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형사공탁을 명시적으로 거부했음에도 판결 이후 공탁금을 ‘기습 출금’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먹튀 공탁’ 등을 방지하기 위해 공탁법이 개정됐지만, 되레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5년 개정된 공탁법은 ‘기습 공탁’과 ‘먹튀 공탁’을 막기 위해 회수 절차를 제한했다. 형사소송법도 함께 개정되면서, 공탁이 이뤄질 경우 법원이 반드시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절차가 도입됐다. 공탁금은 ▲피해자가 회수에 동의하거나 ▲공탁물을 확정적으로 수령 거절한 경우, 또는 ▲무죄 확정이나 불기소 결정 시에만 예외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한 뒤 판결 선고 직전 또는 직후 ‘기습적으로 공탁금을 출금’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주거침입 및 절도 사건에서 피해자는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엄벌을 탄원했지만, 선고 하루 전날 공탁금을 수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 같은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선고 이후 기습 출금 사례도 있었다. 성폭력 사건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1,500만 원을 공탁했으나, 피해자가 명확히 수령을 거부하자 재판부는 이를 감형 요소로 보지 않고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판결 선고 일주일 뒤, 피해자는 공탁금을 출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기습 출금’ 사실이 재판부에 통지되지 않아, 양형 판단이 사실과 다르게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이에 따라 공탁관이 공탁금 출급 사실을 재판부에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하는 공탁법 개정안(7908호, 이인선 의원 대표발의)을 발의했다.
법무부도 “제도 악용 방지를 위한 국회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 역시 ‘선고 전 출금’에 대한 통지 의무만을 다루고 있어, 판결 이후 발생하는 ‘기습 출금’에 대한 대책은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탁법 개정 이후 일부 재판부는 기습 출금을 막기 위해 피해자의 수령 거부 의사가 있더라도 선고 직전 공탁금 출금 여부를 확인해 판결문에 반영하고 있지만, 제도화된 기준은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는 “공탁금 출금 사실이 재판부에 통지되지 않는 점도 문제지만,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 피해자가 판결 선고 이후 공탁금을 출금하더라도 이를 제어하거나 반영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본지 질의에 “형사공탁의 경우에도 피공탁자인 피해자는 공탁 본래의 목적에 따라 공탁금을 출금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피해자가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 경우, 피고인은 ‘피공탁자가 회수에 동의했거나 수령 거절 의사를 공탁소에 통고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회수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공탁법 제9조의2 제1항)
하지만 회수 요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절차를 밟지 못해 공탁자가 손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공탁금이 10년간 회수되지 않을 경우 국고에 귀속되는 구조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수령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면, 피고인 측은 신속히 공탁물 회수 신청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JK 김수엽 대표 변호사는 “다른 양형 요소들도 고려되는 것이므로 형사공탁이 반드시 형의 감경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기는 하나, 공탁제도만 놓고 본다면 현재의 공탁제도는 피해자의 임의적 판단과 수령 시점에 따라 피고인의 감형 여부와 경제적 손실이 좌우될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탁이 피고인들의 형식적인 면책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정비도 필요하나 공탁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원하는 선의의 피고인이 정당한 절차 속에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 역시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