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경력이 길지 않았던 때 담당했던 사건이었다. 한국인 남편과 조선족 아내 부부가 함께 구속되었다. 혐의는 보이스피싱. 두 사람을 처음 접견하던 날, 남편은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도 본인들에게 일어난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변호사님, 보이스피싱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저희는 그냥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을 뿐이에요.” 아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오열을 할 뿐이었다. 아내가 환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환전소에서 사용하던 통장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되었고, 입금된 돈을 중국의 다른 통장으로 이른바 ‘환치기’ 수법으로 보낸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된 것으로 보였다. 겉보기에 부부의 사연은 영락없는 보이스피싱 범행이었다.
보이스피싱 범행의 특성은 점조직이라는 점에 있다. 계획을 세우는 사람, 피해자를 속이는 사람,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사람, 그리고 피해금을 인출하거나 송금하는 사람까지 모두 각기 따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특히 인출책이나 송금책의 경우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잘 알지 못하고 본인이 정확히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형사 소송에서 범행의 고의는 엄격하게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이 원칙이 예외적으로 완화된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인식’만으로도 고의를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아내의 눈물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부부의 억울한 마음과 별개로 이들이 놓인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자신들이 사용하던 통장으로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되었고, 범인으로 지목된 아내가 하필이면 환전소 운영자였다. 변호사인 나조차도 부부의 범행 가담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다는 말만 믿고 무작정 무죄 변론을 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유죄 인정 시엔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호인이라면 의뢰인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변론을 하는 사람이고, 의뢰인의 말을 신뢰하고 변론을 해야 한다. 고민이 깊어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말썽을 일으키던 위가 어김없이 말썽을 부렸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위장약을 삼킨 채 증거기록을 열람하기 시작했다.
검사가 제출한 자료들을 상세히 살펴보았다. 유죄가 확실한 것처럼 보였던 사건에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남편의 경우 통장에 입출금 되는 금원의 출처는 알지 못한 채 아내의 부탁으로 일회성 인출을 한 것이 전부였다. 또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800만 원 정도로 크지 않았다. 확인된 피해자는 단 1명뿐이었다. 아내가 돈을 빌려주었다는 중국인 친구의 행방이 묘연했지만, 확실한 사실들을 강조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1심에서 남편은 무죄를 받아 석방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징역 3년의 중형이 선고되었다. 피해금 800만 원에 징역 3년이라니 믿기 어려웠다. 너무나 참담한 결과였다. 무죄 변론이 일부 성공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혐의를 인정했더라면 형량이라도 적게 나오지 않았을까. 커다란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다시 구치소를 찾았다. 1심의 유죄 판결을 2심에서 뒤집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다투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항소심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주었다는 중국인 친구를 찾는 일이 절실했다. 또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확인해 줄 증인도 필요했다. 수개월의 노력 끝에 마침내 중국에서 은신 중이던 친구를 찾아 사실 확인서를 받을 수 있었고, 입금된 피해금을 포함한 돈을 지인에게 빌려주었다는 증언도 확보하였다. 나는 변호인의견으로 공소사실의 허점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드디어 항소심 결과가 나오는 날, 1심 결과를 뒤집고 무죄가 나왔다. 항소심 무죄는 검사의 상고가 기각되며 확정되었다. 나는 부부만큼이나 기뻐했다. 아무리 두드려도 끄떡하지 않을 것 같은 벽을 깨부순 것 같았다. 꼼짝없이 보이스피싱범이 될 뻔한 사람을 건져냈다는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자백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의뢰인을 깊이 신뢰하고 뚝심 있게 변론을 이어갔던 이때의 경험은 변호사로서의 큰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