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극의 시작은 23년 전 봄이었다. 2002년 3월,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명이 된 한 남자가 뇌진탕, 화상, 자상을 연이어 입다 합병증으로 결국 사망했다. 그에게는 170cm의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이름으로 든 세 개의 보험에서 총 2억 8천여만 원의 큰돈을 58회에 걸쳐 수령했다. 2002년 3월 남편이 사망한 이후, 그녀의 주변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친어머니, 오빠, 남동생 모두 실명을 하거나 화상을 입었고, 첫 번째 남편이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만나 재혼한 두 번째 남편 역시 골절상, 실명, 화상 등의 상해를 입고 결혼한 지 9달이 채 되지 않았던 2003년 2월 사망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그녀와 관계된 사람 중 5명이 사망하였고, 친어머니와 오빠, 남동생, 가사 도우미 등은 화상을 입거나 실명하는 등의 사고를 당했다.
잇단 상해, 사망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이 여인이 바로 단군 이래 최악의 악녀로 불리는 엄모 씨다. 엄 씨가 2005년 4월 경찰에 검거되며 그녀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던 사건 사고도 멈췄다. 모든 사건의 범인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범죄 심리학자들 사이에선 엄 씨가 역대 최악의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로 꼽힌다. 만약 그녀가 사이코패스 검사를 했다면 40점 만점에 40점을 받았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 Psychopathy Checklist-Revised)는 2005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40점 만점에 25점 이상이 나왔을 때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간주한다.
지금까지 유영철이 38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29점,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한 정유정 28점, 강호순 27점,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25점으로 높았다. 일반인의 경우 15점 내외의 점수가 나온다.

범죄 심리 전문가들이 40점 만점을 예상할 정도로 엄 씨의 범행은 끔찍하고 잔혹했으며 패륜적이기까지 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엄 씨는 첫 번째 남편에게 자신이 처방받은 우울증 약을 먹인 뒤 정신을 잃게 만들어 뇌진탕을 일으켰다.
엄 씨는 남편의 눈을 옷핀으로 찔러 실명을 시키고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붓고 흉기로 복부를 찌르기까지 했다. 보험금 때문이었다. 결국 남편의 사망으로 사망보험금까지 탄 엄 씨는 첫 번째 남편이 사망하고 한 달 만에 만난 두 번째 남편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망케 하고 3,800만 원의 보험금을 타 냈다. 그녀에게 남편은 보험금을 타 먹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친어머니와 오빠, 동생에게까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2003년 엄 씨는 역시 우울증 약을 이용해 어머니가 정신을 잃게 만든 다음, 주사기로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케 했다. 같은 해 오빠에겐 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하고 양 눈에 염산을 부었으며, 이듬해엔 오빠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아가 링거 속에 약을 넣어 죽이려다 미수에 그쳤다.
엄 씨는 오빠가 죽어야만 보험금을 많이 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머니, 오빠, 남동생이 사는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
엄 씨의 희생양은 또 있었다. 엄 씨의 어린 아들을 돌봐주던 가사 도우미는 당장 거처할 곳이 없다는 엄 씨의 사정에 자신의 집을 내주었다가 엄 씨가 저지른 방화로 인해 본인은 화상을 입고 남편은 사망하게 되는 비극을 맞았다. 엄 씨가 부부 몰래 아파트 화재보험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누나 옆에 있는 사람은 죽거나 다친다”라는 남동생의 신고로 드디어 엄 씨는 처음으로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린다. 하지만 경찰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엄 씨를 풀어주고 말았다. 엄 씨는 경찰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이 가와사키병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같은 병실을 쓰던 20대 여성 A 씨와 친해졌고, 이후 사이가 틀어지게 되자 핀으로 A 씨의 오른쪽 눈을 찔러 실명시키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A 씨의 링거 속에 해로운 약을 타 넣기까지 했다. 엄 씨 범행의 꼬리도 이때 잡혔다. 약기운에서 깨어난 피해자가 엄 씨가 약을 타는 모습을 목격해 신고했다.
엄 씨는 3명을 죽이고 3명을 실명시키는 한편 4명에게 중화상을 입히는 방식으로 총 5억 9,600여만 원의 보험금을 챙긴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공교롭게도 엄 씨의 딸과 아들이 모두 3살 무렵에 숨졌는데 엄 씨가 이 둘의 죽음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하고 증거가 없어 살해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딸은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아들은 가와사키병이었다. 엄 씨는 존속 중상해, 방화치상, 강도사기 등으로 기소되었고 2006년 12월 대법원에 의해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