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분할·위자료 포기’ 명시한 혼전계약서, 효력 있을까?

혼전계약서 있어도 위자료·재산분할 소송 가능
가사 노동과 육아 등도 분할 비율 산정에 포함

 

지난해 재판을 통해 이혼한 부부가 2만6849쌍에 달하면서 결혼 전에 작성한 ‘혼전계약서’의 효력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이혼 시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를 포괄적으로 포기하는 조항이 유효한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7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가 혼전계약서를 이유로 재산분할을 거부당한 여성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는 연애 시절 남편의 제안에 따라 “결혼 후 각자 번 소득은 각각의 재산으로 간주한다”, “집은 남편 명의로 구매하며 아내는 그 대금에 기여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이혼 시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긴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5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파탄에 이르자, 남편은 해당 계약서를 근거로 재산분할을 거절했다.

 

법조계는 혼전계약서가 있더라도 이혼 시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혼인 전 재산관계를 약정할 수는 있으나 이혼 단계에서의 권리 포기까지 일률적으로 유효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법 제829조는 혼인 전 부부 재산의 약정을 허용하면서도 혼인 중 임의 변경을 제한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법원 허가로 수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협의이혼’을 전제로 한 경우에만 효력이 발생한다고 판시했다. 재판상 이혼으로 이어진 사건에서는 효력이 제한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재산분할에 관한 협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차 당사자 사이에 협의이혼이 이뤄질 것을 조건으로 하는 의사표시”라며 “협의이혼이 이뤄지지 않고 당사자 일방의 청구로 재판상 이혼이 선고된 경우, 그 협의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1.1.19. 선고 99다33458).

 

2020년 서울고등법원 역시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협의이혼이 이뤄지지 않고 재판상 이혼이 선고됐다”며 “이 사건 공정증서상의 재산분할 협의는 조건이 불성취돼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원고의 재산분할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고, 피고가 협의에 따른 채무를 이미 이행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배희정 법률사무소 로유 변호사는 “혼전계약서의 ‘각자 번 소득은 각자 재산으로 본다’는 조항이 재산분할을 전면 배제하는 의미로 해석되긴 어렵다”며 “혼인 중 형성된 재산은 부부의 협력 정도에 따라 분할되며, 가사노동과 육아 역시 기여도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산분할청구권과 위자료 청구권은 이혼 시점에서 발생하는 권리이므로, 이를 사전에 포기하는 약정은 효력이 제한될 수 있다”며 “A씨의 경우 법원에 소를 제기해 권리를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