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골프코스 설계도면에 저작권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둘러싼 분쟁에서 설계자의 창작성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기능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저작물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외국계 골프코스 설계회사 골프플랜 인코퍼레이션이 골프존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보호 대상인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제4조 제1항 제5호는 건축물 및 설계도서를 저작물의 한 유형으로 예시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골프코스 설계도면이 이러한 ‘창작물’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사건은 스크린골프 영상 제작 과정에서 실제 골프코스 설계도면이 무단 활용됐는지를 둘러싸고 불거졌다. 골프플랜은 국내 골프장 소유주들과 설계계약을 체결해 각 코스 설계를 완료했고, 해당 설계도면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골프존은 스크린골프 시뮬레이터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개발하면서 국내외 골프장을 구현한 3D 코스 영상을 제작·제공해 왔다. 골프플랜은 이 과정에서 자사의 설계도면이 기초 자료로 활용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골프코스 설계도면이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토대로 제작된 영상이 원저작물의 창작적 표현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며 일부 침해를 인정했다. 다만 손해배상 범위 등에서는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설계도면의 저작물성을 부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골프코스 설계가 지형, 홀 규격, 경기 규칙, 안전 확보 등 기능적 요소에 의해 상당 부분 제약된다”며 “설계도면에 표현된 형상과 배치가 창작자의 개성을 드러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골프코스 설계자가 골프 규칙과 부지 지형이라는 제약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범위 안에서도 다양한 구성 방식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티잉그라운드, 페어웨이, 러프, 벙커, 워터해저드, 그린의 형태와 크기, 각 요소의 위치 관계, 홀 간 연결 구조와 동선, 전체 코스의 미적 형상 등은 설계자의 선택과 배치, 조합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며 “이러한 선택·배치·조합의 결과가 단순한 관행적 형태를 넘어 창작자의 개성이 드러난 표현이라면 저작물로 보호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저작권법상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별’ 원칙을 전제로 한 판단으로 해석된다.
골프 규칙이나 지형 조건 자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또는 제약 요소에 해당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형상과 배열을 택했는지는 표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기능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표현의 창작성을 일률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특히 설계도면에 구현된 구성요소의 배열이 단순 모방이 아니고, 누구라도 동일하게 설계할 수밖에 없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면 창작성이 인정될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건축 설계도면이나 조경 설계처럼 기능성과 창작성이 결합된 분야에서 저작권 보호 범위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의미가 있다”며 “기능적 제약이 존재하더라도 설계자의 선택과 배열, 조합에 개성이 반영돼 있다면 저작물로 보호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