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을 사회가 떠넘긴 결과 ‘간병살인’이라는 참혹한 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여전히 체계적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국가가 간병 정책의 공공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 2023년 발표한 ‘간병살인의 실태와 특성 분석’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23년까지 17년간 형사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간병살인은 총 228건이다. 이 가운데 부모를 간병하던 자녀가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96건(42.1%)으로 가장 많았고, 부부 간 범행은 72건(31.6%), 장애 자녀를 간병하던 친부모의 범행은 44건(19.3%)이었다.
연평균 간병살인은 2007년부터 2012년 사이의 연평균 간병살인은 6.0건, 2013년부터 2023년 사이는 17.5건으로 약 3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초기였던 2020년에는 연간 30건으로 가장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보고서는 간병인의 72.9%가 50대 이상 중·장년층이며, 간병 대상자의 70.2%가 65세 이상 노인이라고 밝혔다. 특히 간병살인 가해자의 65%가 70대 이상 고령층이었고, 연령대별로는 80대가 26.9%, 70대가 21.5%, 90대가 16.1%를 차지했다.
이는 ‘노노(老老) 돌봄’이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경제적 여력 없이 스스로도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가 더 고령의 배우자나 형제를 돌보다 한계를 넘어서 범죄로 이어지는 구조다.
사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간병살인은 우리 법체계 내에서는 별도로 규정된 범죄가 아니다. 살인죄 또는 존속살해죄 등 일반 형법 조항으로 처벌되며, 범죄 유형에 대한 공식 통계도 경찰대의 해당 보고서가 사실상 첫 시도다. 간병살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나 일탈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간병은 사회적 지원 없이 개인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 보건복지부 기준 일평균 간병비는 12만 2,000원이며, 이를 월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370만 원이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의 중위소득 224만 원을 크게 초과하며, 간병 부담을 떠안는 40~50대 자녀 세대의 소득 대비로도 60%에 달한다.
간병살인이 주로 발생하는 시간대도 독박 간병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오후 9시자정 사이에 가장 많은 46건(20.6%)이 발생했고, 이어 오후 6시9시 29건(13.0%), 자정오전 3시 28건(12.6%), 오전 3시6시 22건(9.9%)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가족 간병인이 혼자서 환자를 돌보며 수면조차 취하지 못하는 시간대다. 폭력이나 살인은 갑작스러운 범행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된 신체적·정신적 피로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간병살인을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환원하는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간병이 더 이상 사적 영역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책임을 요구하는 복지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로유 배희정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간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해 왔다”며 “간병살인의 증가는 개인의 일탈 증가보다는 복지 체계의 실패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비공식 돌봄 체계에 의존하던 기존 구조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며 “공공과 지역사회가 돌봄 서비스에 개입할 수 있는 다각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대응도 시급하다. 일본은 2006년 ‘고령자학대방지법’을 제정해 간병살인을 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2007년부터 경찰청 통계에 독립 항목으로 반영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간병정책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일부 요양보호인 제도에 국한되어 있고, 가족 간병인에 대한 공적 지원은 매우 미비한 수준이다. 이에 따라 간병살인을 별도의 범죄 유형으로 통계화하고, 간병 책임과 지원 체계를 국가가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