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가 자신이 대리하는 민사소송에서 제3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계약서를 당사자 동의 없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더라도, 이는 소송상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하지 않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전모 씨가 이모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변호사는 2022년 6월, 다단계 사기 사건에 연루된 A씨와 B씨 사이의 민사 분쟁에서 피고 B씨를 대리했다.
이 과정에서 소송 상대방인 A씨가 전씨의 조력을 받아 주장하고 있다고 본 이 변호사는, "A씨의 주장은 전씨에 의해 왜곡된 일방적 주장"이라며 "전씨가 변호사 자격이 없음에도 투자 관련 분쟁 사건에서 다수 투자자로부터 사건을 수임해 고소장 작성 등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로 전씨와 또 다른 투자자 C씨 간의 계약서 사진을 법원에 제출했다.
계약서에는 전씨가 소송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C씨가 수령하는 피해보상금의 50%를 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전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도 포함돼 있었다.
전씨는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없다"며, 자신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담긴 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은 명백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B씨와 이 변호사를 상대로 4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은 B씨의 책임은 없다고 봤지만, 이 변호사에 대해서는 30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해당 사건을 대리했던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개인 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에 해당해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해서는 안 될 의무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소송상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정당한 자료 제출한 것으로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1심과 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재판과정에서 소송상 필요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개인정보 제출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해당 계약서는 A씨 주장에 대한 반박 근거로 제출된 것으로, 소송행위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대법원은 해당 계약서가 위법하게 입수된 것으로 보이지 않고, 개인정보 내용도 당사자 특정에 필요한 범위를 넘지 않았으며, 민감정보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정보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개인정보가 법원에만 제출되었고 외부에 유출될 위험도 낮아, 전씨가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정당행위인지 여부는 제출 경위, 목적, 상대방, 정보 범위 등을 종합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이 이러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지적하고 사건을 하급심에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