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 법조계에서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 이하 ACP)은 ‘의무로서 존재하지만 행사할 수 없는 권리’에 가까웠다. 기존 변호사법 제26조는 변호사에게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의무’만을 부과했을 뿐, 수사기관의 강제수사에 맞서 의뢰인의 자료를 지켜낼 적극적인 ‘권리’는 명시하지 않았다. 대법원 2024모730 결정은 바로 이 법적 공백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사건은 자산운용사 대표가 부실 펀드 판매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수사기관이 별건 혐의의 영장을 활용하여 변호인과 주고받은 의견서, 진술서 초안, 반대신문 대비 자료 등 약 12만 개의 이메일을 압수한 사안이다. 대법원은 피의자·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에 생성된 형사사건 관련 법률자문 서류를 압수하는 것은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ACP는 단순한 변호사의 윤리적 의무를 넘어,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의뢰인의 ‘헌법적 성역’으로 확립되었다. 문서 보호의 기틀을 세운 것이 2024모730 결정이라면,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5도4422 판결은 그 보호의 범위를 ‘의사소통의 매체’ 전반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더
나는 매주 1회 직접 접견하면서 구속된 피고인을 만난다. 화려한 광고를 보고 큰 로펌을 찾아갔는데 수임료를 낸 이후부터는 구치소에서 변호사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심지어 재판 때마다 변호사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정작 피고인은 자신의 억울함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도 벌어지곤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변호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실제로 직접 구속된 피고인을 매주 만나다 보면 접견실에서만 발견되는 진실이 있다. 형사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와 논리는 바로 이 ‘접견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변호사라고 해도 의뢰인을 직접 만나지 않으면 사건의 진짜 핵심을 놓칠 수밖에 없다. 수사 기록에는 경찰과 검사의 시각으로 정리된 ‘사실’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접견실에서 피고인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보면 단 한 줄의 기록에 숨어 있던 모순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반복하며 진실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형사변호의 시작이다. 실제로 내가 담당했던 사건 중에는 두 번째 접견 때 피고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무죄 판결의
박변: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성헌 박보영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갔던 A씨 사건을 중심으로 사기 범죄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2023년 유명 운동선수가 돌연 15세 연하의 재벌 남성과 결혼을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었는데요, 알고 보니 이 남성은 남자도 아니었고 재벌도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드러난 A씨의 다양한 사기 전력도 화제가 되었는데요. 각 사례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변: 첫째로 A씨는 피해자 1에게 “같이 살자”고 하며 피해자와 혼인할 것처럼 속여 금원을 지급받았는데요. 이는 혼인빙자 사기에 해당합니다. 피해자 2에게는 300만원을 투자하면 6개월 후에 50억원으로 만들 수 있고, 실패하면 500만원을 돌려준다고 하면서 금원을 지급받은 후에 약정한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했는데요. 이는 투자금 사기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 피해자에게는 약속한 기간 안에 변제할 용의가 없었음에도 거짓으로 급전을 빌렸는데, 이는 차용금 사기에 해당합니다. PD: 다양한 사기 범죄를 저질렀네요. 차용금 사기와 투자금 사기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박변: 대여금, 즉 갚겠다는 말로 돈을 빌려 간 경우라면 민사 소송을
아내와 사별 후 홀로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던 일원(가명)씨. 아들은 평소 술과 도박에 빠져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해 왔고, 그 충격으로 일원씨는 결국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병실을 한 번도 찾지 않은 채 도박에만 몰두했다. 반면 딸은 곁을 지켰고, 일원씨는 병실에서 ‘전 재산을 딸에게 물려주겠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겼다. 그러나 아들은 일원씨의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 노름을 했고, 결국 집은 압류됐다. 그 충격 속에서 일원씨는 합병증을 얻어 병실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아들은 유류분 반환청구를 통해 자신의 상속 몫을 받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PD: 아버지를 쓰러지게 하고 병간호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들이 유류분을 달라며 소송을 하겠다고 합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상황인데요. 이번 사건의 쟁점은 결국 유류분이죠? 박변: 네, 유류분은 망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배우자나 자녀 등 상속인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상속 비율입니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특정 상속인에게 재산을 증여해 다른 상속인의 몫이 침해된 경우, 그 침해된 부분을 반환 청구하는 제도입니다. PD: 그리고 조사를 해보니 일원씨가 생전에 딸에게
