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수사와 재판은 서면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현실상 판사는 일주일에 수십 건의 사건을 재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쪼개서 만나고, 하나의 사건을 짧게는 반년, 길게는 1-2년씩 재판하며, 인사이동 때마다 판사가 바뀐다. 그러니 어느 한 기일에 한 순간 말을 잘 해서 좋은 인상을 주더라도 판사가 다 기억해서 재판에 반영하기 어렵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고 판결문을 작성할 시점에는 대부분 기억과 인상은 휘발되어 희미해지고, 사실상 대부분 기록에 적힌 글들만 보고 판결한다. 그래서 좋은 재판 결과를 받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기록에 남아있는 글이다. 다른 글을 잘 안 보는 판사도 변호사 의견서는 꼼꼼하게 본다. 전관예우도 사라진지 오래라고들 하므로, 좋은 글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커졌다. 판사, 검사, 수사관의 마음을 1센티미터라도 더 움직이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한다. 나는 30년 동안 여러 종류의 글을 꾸준히 직접 써왔다. 대학시절부터 소설을 써서 ‘보헤미안 랩소디’로 제10회 세계문학상을, ‘소설 이사부’로 제1회 매일신문 국제동해문학상을 받았고 장편소설을 4권 출간했다. 판사로서 10여년 이
2017년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의 신호탄이 되었던 모 기업 내 성폭행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당시 피해자의 변호인으로서 가해자의 범행을 입증하고 1심에서 징역형이라는 유죄 판결을 끌어내는 데 조력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9. 5 선고 2018고합875 판결 참조).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정의를 바로 세웠다는 생각에 변호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변호사로서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성범죄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가해자’라는 낙인 뒤에 가려진 억울한 피의자, 피고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성범죄는 그 특성상 물증이 부족하고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인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피의자나 피고인은 제대로 된 방어권 한번 행사하지 못한 채 사회적, 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변호사의 사명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변호사는 무조건 의뢰인을 옹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실의 편’에서 법의 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억울한 피고인은 무죄를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법적 수단을 동
의뢰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구속된 채 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피로가 묻은 얼굴로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국내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로 일하던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이었다. 의뢰인의 혐의는 매우 무거웠다. 의뢰인은 동료들과 공모하여 2000여 정에 이르는 MDMA(일명 엑스터시)를 국제우편물을 통해 수입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상황에 놓여있었다. 범행에 사용된 우편물은 실제로 적발되었고 시가는 약 5700만원이었다. 마약류관리법상 ‘수입’은 단순 투약이나 운반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된다. 의뢰인은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었고, 유죄가 인정된다면 수년의 실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뢰인은 필자에게 본인의 억울함을 강력히 주장했다. 필자가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사건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았다. 의뢰인은 범행 당시 동료의 부탁을 받고 단순히 숙소 인근으로 택시를 불러준 것이 전부였다. 의뢰인은 마약류가 든 국제우편물의 존재조차 몰랐고 실제 수취나 운반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즉 동료들의 범행 과정에 대해 인식하거나 공모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관계’였다. 같
' 변호사로서 가장 마음이 무거운 순간은 성범죄 혐의를 받는 의뢰인을 처음 만날 때다. 억울함과 두려움, 절망이 뒤섞인 눈빛은 사건을 수행하는 내내 잊히지 않는다.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성범죄 피의자가 된 사람, 일을 하며 평범한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중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사람…. 사회적 낙인, 직장에서의 퇴사 압력, 가족들의 의심 속에서 그들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내가 맡은 사건 대부분은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은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은 그 내용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허위로 진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20도2433 판결).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 아래 피의자는 이미 ‘가해자’로 낙인찍힌 채 수사받는다. 피의자의 진술은 ‘변명’으로 치부되지만, 고소인의 진술은 ‘피해 호소’로 받아들여지는 구조적 불균형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는 치밀한 법적 대응으로 의뢰인들의 무혐의
법조인의 길을 오래 걷다 보니 필자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판사로 있을 때가 사람이 더 단단해 보였다”는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법복을 입고 재판정을 바라볼 때는 세상이 놀랍도록 정리되어 보였다.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 보이고, 그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증거’가 보인다. 사실과 증거, 논리와 법리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그 자리는 겉으로는 단단하고 흔들림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가 된 지금, 나는 그 ‘정리된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사정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더 자주 느낀다. 판사로 있었을 때는 기록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보니 그 기록에 닿기 전 의뢰인의 시간과 그가 어떤 사정으로 그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 그 마음의 길을 먼저 보게 된다. 법정 안에서는 정리되어 있던 사건이 변호사에게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판결문에 쓰인 문장은 단정하지만 그 몇 줄의 기록에 불과한 사정 뒤에는 한 사람의 가족, 삶의 무게, 그리고 수많은 감정이 있다. 판사의 일은 냉정하다. 결정해야 하고, 단호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이 책상 위에 쌓이고 각 사건의 피고인, 피해자, 변호인, 검사가 제각각의 입장을 내세운다. 그 속에
