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공격’ 김동민 교도관 살해 사건 … 대전교도소에서 벌어진 참극

우연히 주운 쇠파이프가 둔기로
해방 이후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
20년 경력 김동민 교위의 비극
살인범 김원식 10년 뒤 사망

 

상해치사 등의 혐의로 1997년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김원식씨는 평소 교도소 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수감생활 중에 몰래 숨겨 가지고 있던 흉기로 다른 재소자의 머리를 내리쳐 상해를 가하는 범죄를 2차례나 저질렀다.

 

이 일로 김씨는 징역 2년 및 징역 3년의 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이에 김씨는 평소 교도관들이 다른 재소자들을 이용해 자신을 따돌리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한다.

 

하지만 당시 김씨는 독방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필 교도관을 직접 접견할 수 없었고, 면담을 신청해 일을 진행해야만 했다. 김씨는 교도관 면담 신청을 거듭했다. 그러나 면담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김씨는 점점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드디어 김씨의 면담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김씨의 담당 교도관은 김동민 교위였다.

 

대전교도소에서 20년 넘게 근무해 온 김동민 교위는 2004년 7월 12일 오전 10시, 운동을 마치고 들어온 김씨를 불렀다. 그리고 뒤돌아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데, 품에서 쇠파이프를 꺼낸 김씨가 김동민 교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빨래를 널다 우연히 쇠파이프를 발견한 김씨가 빨랫감 속에 흉기를 숨겨 반입해왔고, 이를 김동민 교위를 공격하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공격은 무차별적이었다. 후두부에 다섯 차례, 앞면 두 차례. 최소 일곱 차례의 가격을 당한 김동민 교위는 외마디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당시 사건 현장이 찍힌 CCTV를 확인한 대전교도소 관계자는 “너무 참혹해서 입을 뗄 수가 없을 정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교도소 기동순찰대원에게 발견된 김동민 교위는 응급처치 후 곧바로 건양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진단을 받았고, 3일 후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김씨는 김동민 교위의 사망 소식에 ‘교도관 하나 죽었다고 이 난리냐’며 비아냥거렸고,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범행 동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면담 요청이 빨리 받아들여지지 않아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피해자인 김동민 교위의 영결식은 2004년 7월 17일에 대전교도소 체육관에서 열렸고, 그는 사망 후 교감으로 1계급 특진됐다. 범인 김씨에게는 2005년 1월 19일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되었고, 2월 16일에 1심 재판부에 의해 사형이 선고되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수형자가 수용 도중 교도관을 살해한 것은 해방 이후 우리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면서도 최종 형량으로 1심보다 감형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복역을 계속하다가 사건 발생 10년 후인 2014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5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