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보이스피싱 수거책, 범행내용 몰라도 가담 인식 있었다면 공범”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이 범행의 전모를 정확히 몰랐다고 하더라도 범행에 가담한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었다면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2인 이상의 범죄에서 공모는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되고, 비록 전체의 모의 과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 사람 사이에 순차적·암묵적으로 상통해 의사 결합이 이뤄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기의 공모공동정범이 그 기망방법을 구체적으로 몰랐다고 하더라도 공모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여행업체 업무를 제안받았는데, 채용 과정에서 건당 20만 원을 수당으로 받는 것만 확인했고 자신을 채용한 업체의 명칭, 조직, 업무 등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당초 설명받은 여행업체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은행 명의 사문서를 파일로 전송받아 이를 출력해 피해자에게 교부했고, 피해자들에게 받은 현금을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인적 사항을 이용해 제3자에게 송금했다”며 “통상의 수금 방식이 아니고, 피고인은 은행 문서도 거짓으로 작성, 위조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은 현금 수거 업무가 보이스피싱 등 범행에 가담하는 것임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에는 사기죄 등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A 씨는 2022년 3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은행 명의 ‘완납 증명서’ 파일을 받아 출력해, 위조 사실을 모르는 피해자에게 교부하고 2,600만 원을 받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조직원이 피해자들에게 전화해 대출과 관련한 거짓말을 하면 피해자들을 찾아가 현금을 받아오는 현금 수거책 역할을 한 혐의도 받았다.


앞서 1심은 “보이스피싱 범행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심각하므로 범행에 일부 가담한 조직원이라도 엄중히 처벌해 재발을 방지할 필요성이 크다”며 “피고인이 일부 범행 과정에서 사문서를 위조해 행사하기까지 했고, 편취액이 1억2,110만 원에 이르러 피해가 상당하나 피해자들에게 피해회복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며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피고인은 구체적 업무지시를 받고 현금 수거 업무를 기계적, 반복적으로 수행했는데, 해당 지시 내용만으로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자신이 사기 범행의 일부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파기하고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