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14화) 당진 경찰서 형사 C의 자매 살인범 추적기 (2)

당진부터 울산까지 추적해
술어 절은 채 체포된 범인
금품에 대한 탐욕이 덜미
횡재라 생각한 돈이 덫으로

7월 2일 오전 충남 당진경찰서, 강력2팀의 형사 C는 긴급통신영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살해당한 두 자매 A 씨와 B 씨, 그리고 동생 A 씨의 연인이자 살인 용의자인 D 씨의 휴대폰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각까지도 형사들은 D 씨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형사들은 두 자매의 카드내역 확인을 위해 금융계좌 압수수색영장도 신청했다.

 

형사들은 세 사람의 통화내역과 자매의 카드 사용기록을 확인하면서 범인의 동선을 추적할 계획이었다. D 씨가 두 자매의 신용카드를 훔쳐 간 상태였기 때문에 도피 중 해당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거나 결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베테랑 형사들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6월 26일 새벽 4시경 당진시의 한 편의점 ATM 기계에서 언니 B 씨 명의의 체크카드에서 30만 원이 인출된 기록이 확인됐다. 그리고 같은 날 대전에서 D 씨는 또 다른 ATM 기계에서 300만 원을 인출했다. 범인이 당진에서 범행 직후 곧바로 대전으로 도주했다는 증거였다.

 

D 씨의 움직임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7월 1일 밤 11시경에 D 씨는 다시 당진시의 한 은행으로 돌아와 129만 원을 추가로 인출해갔다. 당진경찰서 강력2팀 형사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D 씨가 현금을 인출했던 은행의 CCTV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강력2팀 형사들은 충남청 광역수사대와도 합동수사를 벌였다. 본격적인 광역 추적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충남청 광역수사대는 먼저 D 씨가 훔친 B 씨의 벤츠 차량의 도주 경로를 추적했다.

 

차량은 당진을 떠나 대전을 거쳐 울산으로 이동했다. 광역수사대는 울산에서 도주차량을 발견했지만 차량은 텅 비어 있었다. 인근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D 씨가 주차 중 접촉 사고를 일으키고 그대로 도주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후 D 씨는 버스를 이용해 부산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바로 D 씨의 고향이었다.


한편, 강력2팀의 형사 C는 대전의 판암IC로 급히 이동했다. D 씨가 도주 중 판암IC에서 2시간 정도 정차했던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형사들은 D 씨가 그 주변에 다른 증거를 남겨뒀을 가능성을 예상했다.

 

형사 C가 판암IC 주변에서 증거를 찾고 있을 때 드디어 D 씨의 휴대폰 전원이 켜졌다. 형사들은 바로 실시간 위치추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위치를 보고 받은 형사 C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형사들은 대전까지 내려와 있는데 정작 D 씨는 당진 시내의 한 모텔 인근에 있었던 것이다.

 

형사들은 곧장 차에 올라 당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이미 현장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진경찰서 강력2팀의 모든 형사가 D 씨의 실시간 위치가 포착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복 대기 상태를 지속하던 7월 2일 오후 5시 30분, 드디어 D 씨가 모텔에서 나와 시내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형사 C는 이미 그가 어디로 향할지를 예감할 수 있었다. 그곳은 구 버스터미널 정류장이었다.


형사 C와 형사들은 며칠 전, 사건을 처음 알렸던 민족주점 종업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가게 사장이자 피해자 B 씨는 부산에 다녀오겠다며 연락을 끊은 상태였고 그로 인해 가게 문을 열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7월 1일, 뜬금없이 사장의 여동생에게 가게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왔고, 통화연결은 되지 않았다. 수상한 기운을 느낀 제보자가 결국 B 씨의 자택을 찾았다가 충격적인 현장을 마주했던 과정을 생각해 보면 D 씨가 다시 당진으로 올라온 이유는 하나, 가게에 들어가 현금을 훔칠 목적이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에 다음 날인 7월 2일엔 다시 부산인 고향으로 내려갈 것으로 판단했다.


