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원본 없이 압수수색”…281억 도박사이트 운영자 무죄

영장 원본 미제시·참여권 침해 인정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거나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는 등 절차적 하자가 반복되면서 형사재판에서 무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전자정보 압수가 일상화되면서 영장 제시 방식, 압수목록 교부, 디지털 자료 선별·반출 절차 중 하나라도 위반될 경우 핵심 증거가 배제돼 대형 사건에서도 공소 유지가 어려워지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청주지방법원 형사3단독 지윤섭 부장판사는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9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9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청주 지역에 사무실 4곳을 마련해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이용자들로부터 약 281억 원을 입금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조직원들은 사이버머니 충전 및 환전 업무를 담당하거나 대포통장 계좌를 모집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투자사기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한 계좌가 도박사이트 환전 계좌로 사용된 사실을 확인하고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청주의 한 사무실에서 해외 IP 우회 접속 흔적을 확인한 뒤 금융기관과 관련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피고인들을 검거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는 압수수색 절차의 적법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피고인 측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당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 원본이 아닌 팩스 사본만 제시한 채 집행을 진행했다며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았고 사건 기소 이후 영장 집행일로부터 3개월~1년 10개월이 지나서야 원본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장 집행일로부터 수개월에서 최대 1년 10개월이 지난 후 원본이 제시된 점을 고려할 때 적법한 압수수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단순히 영장 원본 제시 여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평가한다. 최근 하급심에서는 영장 제시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피압수자 또는 변호인의 참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경우, 압수목록이 즉시 교부되지 않은 경우에도 압수수색의 위법성이 인정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자정보 압수의 경우 저장매체를 수사기관 사무실로 반출한 이후 진행되는 탐색·복제 과정에서도 피압수자의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입장이다(대법원 2019모2584).

 

디지털 포렌식 수사가 확대되면서 범죄 혐의와 무관한 자료까지 일괄 확보한 뒤 사후 선별하는 관행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대법원은 관련성 없는 전자정보를 포괄적으로 확보한 경우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파생된 2차 증거 역시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7도13263).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압수수색 절차 위반으로 서버 자료나 금융기록 등 핵심 물적 증거가 배제될 경우 정황증거만으로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대형 사건이라 하더라도 무죄 선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최근 무죄 판결 상당수는 범행 존재 여부보다 압수수색 절차의 적법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영장 원본 제시와 참여권 보장, 전자정보 선별 절차는 단순한 형식 문제가 아니라 증거의 존부를 좌우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증거 수사가 확대된 상황에서 절차 위반은 곧 공소 유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