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형사k 갱티고개 미제 살인사건을 해결하다]

2002년 충남 아산 초사동 갱티고개에서 석 달 간격으로 두 건의 미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첫 번째 사건은 2002년 4월 19일이었다.

 

갱티고개에서 등산을 하던 주민이 등산로 옆 비탈에 쓰러진 피투성이 여성 사체를 보고 신고가 들어왔다. 형사들은 곧바로 출동해 지문감식에 들어갔다. 피해자는 남편과 사별 후 아산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A씨였다.

 

수사팀은 피해자의 차량도 그녀의 노래방 근처에서 곧바로 찾아냈다. 차량 안전벨트에서 혈흔이 발견됐고 차 안에서 침 묻은 담배꽁초도 나왔다.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다만 범인이 장갑을 썼는지 차에서 지문은 나오지 않았다. 허나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고 혈흔과 DNA도 나왔으니 형사들은 범인을 금방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수사팀은 피해자의 현금을 인출하는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의 CCTV 사진도 확보했다.

 

하지만 형사들은 범인을 쉽게 추적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으나, 사건은 예기치 못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용의자 중 범인의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3개월 후 갱티고개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며, 두 사건 모두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아산경찰서의 형사 K는 부리부리한 눈과 호랑이 같은 날카로운 안광을 지닌 장신의 형사였다. 2002년 갱티고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그의 관할이 아니어서 직접 수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 사건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천안 아산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대형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2년 수사 당시, 갱티고개 인근이 범인들의 도주로로 밝혀졌는데, 그 도로는 형사 K에게 매우 익숙한 길이었다. 고교 시절 등하굣길로 다녔던 데다 평소에도 자주 오가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그는 갱티고개 주변을 지날 때마다 이 첫 번째 살인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015년, 대한민국 국회는 태완이법 통과로 떠들썩했다. 이 법안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수많은 살인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갱티고개 살인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이 사건은 이후 2013년과 2015년에 재조사가 이루어졌지만, 형사 K는 당시 다른 경찰서에 소속되어 있어 직접 참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건이 자신과 인연이 닿을 것이라는 운명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형사들에게는 종종 그런 예감이 있다. 마치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수사를 마무리 짓고 범인을 잡게 될 것 같은 강렬한 직감이 드는 사건이 있기 마련이었다. 갱티고개 살인사건이 바로 형사 K에게 그런 사건이었다.

 

2017년, 마침내 형사 K는 운명의 사건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토록 염원하며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했던 갱티고개 살인사건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팀장을 맡은 강력팀이 재수사를 담당하게 되었고, 형사 K는 프로파일러와 과학수사 요원들과 함께 사건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형사 K는 2002년 당시 놓쳤던 단서가 무엇인지 철저히 살펴보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는 기록 속에서 한 장의 프린트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사건이 발생한 새벽 시간대, 노래방 인근 기지국에서 전화 통화를 한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인쇄한 자료였다. 이 평범해 보이는 종이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쳤다.

형사 K는 팀원들과 함께 사건 당일 통화 기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노래방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남긴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와 통화자 명단을 대조하며 단서를 찾고자 했다.

 

그러던 중, 명함을 남긴 손님 중 한 명이 그날 새벽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었고, 수신자의 당시 위치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발신 기지국이 노래방 근처였다는 사실 외에는 단서를 찾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형사 K는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명함 주인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2002년 갱티고개 살인사건 당시 이미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명함의 주인 B씨(남성, 50대 초반)는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36세의 젊은 나이였다. 그는 당시 노래방에 남긴 명함 때문에 이미 탐문조사를 받은 남자였다.

 

심지어 B씨는 피해자가 운영하던 노래방의 단골손님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2013년, 피해자의 돈을 인출한 동선과 관련된 제보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B씨가 풀려난 이유는 DNA 감식 결과 용의자의 DNA와 일치하지 않았고, 현금을 인출한 남자의 체격과도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이 다시 사건의 중심에 떠오르면서 수사는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형사 K는 2013년에 B씨를 조사했던 형사를 직접 찾아갔다. 당시 조사에 관여했던 형사는 B씨가 본범은 아니더라도 범행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사 후 B씨의 휴대전화와 집 전화의 통화 내역까지 철저히 분석했지만, 특이점이나 결정적인 단서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형사 K가 보기에도 B씨는 유력한 용의자였다. 일단 택시강도 전과가 있었다. 또 형사 K가 고교시절 갱티고개를 오간 것처럼, 용의자 B씨 역시 어린 시절 갱티고개에서 살았다. 한 사람은 갱티고개를 오가던 시절을 지나 형사가 됐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살인 용의자가 됐다.

