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가 있는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제가 구치소에 수감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됐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 내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쯤에는 ‘실제로 일을 주도하고 지시했던 사람은 밖에 있는데 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나’ 하는 억울함에 사로잡혀, 제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남 탓을 하기 바빴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나의 탓이며,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던 일이 잘못된 일인 것을 알게 됐을 때 똑바로 생각해 보고 일을 그만둘 용기를 냈어야 했습니다. 제가 제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제 의견을 주장하지 못하며 살았던 결과 이곳까지 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제가 했던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을 수는 없지만, 지금은 사회로 돌아갔을 때 다시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처음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이송되던 날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눈물을 흘리며, 행여 나오는 호송 차량에 남편이 타고 있지 않을까 발을 동
제가 지내는 이곳 방에는 마흔 개의 하늘이 있습니다. 밖을 바라보는 창에 차가운 쇠창살이 드리워져 하늘이 마흔 개로 조각나 보이는 탓입니다. 넓은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는 탓인지 생각도 점차 얕아져, 어머니의 가슴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겨드렸네요. 어찌해야 할까요? 지금 제 눈가에 어룽어룽 맺힌 이 눈물이 어머니 가슴에 얼룩진 상처를 지울 수 있을까요? 매번 드리는 죄송하다는 말이 오늘도 역시 못난 아들의 인사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매번 어리석음에 취해 무엇인지 알면서도 아직까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저는, 언제쯤이면 어머니와 침묵 속에서도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누며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을 넉넉히 나눌 수 있게 될까요? 제 나이가 벌써 40대 후반입니다. 그런데도 투정을 부리며 삶의 비포장길을 걸어가는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오늘 무슨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셨나요? 감사 쓰기를 하면서 소장상을 안겨드리고 환히 웃으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머릿속에 감사를 채우려 분투하기 전에 모자란 인성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오늘 접견실을 나서며 깨달았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표현은 못 했지만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나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장하면서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건축 설계 회사에 취업해 열심히 일했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에 비하면 승진도 빨랐고, 모든 것이 너무나 순조롭게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결혼을 했고,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던 힘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처음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방황했고, 어떻게든 감당해 보려 했으나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러면서 점점 부부 사이가 멀어졌고, 결국에는 이혼까지 하게 되면서 인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좋지 않은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을 마셨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내다 한순간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구속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이곳에서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고 이게 정말인지 알 수 없어 부끄럽다. 분명한 건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나다운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서 숱하게 고민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답게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남은 날들은 최선을 다해서,
안녕하세요. 저는 2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재판을 받은 끝에 형이 확정되어 최근 기결수가 된 사람입니다. 항소에 상고를 거치며 여러 교도소를 오갔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20대 젊은 나이에 중형을 선고받고 그동안 일궈온 모든 노력이 순간 물거품이 되어 삶의 의욕마저 상실한 분도 있었고, 2년여 전 교도소에서 만날 무렵 출소하고 사회 복귀를 했었는데 몇 달 만에 다시 죄를 짓고 들어와 금방 교도소에서 재회한 분도 있었습니다. 또 30년간 공직 생활을 한 공무원이었는데, 뇌물수수죄로 재판을 받으며 그동안 쌓은 커리어가 무너진 분도 생각납니다. 이처럼 삶이 무너진 이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저 자신에 대한 깊은 상실감과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지독했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교 1등을 목표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높은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취준생 시절에는 대기업을 목표로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방향을 설정하는 것보다는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도록 속도를 내는 것에 치중하게 됐습니다. 몇 번의 실패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실패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한 번에 큰돈을 벌어들이