형사재판에서 피해 규모는 양형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전기통신금융사기처럼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르고 피해액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사건에서는 그 피해의 사회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범죄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다수 피해자에게 장기간에 걸쳐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남긴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에도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형사재판에서는 처벌과 함께 피해 회복 여부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된다. 이는 처벌의 목적이 단순한 응징에 그치지 않고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피해자가 다수이고 피해액이 큰 사건일수록 모든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 피해자는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재판이 종료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일부 피해자와의 합의나 부분적인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양형 판단의 하나의 요소일 뿐, 범죄 자체의 책임을 줄이거나 피해의 중대성을 상쇄하는 사유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PD: 집에 홈캠을 설치한 정은(가명)씨. 그런데 설치 기사가 돈을 받고 홈캠 IP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홈캠에 찍힌 영상들은 곧 해외 사이트에 성인용 영상물로 편집돼 팔려 나가게 되는데요. 정은씨는 “해외 성인 영상 사이트에 네가 나온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홈캠이 해킹당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외에 해당 설치 기사가 다녀간 네일숍 원장도 피해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사생활 유출 피해를 입은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박변: 네, IP 카메라, 일명 홈캠은 자녀나 노인, 반려동물의 안전 상태를 살피거나 범죄를 예방할 목적으로 가정이나 사업장 등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터넷망에 연결된 카메라를 실시간 송출하는 방식으로, CCTV보다 설치가 간단하지만 보안에는 더 취약한 단점이 있어 해킹 피해가 쉽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기능의 편의성, 가격의 합리성, 화질 등에 대한 관심만 있을 뿐 보안의 취약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 다양한 장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범죄자들은 이 점을 노리고 있는데요. 특히 해킹된 카메라의 경우 비밀번호가 단순 반복이나 맞히기 쉬운 패턴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
PD: 오늘 사연은 조영순(가명)씨의 사연입니다. 영순씨는 지인 말자(가명)씨가 해외선물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한번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다가 해외선물거래 종목을 추천해 주는 리딩방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요. “5000만원을 투자하면 5억까지 늘어난다”는 리딩방 관리자의 호언장담을 믿고 돈을 맡깁니다. 그리고 수익이 어느 정도 났을 때 출금을 시도했지만 되지 않았고, 기다렸지만 끝내 투자금을 찾지 못했는데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죠? 박변: 네, 요즘 주식이나 가상화폐, 해외선물거래 등을 이용한 사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금전 피해에만 그치지 않고 가정 파탄, 극단적 선택 등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PD: 영순씨가 투자 사기를 당한 건 맞죠? 박변: 투자사기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긴 합니다. 그런데 영순씨가 한 해외선물거래는 투기성이 높아서 의무교육 이수와 계약당 1700만원 정도의 증거금을 예치해야만 투자 자격이 생기는 등 조건이 엄격합니다. 그런데 이 사안에서는 이러한 조건 없이 투자금만 입금하면 해외선물거래가 가능하다고 믿고 투자한 영순씨에게도 법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습니다. PD:
PD: 오늘은 성폭력 피해자 수진(가명)씨의 사연입니다. 수진씨는 15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을 나간 업체에서 부장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미성년자였던 수진씨는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고, 최근 가해자로부터 “잘 지내냐”는 연락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아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수진씨는 뒤늦게라도 법적 대응을 하기로 결심했는데요. 변호사님, 이 사건의 쟁점은 뭘까요? 박변: 이 사건은 크게 형사상 공소시효 문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 그리고 15년 전 성폭력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입니다. PD: 먼저 형사처벌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은데요. 강간죄 공소시효는 어떻게 되나요? 박변: 강간죄는 원칙적으로 공소시효가 10년입니다. 다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의 경우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피해자가 성년에 달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됩니다. 또 DNA 같은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20년으로 연장될 수 있고, 13세 미만 아동이나 신체적·정신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간은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PD: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박변: 있습니다.
Q. 저는 2024년 8월 23일 특수강간, 상해, 특수주거침입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같은 해 12월 12일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입니다. 그런데 최근 같은 날 고소되었던 별개의 사건인 카메라등이용촬영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피해자는 당시 연인이었고 동일인입니다. 해당 사건에서 피해자가 해악을 목적으로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점이 인정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이 받아들여졌다는 취지의 문서를 받았으나 의견 제출 방법이나 절차를 알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귀하께서는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며 이후 동일한 피해자와 관련된 별도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무죄 판결에서는 피해자가 해악을 목적으로 불리한 진술을 하였다는 점이 인정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형사재판에서의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사실인정의 오류가 있는 경우 이를 시정하기 위한 예외적인 절차입니다. 재심은 재심개시절차와 재심심판절차로 나누어 진행되며 먼저 재심개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