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전 남긴 글도 형사재판 증거될까…법원이 본 판단 기준

사망 전 글이 언제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냐
형사재판의 원칙 ‘전문법칙’…예외는 존재

 

“사망 전 작성한 글도 형사재판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사망한 피해자가 생전에 남긴 온라인 글이나 문자메시지가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까. 법원은 일정한 요건이 충족된다면 이러한 자료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생전에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문자메시지와 온라인 게시글을 통해 주변에 상황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 A씨가 사망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쟁점을 맞게 됐다.

 

검찰은 남자친구를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1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과거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한 이력이 있고 피고인과의 갈등이 장기간 이어진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남긴 온라인 게시글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후 병원 사실조회 등 추가 자료를 확보한 뒤 피해자가 사망 전 작성한 게시글이 사건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했다. 특히 해당 게시글이 피해자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고 폭행 경위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생전에 남긴 온라인 게시글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1심 판결은 파기됐고, 피고인에게는 폭행 혐의 유죄가 선고됐다.

 

다만 사망 전 남긴 글이나 메시지라고 해서 모두 형사재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원칙적으로 법정 밖에서 작성된 진술을 담은 서류를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를 '전문법칙'이라고 한다. 당사자가 법정에서 직접 진술하고 반대신문을 거쳐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예외를 두고 있다. 진술자가 사망하거나 질병 등으로 법정에서 진술할 수 없는 경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그 진술이 담긴 서류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요건이 바로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이른바 ‘특신상태’다. 거짓이나 왜곡이 개입될 가능성이 적고 당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반영한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이다. 온라인 게시글이나 문자메시지는 원본과 캡처본 또는 출력본 사이에 내용 변경이 없었다는 점이 확인돼야 한다.


대법원 “디지털 증거 동일성 확보돼야”


대법원도 디지털 문건의 증거능력과 관련해 “디지털 저장매체 원본에 저장된 내용과 출력된 문건 사이의 동일성이 인정돼야 하고 압수 시점부터 출력 시점까지 내용이 변경되지 않았음이 담보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선고 2012도16001).

 

따라서 사망 전 작성된 글이 증거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실제로 피해자가 해당 글을 작성했는지 여부와 글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됐는지가 함께 판단 대상이 된다.

 

예컨대 계정 소유 관계, 작성 시각,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서버 기록, 병원 기록, 주변인과의 문자 내용, 상처 사진, 신고 기록 등이 서로 부합할수록 증거로서의 신빙성은 높아진다.

 

실제 판례에서도 특신상태 인정 여부는 엄격하게 판단된다. 2021년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차용금 사기 사건에서 피해자가 생전에 가족에게 전한 내용을 토대로 한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이 사건 피고인은 지인에게 돈을 빌리면서 출소 후 변제하겠다고 속여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아내와 동생이 수사기관 조사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같은 취지의 진술을 했고, 피해자가 가까운 가족에게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변제를 약속한 내용이 확인됐고, 대여금 소송과 채권양도 등 객관적 자료도 존재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특신상태를 인정했다.


피해자 진술이라도 신빙성 부족하면 배제


반면 사망한 피해자의 진술이라도 신빙성을 뒷받침할 정황이 부족하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2022년 울산지방법원은 강제추행 사건에서 사망한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피해자는 사건 이후 경찰 조사에서 피해 사실을 진술했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망해 법정에서 직접 진술하거나 반대신문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조사 과정에서 일부 번복됐고 사건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며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메시지 내용이 진술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가 형사처벌 의사를 밝히면서도 피고인에게 합의금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된다”며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피고인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법무법인 안팍 안지성 변호사는 “사망 전 작성된 게시글이나 문자메시지는 피해자의 직접 진술이 없다는 점 때문에 법원이 더욱 엄격하게 판단한다”며 “작성자 확인과 객관적 자료가 충분히 뒷받침될 때에만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