현직에 있을 때 교정 인사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곳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며칠 전 후배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직도 개선된 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글을 쓴다. 근무평정을 잘 받는 요직에 있다가 업무 관련 비위를 저질러 징계를 받은 직원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같은 근무지에 배정되고, 승진시험까지 합격한다. 또 일선에서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새벽까지 술자리를 이어가던 사람이 본부의 요직을 돌아다니는 현실을 들을 때면 마음이 착잡하다. 교정의 날을 맞아 언론에서는 ‘수용자가 난동을 부리는 영상’, ‘교도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식판을 던지는 영상’ 등을 내보내며, ‘수용자 100명을 교도관 1명이 담당한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교정본부가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원들을 위해 어떤 실질적 정책을 펼쳤는지는 묻고 싶다. 1990년대 C교도소의 야근 1개 부 인원은 약 50명이었다. 3부제에서 4부제로 전환되며 1개 부 40명 정도로 줄었고, 이후 근무 체계가 몇 차례 개편될 때마다 야근 인원은 계속 줄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1개 부 인원이 26명 내외로, 전체 야근 인력이 56명가량 감소했다. 전국 교정기관의 상황도 대체로 비슷
형사전문변호사로서 법정에 서온 11년, 15000여건의 사건을 마주하며 가장 깊이 새겨진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차가운 구치소 철창을 사이에 두고 의뢰인과 나누었던 절망의 무게, 그리고 마침내 석방이 선고되던 순간 법정을 가득 채우던 안도와 환희의 교차였다. 변호사의 일은 냉랭한 기록과의 씨름이지만, 그 끝은 한 사람의 인생과 그 가족의 삶을 뒤바꾸는 가슴 뜨거운 결과로 귀결된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는 경우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형사소송법 제70조(구속의 사유)). 법조문은 간결하지만, ‘구속’이라는 두 글자가 한 개인에게 가하는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와의 단절, 직장과 생계의 상실, 가족의 해체,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자’라는 낙인과 함께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 이 모든 것이 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한 개인을 덮친다. 변호사에게 구속된 의뢰인과의 접견은 단순한 법률 상담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 선 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을 마주하는 일이며, 그의 무너진 삶을 법리라는 도구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고된 과정의 시작이다.
최근 법무부 교정본부가 ‘교정의 날’을 맞아 공개한 한 수용자의 난동 영상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교정행정의 현실과 방향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영상은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려 애쓰는 교도관들의 고충을 담고 있었고, 교정직의 위험성과 감정노동을 부각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정작 그 영상 안에 담겨야 할 핵심적 메시지가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수용자의 극단적인 행동이 발생하게 된 심리적 배경이나 교정 환경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교도관은 교정시설의 질서를 유지하며 국가 공권력을 가장 밀접하게 수행하는 공직자다. 교도소라는 폐쇄적 공간 속에서 언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긴장 상태를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한다. 수용자의 폭행, 자해, 협박 등 물리적 위협뿐만 아니라 극도의 감정노동과 정신적 소진 역시 교정직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교정당국은 이들의 노고와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방법은, 근본적인 위험 요인을 사전에 줄이는 것이다. 영상 속 수용자는 충동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보였지만, 그 행동의 이면에는 분노조절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때로는 사건의 결과보다 의뢰인의 ‘변화’를 증명해야 하는 사건이 있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랬다. 필자를 찾아온 것은 의뢰인이 아니라, 의뢰인의 가족들이었다. 사건의 1심 판결이 선고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가족들은 필자를 찾아와 간절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꽤 오랜 시간 면담을 통해 확인한 사건의 실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의뢰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를 감금하고 강간을 시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였다. 기록을 살펴보니, 1심에서 의뢰인은 감금 혐의만 인정하고 강간미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강한 처벌 의사를 근거로, 의뢰인의 태도를 ‘책임 회피’로 판단했다. 반성의 부재,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그의 대응이 판결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 결과는 징역 2년의 실형이었다. 항소심을 준비하며 필자는 이 사건의 초점을 ‘사건’이 아닌 ‘사람’에 두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관계만이 아니다. 사건 이후의 태도, 반성, 그리고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은 매우 중요한 사건의 열쇠다. 법은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속
부산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의 신체를 1295회나 몰래 촬영한 남성이 구속됐다. 단순히 성적 충동이 강하거나 일시적 일탈을 저지른 개인의 문제로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뇌의 학습된 함정이 숨어있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쾌락을 느끼는 물질’이 아니라 ‘보상을 예측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물질’이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얻을 때보다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의 순간에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결과가 아니라 탐색과 추구의 감정, 즉 ‘기대의 긴장감’을 강화시킨다. 이 남성의 경우도 성적 욕망 그 자체보다 “이번에도 들키지 않고 찍을 수 있을까?”라는 긴장감과 불확실성이 뇌의 도파민 회로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에게는 촬영의 성공이 곧 ‘보상’으로 연결되었고, 뇌는 그 경험을 기억해 반복 행동으로 강화했다. 그 결과 그는 성적 해소가 아닌 ‘은밀하게 성공했다’는 심리적 쾌감에 중독된 것이다. 도파민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은 ‘금기와 위험’이 결합될 때 반응이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 성공할 때의 쾌감’은 단순한 쾌락보다 훨씬 강력한 신경학적 보상을 준다. 이 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