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상담소 - 곽준호 변호사와 함께]

해석에 따라 유‧불리 달라지는
법 조문, 대응은?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형사 재판의 숨겨진 함정들을 짚어보려 합니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여겨 적극적으로 주장하시지만, 실무에서는 재판부가 경찰과 검찰, 즉 수사기관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쟁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을 잘 모르고 대응하면 진짜 중요한 쟁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퉈보지도 못한 채 재판이 끝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법 조문상으로는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현실 재판에서는 의외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니, 지금 겪고 계신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글을 읽으시면서 천천히 짚어보시길 바랍니다.


Q.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서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마약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는데 꾀어낸 마수대의 수사 방식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A. 재판 과정에서 ‘함정수사’를 이유로 공소기각을 주장하는 장면, 종종 보게 됩니다.


피고인 측에서는 위법한 수사로 기소가 이루어졌으니, 애초에 기소 자체가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항에 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마약 사건처럼 밀행성 유지가 중요한 경우에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함정수사를 시도하는 일이 많아 이 쟁점이 자주 불거지곤 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실제로 함정수사를 쟁점으로 다투었던 여러 사건의 판결문들을 분석해 보면, 법원이 이를 ‘위법’이라고 인정한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변호사 입장에서 보기에도, ‘이건 아무리 봐도 범행할 생각이 없던 사람을 일부러 끌어들인 거 아닌가?’ 싶을 만큼 노골적인 유도였는데도, 정작 법원은 수사기관의 수사 방식에 꽤 관대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대법원의 공식 입장만 보면, 얼핏 피고인에게 꽤 유리하게 느껴집니다.


“수사기관과 연계된 유인자가 피고인과의 친분을 이용해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심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하여 피고인의 범의를 유발했다면, 이는 위법한 함정수사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명확히 못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 적용입니다. 실제로 이 문구에 딱 들어맞는 듯한 사건에서도 법원은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합니다. 결코 쉽게 피고인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인 2023년에도, 수원지법은 함정수사를 주장한 피고인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확인됩니다. 수사기관이 협조자인 여성을 피고인에게 접근시켜 마약류를 구해오도록 유도한 사건이었지만, 법원은 이를 ‘적법한 함정수사’의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이런 사건에서는 재판 분위기를 잘 살펴서 공소기각이 아닌 양형 사유로 강조하는 편이 실익이 클 수도 있겠습니다.


Q. 저는 경찰 수사를 받을 때 전부 자백했었는데 검사가 무슨 이유에선지 일부만 기소했고, 이미 재판이 끝난 뒤에 갑자기 남은 사건을 ‘따로 기소’했습니다. 한 번에 재판을 받을 수 있었는데 형량이 추가될 위험에 놓였으니 공소제기가 위법한 것 아닌가요?


A. 저희가 보이스피싱 등 조직범죄 사건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질문자분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의뢰인들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범행 시기에 따라 조직 구성원이 바뀌거나, 피해자가 뒤늦게 추가로 확인되면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수사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 반성하는 태도로 임했던 피고인 입장에서는, 뒤늦게 따로 기소되어 별개의 재판을 받게 되는 상황이 참 억울할 것입니다.

 

수사기관의 편의에 따라 사건이 쪼개지고, 원래 사건과 병합될 가능성조차 없다면 또 한 번 긴 재판을 견뎌야 하니 이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무척 클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경우 ‘공소제기의 위법성’ 자체를 다투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쟁점 역시, 대법원의 공식 입장은 일견 피고인에게 유리해 보이지만 실제 판단은 그렇지 않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단 대법원은 명확히 이렇게 말합니다.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하여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는 이를 공소권의 남용으로 보아 공소제기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다”라고요.


하지만 막상 피고인이 소추재량권 남용을 주장하고 나서면, 법원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검사가 여러 범죄행위를 일괄 기소하지 않고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여러 번에 걸쳐 분리 기소한 것을 소추재량권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즉, 실제 판단에 있어서는 검사의 공소권 행사에 매우 넓은 재량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쪼개기 기소로 별건 재판을 받게 되었다면, 다소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공소권 남용만을 다투는 전략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기에 위험합니다.

 

따라서 이미 앞선 재판에서 상당한 형이 선고되었다는 점, 수감 생활을 하며 깊이 반성해왔다는 점, 수사 초기부터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는 점 등을 구체적으로 소명하고 형량을 줄이는 전략도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Q. 제가 수사를 받고 있었는데 이사하여 그 뒤 서류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재판이 진행되어 실형이 선고됐고, 저는 갑자기 구치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항소 기간이 지났는데 제가 다시 재판을 받아서 형량을 다툴 수 있는 기회는 없나요?


A. 지금까지는 법원이 수사기관 측에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판단을 해주는 두 가지 쟁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그 반대, 즉 법에서 정한 문구보다 피고인에게 더 유리하게 해석해주는 쟁점 하나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상소권회복청구’입니다. 질문자의 경우에는 항소를 하지 못하고 형이 확정되었으므로 ‘상소권회복청구’를 해볼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45조에서는 피고인이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상소 제기 기간 내에 상소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소권회복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책임질 수 없는 사유’의 범위입니다. 어디까지를 인정할 것인지에 따라 청구가 인용될 수도, 기각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면,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예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소지 변경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는 피고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원은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서 책임질 수 없는 사유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가급적 항소심을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합니다.


제가 진행한 사례 중에도, 의뢰인이 재판을 받는 도중에 실형이 선고될 것이 두려워서 해외로 도피까지 했었는데도, 상소권회복청구 인용 결정을 받아 낸 케이스가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그에 대한 방어책도 함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비교적 유리하게 해석해주는 부분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적극적으로 주장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께 부디 좋은 결과와 행운이 함께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