 이어 노역 집행을 받은 사람 중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만 작업을 할 뿐이다. 노역을 1일이나 2일 집행 받는 사람들도 있다. 노역 1일은 당일에 출소시켜야 되는데 어떤

    • 천동성 전교도관
    • 2025-03-26 17:58
  • 천동성 전 교도관 12화 무기수 K의 가석방

    퇴직을 앞두고 지나온 교도관 생활을 되돌아보니,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있었지만 그래도 소명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부심만큼은 남아 있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남아 해소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작업 팀장을 할 때 유독 인상적인 수용자가 있었다. 7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공장에 출역해 성실하게 일하고 모범적인 수용 생활을 하던 무기수 K다. 외국인이었던 그는 한국인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자 청부살인을 저질렀고 그 대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감옥에 들어온 후 23년간 단 한 번의 징벌도 없이 규율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해 왔고 전임 작업 팀장도 K에 대한 칭찬과 함께 인수인계를 할 정도였다. 내가 작업팀장으로 있을 때도 K는 무척 성실하였고, 내가 자리를 운영지원팀장으로 옮기고 1년이 다 되어갈 때도 그는 여전히 성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79세가 된 K는 건강이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공장에 열심히 출역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K를 교도소에 그대로 두고 퇴직한다는 것은 교도관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무언의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었다. 수용자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단 하

    • 천동성 교도관
    • 2025-03-19 17:14
  • 천동성 전 교도관 11화 교도관의 비애

    교도관들만큼 사고에 민감한 사람들도 있을까. 수용자들이 모두 잠든 때에도 교도관은 깨어 있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사건·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4부제로 바뀌었지만, 3부제로 근무할 때는 새벽 1시를 기점으로 선번, 후번으로 나누어 선번 근무자는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후번 근무자는 새벽 1시부터 오전 6시까지 각각 5시간씩 근무하였다. 그 외의 시간은 모두 주간 근무에 투입되었다. 그야말로 24시간을 대기하며 혹시라도 근무시간 중에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도관이다. 교도관들의 근무는 단순한 교대 근무가 아니라 책임과 긴장의 연속이자 24시간 대비 태세나 다름없다. 아무래도 교도소라는 근무 환경 자체가 타 직업보다 정신적, 신체적 체력을 많이 요구하는 편이고, 잠을 쫓고 야간 근무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 밤, 나는 침실에서 나와 교대를 위해 근무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길목엔 감시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근무를 서던 경비 교도대가 수하를 하곤 했다. 그날도 감시대를 지나가는데, 경비 교도대 한 명이 “누구고?”라고 수하를 하였다. 피아식별을 위한 엄숙한 과정이었음에도 우리는 웃음을

    • 손건우 기자
    • 2025-03-12 17:29
  • [천동성 전교도관] 10화 니코틴 살인 수용자 형집행정지 사건

    교도관 생활을 하다 보면 모범적이고 성실한 수용자들의 모습에 뿌듯할 때도 많지만 수용자의 예측 불가한 행동으로 긴장해야 할 때도 있다. 수용자의 행동이 예측 불가한 만큼, 그때마다 교도관들의 상황판단도 민첩해야 더 큰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이른바 ‘니코틴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위해 미결 수용되어 있던 W의 사건은 <용감한 형사들>을 포함해 여러 방송에서 다룰 만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2017년 당시 21살이었던 W가 자신의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19살이었던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고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여행 첫날 아내가 사망하며 밝혀진 사건이다. 이 사건은 W가 거액의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니코틴 원액을 여성의 혈관 내에 주사했고 여성이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W가 일기장에 써놓은 버킷리스트에는 00살까지 00억 만들기 등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고 하는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이 어린 여성의 생명을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는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사건이었고 죄질이 아주 나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상황이었다. 교도소에 들어온 후 W는 중독

    • 천동성 교도관
    • 2025-03-05 16:12
  • [천동성 전교도관] 9화 96세 나이로 교도소에 오게 된 사연

    2017년 8월 29일 자 뉴스에 이런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네가 모셔라” 자식 다툼에 흉기 휘두른 90대 아버지.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90대의 노인이 자신의 부양 문제를 놓고 다투는 딸들을 보고 격분해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경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노인(당시 95세)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인은 미국 시민권자로, 큰딸 집에 모인 자식들 중 큰딸과 막내딸이 자신을 부양하는 문제로 다툼을 벌이자 막내딸의 뺨을 때리고 허리춤에 숨겨 둔 흉기로 싸움을 말리는 막냇사위의 목과 옆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다행히 막냇사위는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과 함께 미국에 살던 노인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부양 문제를 두고 딸들 간에 평소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특히 노인이 막내딸 집에 머무는 동안 딸이 자신을 내보내려 한다고 생각해 막내딸과 사이가 좋지 않아졌고, “해코지를 당할까 봐 방어 차원에서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라고 경찰에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은 현장에 있던 가족 중 한 명의 신고로 현행범으로 체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구치소에 수용되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내가

