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간 메신저 영업비밀 공유도 ‘누설·취득’ 해당…대법 판단

공범 간 전달도 영업비밀 침해로 판단

 

회사의 핵심 영업비밀을 경쟁업체로 함께 이직한 직원들끼리 메신저를 통해 공유한 행위 역시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누설’ 및 ‘취득’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공범 사이에서 이뤄진 정보 전달이라도 상대방이 해당 기술을 알지 못했다면 별도의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취지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 씨 사건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씨는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 검사장비 부품인 이른바 ‘그래버’를 설계·제작하는 A사 소속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해당 회사는 관련 기술력을 기반으로 애플과 삼성전자 등에 부품을 공급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자 이 씨와 일부 연구 인력이 경쟁업체인 B사로 자리를 옮겼고 이 씨는 신규 회사에서 그래버 개발 업무를 총괄했다.

 

수사 결과 이 씨는 이직 과정에서 동료 엔지니어들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과 이메일, USB 저장장치 등을 이용해 회로도와 부품 목록 등 A사의 개발 자료를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를 영업비밀 유출 행위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해당 기술이 상당한 연구개발 비용과 장기간 축적된 노하우의 결과물로서 비공지성, 독립된 경제적 가치, 비밀관리성을 갖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영업비밀이 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합리적인 비밀관리 조치가 존재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 기준과 동일한 취지다.

 

다만 피고인들이 서로 자료를 주고받은 행위에 대해서는 영업비밀 ‘사용’만 인정하고, 별도의 ‘누설’ 또는 ‘취득’에 따른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범들이 이미 확보한 정보를 공동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달한 경우 이는 사용을 위한 내부 공유에 불과하며, 제3자에게 비밀을 제공한 경우와 동일하게 평가하기 어렵다”며 각각 징역 1~2년에 집행유예 2~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판단을 일부 달리했다. 2심은 이 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는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씨는 R&D센터 이사로서 그래버 부품 리스트를 제3자에게 누설한 뒤 B사로 이직해 개발 업무를 총괄하는 등 영업비밀 사용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피고인들 사이의 자료 전달 행위 자체가 별도의 영업비밀 취득 또는 누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1·2심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동정범 사이의 정보 전달은 내부 활용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판단이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이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취득·사용·누설·무단유출’ 등으로 각각 독립된 범죄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 아래, 해당 정보를 알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자료를 제공했다면 공모 관계나 공동 사용 계획과 무관하게 제공자는 ‘누설’, 수령자는 ‘취득’ 행위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즉 공동정범 사이의 전달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영업비밀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법익 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영업비밀을 알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정보를 제공한 경우 공동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며 “원심이 영업비밀 누설 및 취득 성립 기준을 잘못 해석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단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은 회사 자료를 무단으로 복사하거나 개인 저장장치에 보관한 행위만으로도 영업비밀 ‘취득’ 단계의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또한 경쟁업체 이직을 염두에 두고 기술자료를 이메일로 전송한 경우에도 실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바 있다(대법원 2018도15828).

 

법무법인 태율 김상균 변호사는 “같은 조직 구성원 간 공유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며 “기술 인력 집단 이직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자료 공유에 형사책임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실무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