 

형사 K는 계속해서 자료를 모았다. 그의 180cm가 넘는 키보다 훨씬 높게 서류가 쌓여갔다. 어느새 서류 더미는 그의 키를 넘어섰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그의 집념은 그만큼이나 높아져 있었다.

 

형사 K는 과거의 증거들을 토대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 끝에 B씨를 충남 지역의 한 성인 PC방에서 검거했다. 형사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자 B씨는 흠칫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B씨는 공소시효가 폐지된 사실을 모르고 공소시효가 끝난 줄로만 믿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공소시효 기간 동안 그는 숨어 지냈으며,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생각한 후 충남에 나타나 성인 PC방을 개업했던 것이다.

 

형사 K는 B씨의 심리를 이용하며 치밀한 신문을 이어갔다. 끝까지 자백을 부인하던 B씨는 피해자의 사진을 꺼내 보여주자 얼굴 표정은 순간적으로 굳어버렸고, 눈빛에 불안과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형사 K는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압박을 이어갔다. 결국 B씨는 침묵 끝에 입을 열며 범행을 인정했다.

 

이어지는 신문 과정에서 B씨는 공범으로 조선족 C씨를 지목했다. C씨는 사건 이후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확인 결과 놀랍게도 C씨는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천안에서 택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형사 K는 C씨를 찾아갔다. C씨는 형사 K를 보자 태연한 표정으로 "왜 왔느냐"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형사들이 갱티고개 살인사건에 대해 묻자, 그는 범행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형사들이 이미 공범 B씨가 범행을 자백했다고 알려주자, C씨는 잠시 침묵하더니 "담배 한 대만 피우게 해달라"고 말했다. 담배를 피운 후 그는 결국 범행을 시인했다.

2002년 당시, B씨와 C씨는 함께 폐기물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술값으로 월급을 탕진하기 일쑤였다. C씨의 증언에 따르면, B씨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단골 노래방 주인인 A씨를 살해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심지어 B씨는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직접 총포상에서 칼을 사서 C씨에게 건넸다고 했다.

 

2002년 4월 18일 새벽 2시 30분, B씨와 C씨는 피해자 A씨의 노래방에 남아 있던 마지막 손님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가게를 나간 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A씨가 영업을 마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렸다.

 

A씨가 가게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자,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집이 멀지 않으니 차로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A씨는 이들이 단골 손님이었기에 별다른 경계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순간의 방심이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

 

차에 탄 뒤, 두 사람은 돌연 강도로 돌변해 A씨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때 A씨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C씨의 손가락을 깨물었고, 이 과정에서 C씨의 혈흔이 차 내부에 남게 되었다. 이 작은 흔적이 훗날 사건의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그때까지 피해자 A씨는 아직 살아 있었다. 두 사람은 갱티고개에서 A씨를 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갱티고개에 올라가 기절해 있던 피해자를 살해했다.

 

두 사람은 그들이 살해한 피해자의 사체를 등산로 아래 캄캄한 어둠 속으로 내던졌다. 하지만 피해자의 사체가 나뭇가지에 걸려 다음 날 아침 쉽게 발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살해당한 피해자의 이 억울한 사연이 밝혀지기까지는 무려 15년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형사 K는 그토록 염원하던 갱티고개 미제사건을 해결하자 감회가 깊었다. 이제야 억울한 피해자의 원혼을 달래준 것만 같았다. 형사 K는 이 갱티고개 미제 살인사건을 끝내자 마음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2002년 7월 25일 조리실에서 근무하는 D씨(여성, 40대)는 남편에게 출근한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하지만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고 남편의 실종 신고 이후 그녀는 갱티고개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D씨의 사인은 질식사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건의 기괴함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몸에는 자동차 타이어에 밟힌 듯한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를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명백한 살인 사건으로 판단했다.

 

당시 피해자 D씨를 태운 택시의 운행기록은 지워진 상태였고, 이 택시를 교대로 운전한 기사는 두 명이었다. 하지만 두 명의 운전사에게 더는 혐의를 찾을 수가 없어 더 이상 수사는 진전되지 않았다. 갱티고개를 배회하는 어둠 속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그들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