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1988년 영등포교도소 집단탈옥 사건 당시 지강헌이 남긴 이 말은 지금도 한국 사회의 형사 사법 체계의 불평등을 상징한다. 당시 지강헌은 총 556만 원 상당의 절도 혐의로 징역 7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권력층 인사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수십억 원대의 횡령죄로 징역 7년형을 받았음에도 3년 만에 석방됐다.
지강헌은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기 전 인질들에게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보태 17년 썩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해서 탈주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보호감호제도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사회 불만 세력 및 상습범·강력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사회보호법에 근거해 형기 종료 후에도 보호감호시설에 수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으며, 대표적인 시설로는 경북 청송의 청송감호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중처벌 논란과 인권침해 문제로 인해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5년 7월, 사회보호법이 폐지되면서 보호감호제도도 함께 폐지되었다. 이에 따라 청송감호소는 경북북부교도소에 속한 경북북부제3교도소로 변경됐다.
하지만 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부칙에 따라 2005년 7월 이전에 징역형과 함께 보호감호 처분을 받은 재소자는 기존 규정에 따라 계속 수감되고 있다. 이 때문에 형기를 마친 뒤에도 교도소에 다시 수감되어 수형 생활이 연장되고 있다. 이에 대해 2014년 헌법소원이 제기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했다.
구 사회보호법 폐지법률의 부칙은 이미 확정된 보호감호 판결의 효력을 유지하도록 규정했으며, 해당 판결에 따른 보호감호 집행에는 종전 사회보호법을 적용하도록 했다. 또한 보호감호 판결을 받아 집행 중이거나 집행 예정인 자는 계속해서 교도소에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보호감호 대신 도입된 보호관찰 제도는 범죄자의 사회 내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보호감호가 격리와 수용을 중심으로 했다면, 보호관찰은 사회 내에서 감독과 지도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보호감호가 폐지되기 전 이미 선고를 받은 이들은 여전히 교정시설에 수감 중이며, 결과적으로 보호감호제도는 기형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보호감호제도가 폐지된 후, 청송감호소는 경북북부제3교도소로 전환되었으며, 2018년 12월 17일 보호감호 시설은 천안교도소로 일원화됐다.
2020년 11월 14일, 천안교도소에서 보호감호를 받고 있던 17명의 감호자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6일째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은 ▲ 교도관이 아닌 법무부 산하 보호관찰소 직원이 관리·감독할 것 ▲ 법무보호복지공단이나 관할 보호관찰소에서 출·퇴근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을 요구했다. 감호자들은 “감호처분이 형벌이 아니라는 이유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면, 우리를 교도소가 아닌 보호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담장 밖에서 출퇴근하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출소 후 작은 월세방 하나라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제2의 강윤성 재범 막아야
또한, 사회 적응 훈련의 일환으로 교도소 내에서 하루 4시간씩 작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한 달 임금이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교도소에 격리된 보호감호의 가장 큰 문제는 재범 위험이다.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된 피보호감호자들이 출소 후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자립 기반이 마련되지 못한 채 사회로 복귀할 경우, 이들은 또다시 사회에서 외면받아 재범 위험에 놓일 수 있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보호감호자들은 “장기간의 수형 생활과 범죄 이력으로 인해 가족 관계가 단절되어 외부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어 “무료로 지급되는 생활용품이 충분하지 않아 부족한 물품을 자비로 구매해야 한다”며 “출소 후 생계를 준비하려면 일정한 보관금이 필요하지만,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도소 내 근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2020년 11월 14일 보호감호자 17명의 단식투쟁자 중에는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두 명을 살해한 강윤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윤성은 1996년 한 여성을 폭행·강간한 혐의로 징역 5년과 보호감호 처분을 받았으며, 2005년 가출소했으나 5개월 만에 또다시 성범죄를 저질러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보호감호 가출소가 취소돼 2020년부터 천안교도소에서 보호감호 재집행을 받았다. 그는 2021년 8월, 전자발찌를 훼손한 후 여성 두 명을 연달아 살해하며 “돈이 필요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은 보호감호 제도의 실효성과 재범 방지 효과에 대한 의문을 다시 한번 제기하게 만들었다. 보호감호가 출소 후 자립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기 수용으로 인한 사회 적응 실패와 재범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은 사회적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보호감호, 단순 격리로 전락
현재 이들을 관리하는 교정본부(교정시설)는 기본적으로 형벌의 집행과 수형자의 교정·교화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반면, 보호감호는 형벌이 아닌 사회 방위를 위한 예방적 처분(보안처분)으로, 형법상 책임이 아닌 재범 위험성을 근거로 하는 행정적 성격을 가진다. 이에 따라, 교정본부에서 보호감호를 시행하면 형벌의 연장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으며, 사회복귀를 위한 교육·치료보다는 단순한 격리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오래동안 지적되어 왔다.
2022년 인권위의 정책 권고에 따르면, 피보호감호자 수용 및 대기 현황은 2023년 6월 기준으로 집행 4명, 대기 인원 25명이다.
현재 교정본부는 보호감호 수용자가 급격히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별도의 공간에서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시설 운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보호감호에 대해 “형벌과는 다르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결에 따르면,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형자들을 수용하는 교도소와 피보호감호자를 수용하는 시설은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들을 별도로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시설이 없는 상태다. 교도소 내 생활층이 분리되어 있더라도 어차피 모두 한 집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현재 교정시설은 평균 수용률이 120%를 넘을 정도로 과밀한 상황이다. 그러나 보호감호 수용자들은 일반 수형자들과 함께 수용되지 않고 별도의 사동에서 관리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제한된 공간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며, 법무부가 보호감호 수용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일반 수형자들에게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현재 천안교도소의 보호감호자는 일반 교도관이 담당하고 있으나, 이들은 사회보호법 취지에 맞는 상습범의 재사회화를 위한 별도의 훈련이나 교육 과정을 받지 않고 있다.
실제로 2003년 법무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보호감호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던 당시, 출소 이전부터 보호감호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법무부는 갱생보호공단(현재의 한국법무복지공단) 내에 가출소 전담 사회복귀지원센터를 설치하고, 개방형 감호소 내에 사회복귀과를 신설, 이를 통해 출소 전부터 1:1 결연 제공, 취업 및 직업훈련 알선 등 보호감호자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방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공익법단체 이상현 변호사는 “제2의 강윤성을 막기 위해 법무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재범이 발생했을 때 단순히 범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교정본부에 이들을 맡겨놓고 외면한 법무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 국민은 보호감호소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며 “재범 방지를 위해 기존 보호감호 수용자들에 대한 합리적인 조치와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상현 변호사는 “단순한 격리와 수용을 넘어 심리 상담, 직업훈련, 가족 연계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재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다”며 “노동은 사회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현 제도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보상금이 턱없이 적은 수준이며, 이로 인해 출소 후 생활고에 직면한 수용자들이 다시 재범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