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MBC 예능 프로그램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 한 소녀가 출연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는 어려운 형편에 장애를 가진 부모를 도우며 살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방송국의 도움으로 허름했던 집이 화사하게 변신하자 “나중에 커서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며 살고 싶다”고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22년 3월 29일, 착하기만 했던 소녀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인천지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 올라왔다. 인천지검은 도주한 두 명의 용의자를 공개수배 하는 방안에 대해 심의위에 의견을 물었고, 심의위는 피의자의 신상과 사진을 공개하기로했다. 공개된 용의자는 30대의 남녀로 그중 한 명이 바로 러브하우스에 나왔던 그 아이, 이 모 씨였다. 놀랍게도 이 씨가 받고 있던 혐의는 “살인”이었다. 불우한 환경에도 구김살 없이 자라던 소녀는 어쩌다 살인범이 되었을까.
사건 경위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2019년 6월, 이 씨는 자신의 남편 윤 모 씨에게 자신의 친구들과 계곡에 가자고 했다. 물놀이 멤버에는 이 씨의 내연남 조 모 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씨의 남편은 수영을 할 줄 몰라 물놀이가 달갑지 않았지만, 재촉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가평 용소계곡으로 향한다. 이 씨와 내연남 조 씨는 수영을 못 하는 윤 씨에게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을 강요했고, 남편 윤 씨의 위험한 다이빙은 저녁 8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끝내 윤 씨는 마지막 다이빙을 끝으로 물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씨와 내연남 일행의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윤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부검 결과를 토대로 윤 씨의 사인을 익사로 보고 단순 변사 처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 씨의 죽음은 그저 사고였다. 하지만 이 ‘사고’는 곧 ‘사건’으로 바뀌게 된다. 아내였던 이 씨가 방송국에 걸었던 한 통의 제보 전화 때문이다.
이 씨는 사망한 남편의 사망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를 고발하겠다는 취지의 전화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쪽으로 걸었고, 방송국이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취재진이 확보한 것은 보험사의 횡포가 아니라 이 씨의 의심스러운 행동들이었다. 이 방송이 이른바 ‘계곡 살인 사건’의 정황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던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일산 경찰서는 사망한 윤 씨 가족으로부터 ‘이 씨가 살해한 것으로 의심이 든다’는 고발이 접수되어 재수사에 착수했다. 알고 보니 이 씨는 남편 윤 씨 앞으로 4개의 생명보험을 들어 놓은 상태였고 보험료 미납으로 실효되기도 여러 번이었다.
남편 윤 씨는 7번째 보험 실효 4시간을 앞둔 시점에서 사망했다. 문제는 아내 이 씨가 보험 실효 통지를 받을 때마다 윤 씨를 죽이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복어 내장을 먹게 한다든가, 낚시터에서 물에 빠뜨린다든가 하는 등의 수법이었다. 그리고 그 범행에는 이 씨의 내연남 조 씨가 연루되어 있었다.
인천지검은 이 씨와 내연남 조 씨에게 해당 사건과 관련해 소환조사를 통보했다. 불안함을 느낀 두 사람은 소환에 불응, 도주하기에 이르렀고 지명수배 17일 만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 오피스텔에서 형사들에게 붙잡혀 인천지검으로 압송됐다. 검찰은 이들이 윤 씨 명의로 가입된 생명 보험금 8억 원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보았다.
법정에 출석한 이 씨와 조 씨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법원은 살인,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씨에게 무기징역을, 내연남에게는 징역 30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다이빙 후 물에 빠진 피해자를 일부러 구조하지 않은 부작위 살인이라 판단하고 사실상 직접 살인과 유사한 수준으로 보았다. 대법원 선고 이후 이 씨와 윤 씨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이 씨와 남편 윤 씨는 혼인신고만 했을 뿐 결혼식이나 동거 등도 하지 않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었으며 이 씨가 윤 씨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관계였다고 보았다.
이 씨는 무기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걸었지만 2023년 9월 기각당했다. ‘계곡 살인 사건’과 별개로 과거 이 씨와 사귀었던 두 명의 남성 역시 2010년과 2014년에 각각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특별한 증거를 찾지 못해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