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죽은 부모 행세해 예금 인출… 사기죄 처벌될까

피해자 누구냐에 따라 처벌 갈린다
“은행이면 친고죄 아냐”… 유죄 인정 흐름

 

부모 사망 직후 고인 명의를 이용해 예금을 인출한 딸에게 항소심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이정호)는 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A씨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4년 11월 광주의 한 은행에서 사망한 부모 명의 계좌에 접근해 약 3800만원을 이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피해 회복이 충분하지 않고 반성의 태도도 부족하다고 판단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인 행세를 하며 금융기관을 속인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구금 기간 동안 반성의 기회를 가진 점과 일부 금액이 장례비로 사용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금융기관을 기망해 예금을 인출한 범행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가족 간 재산 문제로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사기죄 성립 여부가 문제 된 사안이다. 피해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가 판단의 기준이 됐다.

 

형법은 사기죄에 친족상도례를 적용한다. 피해자가 부모 등 친족일 경우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고인 명의를 이용해 금융기관을 속여 돈을 인출한 경우 법원은 피해자를 다른 상속인이 아닌 금융기관으로 본다. 은행 직원을 기망해 예금을 지급받은 구조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 경우 친족상도례는 적용되지 않는다. 은행은 친족이 아니기 때문에 사기죄는 일반 범죄로 처벌된다.

 

이처럼 동일한 행위라도 피해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지는 이유다.

 

아울러 고인 명의 서명을 사용한 행위는 사문서위조 또는 부정사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법원은 명의자가 사망했더라도 문서가 정상적으로 작성된 것처럼 보이면 위조의 위험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변호사는 “정상적인 상속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예금을 인출할 경우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고인 명의 서명을 사용하는 행위 역시 사문서위조나 부정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