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에서 원심이 파기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 항소심에서의 감형 기준과 판결의 일관성을 놓고 논란이 커지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2022년 발생한 ‘대구판 돌려차기 사건’의 경우, 1심에서 징역 50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징역 27년을 받으며 형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피해자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 컸고, 사회적 충격이 상당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감형해 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처럼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크게 변경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법조계에서는 특별한 사정 변경 없이 항소심이 쉽게 원심을 파기하는 경향이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더시사법률>이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의 항소심 판결문 41건을 분석한 결과, 원심 파기의 주요 사유가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형의 이유로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가 37건(90%)이었으며, 특별한 사정변경 없이 피고인의 반성이나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는 점이 이유가 된 사례가 4건이었다.
합의에 의한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 누범이 아닌 이상 피해액을 전액 변제 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재판부별로 판결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5억 3,123만 원 규모의 사기를 벌인 피고인이 피해액 중 일부인 8,426만 원(약 12.6%)을 변제한 결과, 징역 2년에서 1년 10개월로 2개월 감형된 사례가 있는 반면, 또 다른 사건에서는 피해액 5억 7,332만 원 중 7,000만 원(약 12.2%)을 변제하고 징역 3년에서 2년으로 감형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비슷한 사건이라도 감형의 폭이 재판부마다 다르게 적용되고 있었다.
한편, 특별한 사정변경이 없고 피해자와의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감형된 사례도 있었다. 원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던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 2개월로 감형되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고,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피고인의 전과가 2011년 벌금형 1건 뿐인 점, 피고인에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점”을 이유로 들며 원심을 파기하였다.
이러한 감형사유는 이미 1심에서 양형 판단에 반영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새롭게 고려해 원심을 파기한 것으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1심에서 고려된 양형 요소가 항소심에서 새롭게 사정변경으로 인정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정변경 없이 항소심 재판부가 원심을 파기하는 것에 대한 논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015. 7. 23. 선고 2015도3260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항소심에서 1심의 형량이 합리적인 범위 내에 속하는 경우 존중해야 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항소심의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형량을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법무법인 민 윤수복 변호사는 “사정변경에 의한 원심 파기 또한 지역별 법원의 판결이 일관되지 않고 있으며, 양형 기준을 보다 명확하고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려면,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존중하는 원칙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