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가석방 가능하지만… 매년 10명 안팎

실제 가석방 심사 통과율 1%…
심사 기준은 명확하지 않고
탈락 사유는 공개되지 않아
국민 여론에 따라 심사 달라져

 

“가석방? 헛소리야. 그건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말이지.”

20년간 수감된 레드(모건 프리먼 분)는 가석방 심사를 받으며 “새사람이 되었다”고 간절히 호소하지만 기각된다. 10년 뒤,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또다시 가석방은 불허된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뒤, 그는 냉소적인 태도로 심사위원들에게 말한다. “나는 매일 후회했지만, 젊은 날의 나는 이제 사라지고 늙은 나만 남았다.”(영화 쇼생크 탈출)


영화 쇼생크 탈출 속 한 장면인 가석방 장면은 우리가 가석방 제도에 대해 품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형자는 법적으로 가석방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제 가석방률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가석방 심사 기준의 과도한 엄격함과 범죄 재발 방지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며, 교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3년 법무부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교정시설에 수감 중인 무기수는 총 1,356명이다.

 

이들은 20년 이상 복역하면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 매년 가석방되는 인원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최근 6년간 가석방된 무기수는 2018년 40명을 정점으로 2019년 14명, 2020년 18명, 2021년 17명, 2022년 16명, 2023년 12명 수준이다. 전체 무기수 중 99% 가까이는 가석방 없는 실질적 ‘종신형’을 선고받고 있는 셈이다.


무기징역자와 유기징역자 간 가석방 심사 기준의 형평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행법상 유기징역자는 형기의 3분의 1을 복역하면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으나, 잔여형기가 10년을 초과하면 제외된다. 예컨대 40년형 유기수는 30년을 복역해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현행법상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형자는 법적으로 20년 복역 이후 가석방 심사를 받을 수 있어, 유기수가 무기수보다 오히려 더 긴 기간 복역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무기수를 가석방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3년이면 가능할까? 25년이면? 30년 안에는 나갈 수 있을까?” 끝없는 희망 속에 살아가지만, 점점 몸은 늙어가고 있습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았다면 오히려 희망을 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기수들은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약 없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차라리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었다면, 애초에 헛된 기대조차 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약 없는 희망을 안고 지난날을 평생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이 희망이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끝을 알 수 없기에 더 깊은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밖에서는 오직 홀어머니 한 분이 유일한 가족이자 삶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건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결국 그 이유를 잃어버릴까봐 두렵습니다. 가족도, 의지할 곳도 없이 사회로 나가는 날이 오면, 과연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회는 재범 방지를 말하지만, 우리는 정말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요?“ (무기수의 편지)


강력범죄에 대한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국민 여론 역시 무기수에 대한 가석방률을 낮추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이 범죄 재발을 방지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강도 범죄자는 25.56%, 성폭력 범죄자는 17.46%의 재복역률을 보이는데, 이는 가석방 심사가 어려워진다고 해도 범죄 재발 방지 효과가 뚜렷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가석방 없이 만기 출소한 수형자의 재복역률은 33%에 달했다. 반면 가석방 출소자의 재복역률은 7.3%에 그친다는 통계는 교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제도가 오히려 재범 억제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귀휴 제도도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복역 중인 재소자는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우고 교정 성적이 우수한 경우, 연간 최대 20일 이내에서 귀휴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징역 21년 이상을 선고받은 유기수 또는 무기수는 7년 이상 복역해야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2014년 24명이 귀휴를 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2015년 홍승만 씨의 자살 사건 이후 귀휴 인원은 급감했다.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1명, 2021년 0명, 2022년 2명, 2023년 0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사회와의 단절이 고착화된 상태다.


복역 중 교화 의지를 보이는 장기 수형자들조차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차단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재범률 감소나 교정시설 과밀화 해소를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출소 후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을 대상으로 재범 예방 정책을 수행해야 할 한국법무복지공단의 운영 방식에서도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공단은 법무부 산하의 재범 예방의 핵심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재범 위험이 높은 장기수나 무기수에 대한 지원은 방치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공단은 출소자들의 낮은 재범률을 실적 홍보용 통계로 활용하기 위해, 초범자나 가족이 있는 수형자 등 비교적 관리가 용이한 대상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보여주기식 실적 중심 운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사회 복귀 지원이 절실한 장기수들에 대한 실질적인 교화 정책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법무부는 2023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이는 무기수라도 판사가 판결 시 가석방 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미국 등에서 시행 중인 모델을 참고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권 침해”, “교화 가능성 차단” 등의 이유로 시민단체와 야당이 반대했고, 대법원도 “선진국에서는 위헌 논란으로 폐지하는 추세”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해당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지 못하고 지난 5월 자동 폐기됐다.


법무법인 JK 김수엽 대표변호사는 “형벌의 목적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라 교화와 재사회화에 있어야 한다”며, “법무부와 한국법무복지공단은 장기 수형자들이 출소 후 재범에 이르게 되는 주요 원인인 생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소자들의 영치금을 관리하는 우리은행이 장기수의 작업 장려금에 연 0.3%의 이율을 적용하고 있지만, 이는 장기간 복역한 이들의 출소후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법무부가 금융권과 협력해 장기 수형자들이 작업장에서 받은 장려금을 모아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금융상품 개발 등 현실적인 사회 복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