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위와 바람” 망상… 재벌가 사모의 여대생 청부 살인사건

사돈처녀를 의심한 망상 증상
시신은 검단산 등산로에 버려
무기징역에도 ‘반 자유인’ 논란
피해자 어머니 식음 전폐 사망

 

2016년 2월 23일, 경기도 하남시 어느 주택에서 중년 여성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165㎝의 키에 38㎏의 체중이었고 시신 주변으론 빈 소주병과 맥주병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사인은 영양실조에 따른 일종의 아사였다. 숨진 A 씨가 살던 주택에선 창 너머로 검단산이 잘 보였다. 검단산은 그때로부터 14년 전인 2002년, A 씨의 딸이었던 하모 양(당시 만 21세)이 주검으로 발견된 곳이다.


이화여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하모 양은 발견 당시 청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었고, 얼굴에 4발, 뒤통수에 2발의 총상이 있었으며 구타의 흔적도있었다. 가족들은 하양의 시신이 발견 되기 10일 전 실종 신고를 마친 상태였다. 수영하고 오겠다고 새벽에 집을 나선 하양이 돌아오지 않자 신고와 함께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양의 시신이 발견되고 경찰은 원한 관계에 얽힌 범행을 의심했다. 경찰이 주목한 점은 하양의 아버지가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 모 씨 측을 상대로 낸 ‘접근금지 소송’이었다. 윤 씨는 판사였던 자신의 사위가 사촌 동생과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판사 사위의 사촌 여동생이 바로 A 씨의 딸, 하양이었다. 중견기업 영남제분의 사모로 시간도 돈도 많았던 윤 씨는 자신의 시간과 재력을 사위의 바람을 의심하는데 썼다. 딸 내외가 자는 방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가 하면 자신의 조카 윤남신을 책임자로 세우고 흥신소 직원 등을 이용해 사위와 하양을 미행했다.


미행하는데 붙은 인원만 25명이었다. 윤 씨가 무려 2년을 미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위와 하양은 이종사촌 관계일 뿐 바람을 의심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증거가 잡히지 않을수록 윤 씨의 편집증적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난다” 당시 미행에 투입됐던 흥신소 직원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다. 윤 씨는 자신의 조카 윤남신과 윤남신의 동창 김용기에게 하양을 살해할 것을 지시했다. 윤 씨의 청부살인 조건은 1억 7500만 원. 착수금 5,000만 원은 미리 입금해 주었다.

 

윤남신은 공기총을 구입해 김용기에게 건넸다. 김용기는 하양의 얼굴에 공기총을 난사했고 둘은 하양의 시신을 검단산 등산로에 버려뒀다. 경찰은 김용기의 집에서 공기총 등의 범행도구를 발견하고 윤 씨로부터 거액의 돈을 입금 받은 사실까지 확인하며 이들의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범행 직후 김용기는 베트남, 윤남신은 홍콩으로 도주한 상태였다. 이에 하양의 아버지는 생업을 제쳐두고 베트남에 직접 가서두 사람의 행방을 쫓았고 아버지의 피눈물 나는 추적 끝에 두 용의자는 국내로 소환됐다.

 


법정 앞에 선 윤 씨와 김용기, 윤남신은 살인, 살인교사 등의 혐의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사건이 다시 문제가 됐던 건 영남제분 사모 윤 씨의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윤 씨가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형집행정지 처분을 획득, 2년 11개월을 교도소가 아닌 대학병원 VIP 병실에서 보내고 있단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결국 윤 씨는 형집행정지를 취소당해 재수감됐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주치의 등도 기소되었다.

 

A 씨가 사망한 뒤 남편 B 씨는 “아내가 14년간 견뎌온 것만으로도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딸이 살해된 뒤 아내는 어떻게 보면 장시간에 걸친 자살 행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라며 딸을 잃고 술에 의존하다 세상을 떠나게 된 아내의 고통에 통한의 심경을 남겼다.

 

더시사법률 이소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