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리’라 불린 성폭행범… 20대 아들 딸 둔 가장이었다

대전서는 하룻밤새 3명 성폭행
확인된 피해자 수만 184명 달해
범행 시 수건 자르는 수법 사용
담배 꽁초 DNA, 검거에 결정적

 

짧은 다리로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 애완견을 흔히 발바리라고 부른다. 이밖에 중요한 볼일은 없지만, 이곳저곳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비롯돼 이성 관계가 복잡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게다가 연쇄 성폭행범을 일컫는 말로도 쓰이는데, 이는 ‘대전 발바리’라 불린 이 씨(1961년생) 때문이다.


19년 전인 2005년 4월 17일 밤 대전에서만 3명의 여성이 성폭행당했다며 신고를 했다. 수법, 인상착의로 미루어보건대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이후 이 씨는 2006년 1월 19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한 PC방에서 체포됐고, 대전에서 하룻밤 사이 3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범인이라고 털어놨다.


경찰에 신고, 확인된 피해자만 184명에 달했다.


개인택시를 몰던 이 씨는 1998년 1월 말 한 여성 손님이 ‘택기기사가 지리도 모르냐’라는 핀잔과 함께 요금을 집어 던지자 이에 격분, 2월 7일 밤 피해자 집을 찾아가 성폭행한 뒤 이상한 우월감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이 씨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폭행을 일삼았다. 택시를 몰면서 늦은 밤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눈여겨봤다가 집 우편물을 통해 혼자 사는지 확인하고 주로 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했다. 특히 새벽 4시에서 아침 8시 사이에 맨몸으로 들어가 집 안에 있는 물건 등으로 위협했고, 수건 등을 이용해 피해자 손가락과 손을 함께 묶었다.


2001년에는 투룸에 침입, 집 안에 있던 여성 7명을 묶어 놓고 그중 3명을 성폭행하고 4명을 강제추행하기도 했다.


이 씨는 임산부도, 시부모 자녀와 한집에 살고 있는 부녀자도 서슴지 않고 성폭행했다. 또 피해 여성에게 금전을 요구, 피해자 연락을 받고 돈을 마련해 온 친구마저 성폭행하는가 하면 한번 성폭행했던 여성의 집을 3달 뒤 또 침입해 성폭행,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을 남겼다.


이후 경찰은 범인이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하다는 피해자들의 진술과 범행 후 재빨리 달아났다는 점에서 그를 발바리라 불렀다.


이 씨가 잡힌 건 경찰의 집념과 과학수사 덕이다. 경찰은 2005년 4월 17일, 3명 연쇄 성폭행 현장에서 발견된 체액과 그해 6월 17일 충남 논산 성폭행 피해자 몸에 남은 체액에서 동일 인물의 DNA를 확인했다. 이에 대전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의 유사성을 검토했고, 2004년 1월 4일 광주에서 발생했던 성폭행도 동일 인물의 짓이라는 데 주목했다.


현장에 DNA 자료는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수건을 잘라 손가락과 손을 묶는 이 씨 특유의 수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2004년 1월 4일 현장 CCTV 속 차량과 2005년 6월 17일 논산 CCTV 속 차량이 같다는 사실을 파악, 차주가 이 씨라는 점을 확인했다.


2005년 말 경찰은 차량 소유주 이 씨의 집을 찾았지만, 그는 뒷문을 이용해 도망쳤다. 이에 경찰은 집에서 이 씨 아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수거해 DNA 검사를 의뢰, 지금까지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체액의 DNA와 동일하다는 국과수 감정결과를 얻었다. 이후 이 씨를 전국에 지명수배했고, 결국 그는 19일 오후 4시 30분, 서울 강동구의 한 PC방에서 붙잡혔다.


이 씨는 진술을 꺼린 피해자 등으로 인해 최종 127명을 성폭행(강간 77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라며 사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성폭행 횟수 등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엄벌에 처하길 바라고 있다”면서도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