당진시 중앙로 2가에 있는 구 버스터미널 정류장은 오랜 세월 동안 당진의 시외버스 터미널로 사용됐던 곳으로 몇 년 전 시내 외곽에 신 버스터미널이 들어오면서 당진 시내에서 고속버스터미널을 가기 위해서는 구 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형사들은 D 씨가 구 버스터미널 정류장에 있을 것으로 보고 그쪽으로 움직였다. 형사들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오후, 구 버스터미널 정류장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행인 같았지만, 형사 C가 가까이 다가가니 술에 찌든 사람에게서 나는 악취가 풍겼다. 술에 절어 멍하니 앉아 있는 D 씨는 형사들이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도주에 지친 건지, 모든 걸 체념한 건지 범인 D 씨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되었다.


D 씨는 술의 노예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조서에서 자신은 원래 술에 취하면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그 버릇 때문에 A 씨를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A 씨와 같이 살면서 술을 끊자고 약속했지만 A 씨가 다시 입에 술을 대기 시작했고 다툼이 심해졌다고 했다.

 

결국엔 그 때문에 자신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변명이었다. 그러던 6월 25일, 둘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 A 씨가 먼저 잠이 들었고, 본인은 혼자 술을 계속 마시던 중 D 씨는 A 씨를 살해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자백했다. 알코올중독자인 A 씨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나고 억울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D 씨는 잠든 A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기에 이른다. 막상 A 씨를 살해하자 D 씨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그녀의 언니 B 씨에게 발각될 것이 걱정되었고, 곧바로 두 번째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물론 형사 C는 범인이 언니 B 씨를 살해한 이유가 단순히 ‘들킬까 봐’의 문제가 아닐 것으로 보았다. 형사 C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결국 D 씨는 본심을 털어놓았다.

 

평소 B 씨가 돈이 좀 있는 것으로 생각됐고 그날 밤 술기운 속에서 B 씨의 집에서 돈을 훔칠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문제는 현관문을 열 비밀번호를 몰랐다는 것이었지만 D 씨에게 큰 장벽은 아니었다. 소년원 시절 창문을 뜯어내는 방법을 동료들에게 배웠던 것이었다.


6월 26일 자정이 넘은 시간, D 씨는 창문을 뜯고 B 씨의 집에 들어갔다. 창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완벽히 복구시켜 놓았다. 하지만 정작 집에서 돈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D 씨는 어두운 빈집에서 B 씨를 기다렸고, 언니 B 씨는 자신의 동생이 살해됐고, 살인범이 자신의 집에 숨어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새벽 2시경 평소처럼 귀가했다. 그 시각, D 씨는 B 씨의 집 작은 방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샤워하는 동안 핸드백에서 신용카드와 휴대폰을 꺼내놓았고, 이후 B 씨가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목을 조르며 신용카드와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물었다. B 씨는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신고하지 않겠으니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D 씨는 B 씨의 숨이 끊길 때까지 목을 졸랐고, 이후 부산으로 도주했다.


D 씨는 B 씨의 명품 핸드백을 중간에 그냥 버렸다고 말했지만 형사 C는 그 말에 납득하지 않았다. 범행 동기 전체에서 그가 금품에 갖는 강한 욕망이 읽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품백을 그가 그냥 버렸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입수한 D 씨의 휴대폰에선 그가 명품백을 판매하기 위해 지인과 메시지를 나눈 내용까지 확인된 상황이었다.

 

형사 C는 두 번째 진술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궁했고 결국 D 씨가 그냥 버린 것이 아닌 지인에게 판매를 의뢰해 처분한 것을 밝혀냈다. 7월 1일에 D 씨가 당진으로 되돌아온 이유도 가게 안에 있는 현금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고, 다만 그 계획은 제보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는 바람에 실패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B 씨의 계좌에 어디선가 보낸 120만 원의 현금이 입금되자, D 씨가 횡재했다는 생각으로 B 씨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면서 꼬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하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은 오직 돈만이 가장 선명했다.


형사 C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20만 원, 그게 과연 횡재였을까? 범인은 횡재라고 생각했겠지만, 형사 C의 눈엔 그 돈이 하늘이 던진 덫처럼 보였다. 그 돈이 있어 D 씨가 하룻밤 모텔에 묵고 다음 날 부산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그 시간이 생긴 바람에 D 씨는 형사들에게 체포될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에도 형사 C는 수많은 강력 사건을 수사했다. 하지만 밤샘 근무를 하다 전화벨이 울리면 두 자매가 살해당했던 이 사건과 살인범 D 씨의 얼굴이 불현듯 다시 떠오르곤 한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