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금 직거래 강도 살인범 을 체포한 형사 L

치매 어머니 모시던 피해자
‘귀금속 거래’는 미끼였다
경찰 추적에 알몸으로 체포
사기범이 살인범으로 진화

 

2019년 12월 26일 밤 11시, 충남 계룡시 한적한 도로. 군인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건물이 거의 없고 인기척조차 드문 길가를 비틀거리며 걷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인근 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이 마침 남자를 발견했다. 곧 쓰러질 듯 비틀대던 남자는 40대 정도로 보였고 머리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남자는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자신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말했다. 중고거래로 귀금속을 팔기 위해 구매자인 젊은 남성을 만났다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어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애원했다. 군인은 서둘러 112에 신고했고 곧 경찰과 119 구조대가 현장으로 출동했다. 남자는 흐릿한 의식을 부여잡으며 경찰에게 자신이 당한 사건을 설명했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27일 논산경찰서와 충남청 광역수사대의 합동수사본부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목격자와 피해자의 증언에 따라 어젯밤의 사건을 강도사건으로 판단했다. 충남청 광역수사대의 L 형사는 팀원들과 함께 사건 현장 주변의 CCTV를 샅샅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근 시설관리소 CCTV에서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할 수 있었다. 12월 26일 밤 10시, 흰색 차량 한 대가 범행 장소에 나타났다. 피해자의 차량이었다. 차에는 두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피해자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뒷좌석에 정체불명의 남성이 보였다. 잠시 후 고요하던 차량 내부는 갑자기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뒷좌석에 앉은 남성이 돌연 피해자를 공격한 것이다. 당황한 피해자는 반사적으로 차량 문을 열고 도망쳤다. 하지만 남자는 피해자를 뒤쫓으며 둔기로 폭행을 이어갔다. 얼마 후 불상의 남자는 피해자를 현장에 내버려둔 채 차량을 강취해 달아났다. 수사팀이 차량 동선에 따라 CCTV를 추적했더니 남자는 범행 장소에서 직선거리로 1.3km 떨어져 있는 체육공원에다 차량을 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L 형사는 영상을 다시 재생해 보며 한 가지 중요한 점을 포착했다. 피해자가 용의자와 함께 차를 타고 사건 현장으로 왔다는 사실이다. 용의자는 피해자를 다른 장소에서 만났고 현금 인출이나 다른 핑계를 대며 외진 곳까지 운전하게 만든 게 틀림없었다. CCTV에 범행 현장은 생생하게 찍혀 있었지만 이후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범인의 신원 확인이 어려웠던 것이다. 용의자 얼굴이 찍힌 CCTV의 화질이 좋지 않았고, 모자와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인상착의 확인이 불가했다. 게다가 체육공원 주변에는 인가나 건물이 없어 더 이상 용의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할 CCTV가 존재하지 않았다.

 

 

 용의자의 얼굴과 동선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L 형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L 형사는 우선 피해자와 용의자가 만난 장소를 특정해 보기로 했다. “금 100돈 팝니다” 피해자가 중고 판매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던 글을 확인하고, 피해자의 휴대폰에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구매자의 문자 메시지도 확인했다. 2019년 12월 24일에 용의자가 두 차례 피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첫 번째는 피해자가 판매하겠다던 귀금속을 구매하겠다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충남 지역의 한 면사무소 근처에서 중고거래가 가능하겠느냐는 메시지였다.

 

 

수사팀은 수사의 속도를 높여갔다. 용의자가 피해자를 처음 만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의 한 면사무소의 CCTV를 확보했고, 12월 26일 밤 10시경 용의자가 피해자의 차량에 탑승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수사팀이 영상 속 용의자의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때, 피해자가 있던 병원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던 피해자가 결국 사망한 것이었다. L 형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홀로 남은 어머니를 걱정하던 피해자였다. L 형사는 침통한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이제 이 사건은 단순 강도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 되어 버렸다. 범인을 체포하는 것만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피해자를 위한 길이었다. 수사팀은 서둘러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해다. 용의자는 A 씨(남성, 20대 중반)로 피해자가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진술했던 20대 중반의 남성과의 인상착의도 일치했다. 게다가 A 씨에겐 더욱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A 씨가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귀금속 판매자를 속이고 순금을 편취한 혐의로 대구 경찰서에서 수배 중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L 형사는 A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평소 A 씨가 운전하고 다니던 차량의 동선을 추적하는 것이 사건 해결의 열쇠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A 씨의 차량은 12월 25일 오전 7시경 계룡시로 진입했고, 범행 장소 주변을 사전 답사하기까지 했다. 수사팀은 A 씨를 집요하게 추적했고 그가 경기도 안산시의 한 모텔에 묵었던 것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모텔 로비에 있는 CCTV에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A 씨의 얼굴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수사팀은 용의자 A 씨를 피의자로 특정했다.

 

2019년 12월 31일. 수사팀은 충남청 광역수사대와 함께 수원시 권선동으로 출동했다. A 씨의 휴대폰 위치 추적으로 A 씨의 위치가 포착된 것이다. L 형사는 팀원들과 함께 권선동 일대의 모텔을 집중 수색하기 시작했다. A 씨가 도피 중인 만큼 모텔에 숙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던 중 저녁 7시경, 수사팀의 한 형사가 다급히 무전을 보냈다. A 씨의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한 모텔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수사팀은 모텔 주인의 협조로 CCTV를 확인해 A 씨가 모텔에 입실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A 씨를 검거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수사팀은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A 씨의 체포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체포는 시간문제였다.

