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속에 가려진 사건의 진실 찾기

마약수입으로 구속된 외국인 근로자
주범과의 친분으로 공모자로 지목돼

사건 기록에서 발견한 결정적 모순
무죄 판결 이끌며 사건 진실 밝혀내

 

의뢰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구속된 채 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피로가 묻은 얼굴로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국내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로 일하던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이었다. 의뢰인의 혐의는 매우 무거웠다. 의뢰인은 동료들과 공모하여 2000여 정에 이르는 MDMA(일명 엑스터시)를 국제우편물을 통해 수입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상황에 놓여있었다.


범행에 사용된 우편물은 실제로 적발되었고 시가는 약 5700만원이었다. 마약류관리법상 ‘수입’은 단순 투약이나 운반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된다. 의뢰인은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었고, 유죄가 인정된다면 수년의 실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뢰인은 필자에게 본인의 억울함을 강력히 주장했다. 필자가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사건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았다. 의뢰인은 범행 당시 동료의 부탁을 받고 단순히 숙소 인근으로 택시를 불러준 것이 전부였다. 의뢰인은 마약류가 든 국제우편물의 존재조차 몰랐고 실제 수취나 운반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즉 동료들의 범행 과정에 대해 인식하거나 공모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계’였다. 같은 건설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실질적 주범이었고, 수사기관은 의뢰인과 주범들의 평소 친분 관계로 미루어 이들이 사전에 공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로 사건을 확대해석하고 있었다.

 

필자는 수사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다. 우편물의 발송·도착 시점, 통화 내역, 송금 기록, 숙소 주변 CCTV 등 모든 자료를 시간순으로 꼼꼼하게 정리했다. 결국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모순이 드러났다. 마약이 든 국제우편물이 국내에 도착한 시점에는 이미 ‘수입죄’가 성립되어 있었고, 의뢰인이 택시를 불러준 것은 그 이후였다.

 

즉 범행은 이미 종료된 상태로 ‘마약 수입범죄의 실행행위’와 ‘의뢰인의 행동’은 시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이 점은 단순한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으로도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그 이후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범행과 무관하며, 이를 이유로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또한 의뢰인은 범행 논의 과정이나 대금 송금, 우편물 수취 장소 등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수취주소는 의뢰인과 무관한 지역이었고, 송금 내역에도 그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변호인으로서 필자는 이러한 객관적 자료들을 토대로 피고인은 공모관계에 있지 않았으며 단순한 부탁에 의해 택시 호출만 했을 뿐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입증했다.


처음 수사기관의 시각은 완고했다. 그러나 공판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택시 호출 시각과 우편물 도착 시점, 공범들의 대화 기록을 교차 검증한 결과 의뢰인의 진술이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의 재판은 길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필자는 끝까지 의뢰인을 중심에 두었다. 낯선 나라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근로자가 단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을 받게 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끝까지 싸워야 했다.


결국 법원은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필자가 사실관계 및 법리의 측면에서 의뢰인의 무고함을 적극적으로 다툰 결과, 의뢰인의 경우 마약류 수입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공동정범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마약류 수입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법정에서 판결을 들은 의뢰인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 재판이었다. 의심이 아닌 검증, 추정이 아닌 사실, 그리고 ‘공범’이라는 단어 속에 가려진 사건의 진실을 끝까지 찾아내는 것, 그것이 변호인의 역할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