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법•알•못 상담소’ 코너에서는 특정 주제를 정하는 대신 독자분들이 보내주신 개별 질문에 하나씩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보통은 비슷한 주제를 묶어서 정리해 드렸는데, 그러다 보니 계속 답변이 늦어지는 질문들이 있어서 이번에는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자투리 질문들을 모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비록 서신을 통해 직접 질문을 주신 분은 한 분일지라도, 같은 고민을 안고 계신 분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드리는 답변들이 그분들의 답답함을 덜어드리고,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Q.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검찰 조사를 받는 중입니다. 제가 알기론, 조사를 받을 때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제가 답변하기 불편한 건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요? 말주변이 없어서 실수할 것이 걱정되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A. 질문자님의 말씀대로 경찰, 검찰 조사를 받기 전 피의자는 모두 ‘진술거부권’을 고지받게 됩니다.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는 피의자의 방어권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아마 모든 분들이 조사를 받으시기 전 수사관으로부터 “귀하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귀하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합니다”라는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실무에서는 피의자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 조서나 수사보고서에 “피의자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함”이라고 기재됩니다. 이러한 기록만으로 피의자가 유죄로 추단되는 건 아니지만,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 좋지 못한 인상을 줄 수는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침묵하기보다는 실무 상황을 고려하여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즉 진술거부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라기보다는 부당하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 권리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결국 피의자 스스로 억울한 점을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라고요. 억울한 점이 있다면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게 아니라, 수사 과정부터 재판까지 일관되게 반박 논리와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그래야 판사도 피고인의 주장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체포되어 당장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변호사를 못 만나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 것인지 전혀 방향을 못 잡은 경우입니다. 이때는 우선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여 시간을 번 다음, 변호인과 상의 후 2차 조사를 요청하여 본인의 입장을 소상하게 밝히면 됩니다.
정리하자면, 무조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피의자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며, 반대로 무조건 수사기관이 묻는 대로 답변하는 것도 올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기 위해 진술거부권을 적절히 행사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Q. 저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데, 추가 건이 발생해서 수사 접견이 진행됐습니다. 다행히 추가 건은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이 나왔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번에 변호사에게 들었는데, 다시 같은 사건으로 수사가 개시됐다고 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A. 검찰에서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받는 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완전히 끝난 줄 알았는데 드물게 질문자분처럼 같은 사건으로 다시 수사가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미 끝난 사건인데 어떻게 재수사가 가능하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이는 수사에서의 ‘혐의없음’과 재판에서의 ‘무죄 판결’의 의미가 법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무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면 동일한 사건으로 다시 기소하거나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는 헌법 제13조의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자님의 경우와 같이 수사기관에서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은 경우에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수사기관의 결정은 법원의 확정 판결이 아니기 때문에 헌법 제13조 일사부재리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따라서 무혐의 처분인 경우에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동일한 범행에 대해 다시 수사가 개시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경우란 공범의 추가 진술을 확보하거나 이전 수사 당시 확인되지 않았던 금융거래 내역, 통신 기록 등을 확인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단순히 기존에 제출된 증거를 다시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것만으로는 재수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사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된 경우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본인에게 유리한 기록과 자료들은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수사가 다시 개시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게 되면 그때의 경위를 정확하게 기억하기 어렵고 당시 제출했던 자료를 다시 확보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립니다.
미리 준비해 둔다면 다시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므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준비는 해둘 것을 권유드립니다.
Q. 저는 1심 재판에서 무죄 주장을 했는데, 판사가 유죄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도 확인했고 증거로 제출된 내용도 모두 봤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습니다. 지금 유죄 선고가 나온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데, 제가 항소심에서는 어떤 부분을 더 준비해야 하나요?
A. 우선, 원하신 결과를 얻지 못한 점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유죄 판결이 나왔으니 무척 억울하고 답답하실 것입니다. 다만 제가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하며 느끼는 점인데 법률 전문가가 아닌 분들께서 생각하시는 ‘증거’의 범위가 무척 좁은 것 같습니다.
실제 재판에서는 요증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실의 존부를 추론하게 하는 정황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유죄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범죄사실을 바로 입증하지 않더라도 그 사실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여러 간접적인 정황이 판단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은 자유심증주의로, 판사는 제출된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어떤 것을 신뢰할지, 어떤 증거를 근거로 범죄사실을 인정할지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에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질문자분께서 생각하시는 직접 증거의 유무를 넘어서, 어떤 정황이 재판부의 판단 근거로 작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특히 정황증거는 해석의 여지가 넓기 때문에 만약 1심 판사가 잘못 해석한 것이라면 항소심에서는 그 증거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범죄와 전혀 무관한 사실이라는 점을 구체적 자료로 입증한다면 재판부의 판단이 달라질 여지도 충분히 생깁니다.

지금까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혼란을 겪고 계시는 독자분들의 세 가지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질문을 주신 분들 외에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이든 섣불리 단정하거나 포기하기보다 지금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올바른 방향을 잡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사실관계를 차분히 정리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현명하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의 건승을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