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버지(경북북부제1교도소)

 

이 글을 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23년 3월에 구속되었거든요. 같은 해 6월 19일, 제 생일에 아버지께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루게릭병을 앓아 온몸의 근육이 다 빠진 채로 쓸쓸히 돌아가셨어요.

 

저는 집행유예도 있었기에 이번 사건으로 구속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정신 나간 행동을 했거든요. 많은 분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드렸고요. 저를 믿어주시던 목사님, 사모님께서 필리핀에 선교를 가신다고 해서 사택에 몰래 들어가 체크카드 2개를 훔쳤습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며 수용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징역을 살면서도 전 불량아였습니다. 미결 때 징역 3번, 기결 때 4번, 훈방 1번… 징벌방을 8번이나 들락날락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결국 임종도 지키지 못한 천하의 후레자식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직전까지 제 걱정을 하셨습니다. 피해를 입은 목사님과 사모님께 저 대신 용서를 구하셨고, 아프신 와중에도 저만 생각하다가, 저만 기다리다가 그렇게 눈을 감으셨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버지가 늘 힘들고 무서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하는 장남이었고, 두 동생에게도 피해만 주는 집안의 사고뭉치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그게 다 아버지의 바람기 탓에 벌어진 비극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미워했고, 증오했고, 엇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저희 셋을 키워내기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시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아버지의 몸이 망가진 게…. 전 중국집에서 동생들과 짜장면을 시켜 먹으며 엄마의 부재를 이겨내기 바빴기에, 그런 희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막냇동생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날이면 거실에 모여 두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잠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아버지를 원망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공부도 못했고,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도 가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을 망가뜨린 건 아버지가 아닌 저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저는 대들고, 가출을 일삼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마음 편히 잠도 못 주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교도소에 앉아 깊이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인생이 얼마나 쓸쓸했을지 감히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누굴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얼마나 고민되셨을까요. 그렇지만 이젠 아버지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양산과 부산 사이에 있는 장지에 아버지를 모셨다고 합니다. 4월에 출소하는데, 그날 바로 찾아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려고 합니다. 이 안에서도 누군가는 다음 범죄를 계획합니다. 그러나 저는 절실하게 개과천선해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인연들 모두 앞날에 늘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는 전과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스스로 노력하고 수없이 깨어진 끝에 이곳의 모두가 가족들 품에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