형사사건에서 ‘자백’과 ‘부인’은 일견 단순한 선택처럼 보인다. 자백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는 것이고, 부인은 혐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의 현장에서 이 두 선택은 결코 단순한 진실 고백이나 부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백과 부인은 각 사건이 가진 증거의 구조와 성격에 따라 선택되어야 할 전략적 판단에 가깝다.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 자백과 부인은 재판에 임하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이익과 불이익의 문제다.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죄사실에 대한 자백’을 흔히 ‘진지한 반성의 태도’로 평가한다. 실제로 양형 단계에서 자백 여부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 다만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반성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선택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최근 형사사건의 상당수는 CCTV, 블랙박스, 위치정보 등 명백한 물적 증거를 중심으로 판단된다. 특히 교통사고, 폭행, 성범죄 사건에서는 행위 자체가 영상으로 특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건에서 수사 초기 단계에 어떤 영상과 기록이 존재하는지를 파악하지 않은 채 무작정 부인을 선택하는 것은, 설령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스스로를
Q.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단기 1년 6개월, 장기 2년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입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공범이 ‘간단한 고액 알바’라며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날 경복궁 담벼락에 락카로 홍보 글만 쓰면 된다고 했고, 대가로 500만원을주겠다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믿기 어려웠고, 선입금을 해 주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공범은 “먹튀하는 사 람이 많아 그동안 피해를 많이 봤다”며 영상통화와 캡처 화면을 통해 대차 내역과 코인 송금 내역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공범을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됐습니다. 공범은 장소를 알려주면서 마스크와 락카를 구매해야 한다고 했고, 교통비 5만원과 물품비 5만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대리 이체를 통해 총 10만원을 입금받았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종로 인근 골목에서 내려 안내받은 대로 1분 정도 걸어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홍보 문구를 작성했고 작업을 마친 뒤 현금을 받을 장소를 물었지만, 공범은 제게 일단 수원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수원역에 도착하자 공범은 연락을 끊고 제 연락을 차단했습니다. 결국 저는 교통비와 락카 비용으로 받은 10만원
1심 선고 이후 피고인이 마주하는 항소심의 무게는 실로 무겁다. 특히 형사 재판 1심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법정 구속된 피고인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억울함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태에서 항소심을 준비하게 되지만, 담장 안이라는 물리적 제약은 방어권 행사를 더욱 가혹하게 제한한다. 그럼에도 항소심은 1심 판결에 내재한 사실 오인과 법리적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실질적인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감정이 아닌 냉철한 전략이 요구된다.경찰 수사 현장 최일선에서 수사 실무를 담당하며 직접 목격해 온 현실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았다. 수사기관의 예단이나 고소인의 일방적 진술이 판결의 결정적 근거로 작용하는 사례가 결코 드물지 않았다. 특히 객관적 물증이 부족한 사건일수록 피고인은 이미 ‘가해자’로 규정된 상태에서 방어를 시작하게 되는 구조적 불균형에 놓인다. 이러한 왜곡된 출발선은 항소심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핵심 과제다. 항소심은 1심 판단을 기초로 심리하는 사후심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단순한 억울함의 호소는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항소심에서 요구되는 것은 감정이 아닌 논리다. 첫째,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에 대한 정밀한
최근 의뢰인과 상담을 하다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의뢰인이 “이게 맞지 않나요?”라며 본인이 찾은 법률 지식을 내게 역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그런데 살펴보니 내용이 실제 법이나 판례와 전혀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놓친 법 개정이 있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차분히 정리해 보니 대부분 AI의 설명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검색을 통해 접한 정보들이었다. 이유를 알게 되자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터넷 검색, AI, SNS까지 더해지면서 법률 정보에 접근하는 통로가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문제는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그대로 사실처럼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딥러닝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고도로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존재하지 않는 판례나 조문을 실제처럼 만들어 내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 포털 상단에 노출되는 법률 게시글들 역시 상당수가 광고 목적의 글이고, 법률 카페에서는 회원들끼리의 경험담이나 추측을 섞어가며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흔하다. 이 과정에서 정보는 빠르게 퍼지지만, 정확성은 점점 희석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보들이 단순히 ‘틀렸다’는 차원을 넘어 실제 법률 분쟁에서 당사자의 판단을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