    • 천동성 교도관
    • 2025-02-26 16:46
  • 8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인 교도소 사람들

    오전 7시,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지원을 요청한다는 무전을 받았다. 아침부터 미지정 사동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몇 년 전 내가 미지정 사동을 담당할 때 데리고 있던 30대 후반의 J였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수용 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던 J가 싸움을, 그것도 아버지뻘 되는 수용자 C와 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있었고 C가 J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한마디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 말에 J가 C의 멱살을 잡고 말았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J답지는 않은 행동이었다. J가 아버지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그가 보육원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C가 며칠 전에도 J에게 “너 보육원 출신이냐?”고 물어봐 기분이 나쁘던 차에 애비 없는 자식 소리까지 나오자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J의 이름을 부르며 “너 답지 않게 왜 그랬어?” 라고 물어보자 눈물을 왈칵 쏟는다. J가 사과를 하고 싶다 하고 C 역시 자식뻘 되는 놈 처벌받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나는 팀장의 양해를 구하고 두 사람을 화해시켰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J에

    • 천동성 교도관
    • 2025-02-19 16:38
  • 7화 소년원에서 청송교도소까지, K의 교도소 인생

    대전교도소에서 야간 2팀 부당직 업무를 볼 때였다. 부당직은 새벽 2시에 당직을 교대해 아침 6시까지 소 전체를 책임지는 일을 한 다. 그날 새벽 5시쯤이었다. 60여 명이 3,200 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취사장에서 약간 의 소란이 일어난 듯했다. 가석방 특혜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할 정도로 한여름의 취 사장 출역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간간이 출역을 거부하는 수용자들도 있다. 그날은 수용자 A와 반장 사이에 일이 있는 듯했다. A가 작업거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반장은 다툼이 있긴 했지만 계속 출역을 거 부하고 혼자 조사실에 간다니 A를 조사수용 시키라며 남 일 이야기하듯 말했다. 나는 다 툼을 한 사람을 같이 보내야 하니 데리고 오 라고 했다. 그제야 반장은 머뭇거리며 두 사 람을 화해시키겠다고 했다. 수용자를 조사수용 시키는 일은 교도관 입장에서 시간 낭비도 줄이고 일을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나는 그 방 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힘든 출 역을 한다는 건 가석방 출소를 기대한다는 것 일 텐데, 이번 일로 징벌을 받으면 그 혜 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떻게든 A가 마음을 잡고 취사장 일에 적응하기를 바랐다. 그로

    • 천동성 교도관
    • 2025-02-12 17:51
  • 6화 편작의 큰형님과 같은 교도관이 될 수 있다면

    D 교도소에서 근무하던 몇 년 전, 외정문에서 접견을 기다리는 한 부부를 보게 되었다. “제발 사정 좀 봐주세요, 여기 신분증을 찍은 사진이라도 낼게요” “안됩니다. 돌아가세요.” 멀리 부산에서 아들을 보러 온 부부였는데, 하필 어머니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외정문 근무자에게 사정을 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몇 번 접견을 온 적 있었고, 신분증을 찍은 사진을 보여줘도 근무자는 원칙을 내세울 뿐 요지부동이었다. 평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원칙대로 일하는 강성 근무자라 아무래도 어렵겠다 싶어 나 역시 지나가려는데, 부부가 내게 달려와 눈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도저히 그 눈물을 외면할 수 없어 부부를 모시고 민원실로 향했다. “계장님! 이러시면 안 되죠! 민원실에서도 안 된다고 했는데 어쩌려고 이러세요? ” 외정문 근무자는 밖으로 나와 내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의 격렬한 항의에 부부의 얼굴은 다시 잿빛으로 변했다. 나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한 뒤 부부를 민원실로 모시고 갔다. 알고 보니 신분증 없이는 안 된다고 했던 민원실의 대답은 아직 일이 미숙한 직원의 잘못된 안내였다. 역시 다른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접견 잘하고 가시

    • 천동성 교도관
    • 2025-02-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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