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는 6시간 만에 막을 내리며 ‘실패한 내란’으로 기록됐다. 이번 계엄 실패의 배경에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경험과 함께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은 신문, TV, 라디오 등 전통 언론을 통제하며 정보를 장악했다. 광주의 참혹한 상황은 외부에 철저히 차단됐고, 거짓 정보를 통해 국민을 속일 수 있었다.
반면 이번 계엄 선포 당시에는 언론과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기사를 송출하고, SNS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전국 상황을 즉시 공유했다.
통제의 시대에서 소통의 시대로 바뀐 정보 환경은 계엄군의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과거 5·18 당시 계엄군은 명령에 따라 무력 진압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계엄군 내부에서조차 혼선이 생겼다.
젊은 군인들은 **"계엄령 선포는 시대착오적 명령"**이라며 동요했고, 지휘 체계도 흔들렸다. 무력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군 내부에서도 확산된 것이다.
80년 5월, 계엄에 저항한 주체는 주로 20대 대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에 맞선 주체는 세대를 아우르는 전 국민이었다.
특히, 젊은 시절 5·18을 경험했던 50·60대 세대는 민주화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번 사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배운 10·20대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하며 시민 저항에 앞장섰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야당 의원들은 국회로 집결해 계엄군의 진입을 저지하며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회와 시민의 협력은 계엄령을 조기 종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 시민의 나라”**라며 “80년에는 목숨을 걸고, 박근혜 정권 때는 촛불을 들었고, 이번에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계엄을 막아냈다”고 평가했다.
이는 과거와 달리 폭력 대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쿠데타 시도를 저지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극단적 조치였지만, 오히려 온라인에서는 이를 풍자하는 SNS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영화 ‘서울의 봄’의 포스터를 패러디해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서울의 겨울’, ‘취했나 봄’ 등 이미지는 큰 화제를 모았다.
SNS에서 공유된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영화 대사도 이번 계엄령 사태와 맞물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