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로유] 억울해서 낸 증거, 왜 불리하게 돌아올까

혼자 진행하는 재판이 위험한 이유
‘진심’이라는 착각 … 법정서는 논리
억울함보다는 냉정함이 필요한 순간
한 장의 증거 자료가 운명을 바꾼다

중간에 사건을 맡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스로 해결해 보려다 일이 점점 커지면서 변호사를 찾는 경우도 있고, 기존 변호사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새로 선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대개 ‘이미 사건이 상당히 진행된 뒤’라는 점이다.

 

그럴 때면 나는 직원이 한 장 한 장 복사해 온 두꺼운 사건 기록을 받아 든다. 첫 장을 넘기며, 마치 과거로 돌아가 사건의 시간선을 복기하듯 읽어 내려간다. 피고인이 처음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증거를 냈는지, 수사기관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살핀다. 그런데 정말 가끔, 기록을 읽다가 문득 손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이 증거를 왜 냈지?”, “이 말을 왜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유리하다고 제출한 자료가 오히려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되어있는 경우가 있다. 변호사의 조언 없이 억울함만으로 움직이다 보면,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스스로 내버리는 일이 생긴다. 이런 사례는 대부분 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 정보나 주변의 조언만 믿고 사건을 진행한 경우다.

 

예를 들어 무고를 주장하며 제출한 녹취 속에 오히려 범행을 자인하는 듯한 취지의 말이 들어있거나, 선처를 바란다며 낸 반성문에 오히려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표현이 적힌 경우가 있다.


심지어 조서를 읽다 보면 열변을 토하며 결백을 주장한 내용이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보강하는 꼴이 된 경우도 있다. 피고인의 눈에는 ‘억울함의 증거’지만, 재판부의 눈에는 ‘유죄의 증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법정에서는 말 한마디, 증거 한 장이 판결을 바꿀 수 있다. 한 번 제출된 자료는 돌이킬 수 없으며, 그 내용은 그대로 기록에 남아 재판부의 판단 근거가 된다.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잘못 낸 증거’, ‘잘못한 말’은 그 자체로 치명적이다.

 

게다가 법과 제도는 늘 변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스토킹은 범죄로 처벌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었고, 접근금지명령 등 보호조치도 가능해졌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공중협박죄’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위험 개념이 확장되면서, 예전엔 단순 장난으로 여겨지던 행동이 이제는 중대한 범죄로 평가받는다.

 

판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쌓인다. 한때 중대범죄로 다뤄졌던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새로운 개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범죄들이 대신하고 있다. 변호사가 이러한 변화를 놓치면 이미 효력을 잃은 법리에 의존해 구시대적 주장을 펼치거나 불리한 자료를 전략 없이 꺼내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사건을 맡을 때마다 기록을 끝까지 읽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미 제출된 증거 중에는 되돌릴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럴 때는 남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리한 증거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논리로 반박할지 전략을 세워야 한다. 때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아니라 ‘증거의 해석 가능성’이 판결의 향방을 가르는 경우도 있다. 법정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거와 논리로 다투는 곳이다.

 

꽤 오랜 시간 변호사로 활동해 오면서 잘못 낸 증거, 잘못한 말이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는 직접 수없이 다뤄왔다. 그럼에도 매번 사건 기록을 넘길 때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법정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냉정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기록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곧 판결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만약 사건을 혼자 진행하고 싶다면, 최소한 변호사 상담이라도 받아보는 게 좋다.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단순한 사건이라면 나는 상담 과정에서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절대 혼자 진행해서는 안 되는 사건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경계를 일반인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