 

A 씨는 302호에 머물고 있었다. 수사팀은 도주 가능성을 생각해 일단 비상구와 복도를 차단하며 퇴로부터 막았다. 긴급체포인 만큼 수사팀이 문을 열려고 시도할 때 A 씨가 문을 안쪽에서 잠그고 버티거나, 흉기를 들고 저항할 가능성, 또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등의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다행히 이 모텔은 마스터키로 문을 열게 되면 안에서는 잠글 수 없는 구조였다. 형사들은 A 씨가 손쓸 틈 없이 마스터키로 302호 문을 열고 재빠르게 진입해 제압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302호의 문이 열리고 형사들이 발 빠르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형사들이 우려했던 장면들은 펼쳐지지 않았다. 형사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도 A 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A 씨는 알몸 상태로 의자에 앉아 모텔 컴퓨터를 이용해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게임 화면에 빠져있던 A 씨는 아직도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듯 보였다. A 씨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볼 틈도 없이 형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A 씨를 덮쳤다. 강도 살인 혐의로 A 씨를 긴급체포함을 밝히고 미란다 고지 후에 A 씨의 양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게임은 이제 끝났다.

 

A 씨는 체포 직후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L 형사는 바로 신문을 시작했다. A 씨는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완강히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변명하는 것도 아닌, L 형사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만 바라보며 똑같은 말만 계속할 뿐이었다. 그 태도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뭔가 말 못 할 사연을 품고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에 가까웠다. 무려 강도살인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분명했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A 씨는 경찰 앞에서 겁에 질린 20대로 보였다.

 

 

A 씨가 진술을 거부하는 동안 형사들은 압수한 그의 휴대폰에서 수상한 메시지를 발견했다. 따로 살고 있는 친모에게 A 씨가 보낸 메시지였는데, 집에 짐을 좀 두었는데 조만간 찾으러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수사팀은 곧바로 A 씨의 친모가 살고 있는 집을 압수수색했다. 역시나 친모의 집에서 금반지, 금팔찌 등의 귀금속이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중고거래를 위해 판매하려고 했던 그 귀금속이었다. 명백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A 씨는 우연히 길에서 주웠을 뿐이라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구속이 부당하니 다시 심사해달라는 구속적부심사까지 신청했다.

 

A 씨가 신청한 구속적부심사 당일인 1월 6일, L 형사는 A 씨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했다. L 형사는 A 씨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면 어차피 L 형사가 A 씨를 신문할 일도 없겠지만, 초범으로 보이는 그가 범죄를 부인하게 되면 죄질이 상당히 나빠질 게 뻔했다. L 형사는 아들 뻘인 그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정상 참작할 이유도 있어 보이는데 모든 범행을 부인하기만 하면 파렴치범으로 최고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다소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증거가 명확하기 때문에 구속적부심사는 기각 될 것이니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구속적부심사는 당연히 L 형사의 말대로 기각됐다.


다음 날인 1월 7일, L 형사를 찾는 한 통의 전화가 유치장으로부터 왔다. 수감 중인 A 씨였다. A 씨는 모든 사실을 자백할 테니 꼭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L 형사와 마주한 A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했다. 자신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가 고백의 시작이었다. A 씨는 종교로 인해 어머니와 갈등이 심했고 집에서 쫓겨나 독립된 생활을 위해 막일을 해오며 살아왔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 번 돈 3천만 원을 주식투자와 인터넷 도박으로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되자 한탕의 범죄를 꿈꿨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귀금속 판매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운이 좋게 첫 번째 범죄에 성공했고 1천만 원의 돈이 생겼다. A 씨는 딱 한 번 만 더 범죄로 돈을 벌 생각이었다. 그 대상이 바로 사망한 피해자였다.

 

A 씨는 범행 당일 피해자를 만나 으슥한 장소로 데리고 가 위협해 귀금속을 빼앗을 계획이었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저항하자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장도리를 피해자에게 휘둘렀다는 것이다. 자백을 이어가던 A 씨는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피해자의 마지막 얼굴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간절한 목소리로 “어머니가 있다”면서 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죽으면 안 된다고 애원했다고 했다. A 씨는 당시 피해자가 기절은 해도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피해자가 사망 수도 있단 것도 알고 있었다. 피해자에게 휘둘렀던 장도리는 평택의 한 하천에 버렸다고 했다. 수사팀은 A 씨의 진술에 따라 평택의 하천을 뒤져 범행도구를 찾아냈다.

 

L 형사는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냈고, 사건을 해결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L 형사는 피의자와 피해자, 두 사람의 삶을 곱씹어 보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홀로 모시던 피해자,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만 걱정했던 그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리고 피의자 역시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집에서 쫓겨난 후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잘못된 투자로 물거품이 됐고 결국 강도 살인까지 저지르게 됐으니 말이다. 피해자와 피의자, 두 사람이 슬퍼하는 모습이 며칠간 잔상처럼 L 형사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