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4년, 열여덟 살이던 최말자 씨는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어 1.5cm를 절단했다. 하지만 그는 정당방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상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60년 만에 대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최 씨 사건은 1964년 5월 6일 발생했다. 성폭행을 시도하던 남성 노모 씨의 혀를 깨문 최 씨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최 씨를 구속했으며, 법원은 “혀를 절단한 행위는 방어의 정도를 넘었다”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가해자인 노 씨는 특수주거침입죄로만 기소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적, 사회적 맥락에서 최 씨는 성폭력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낙인찍혔고, 6개월간의 구속 생활과 언론의 2차 가해 속에서 평생을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2018년 미투 운동의 여파로 최 씨는 자신의 사건을 다시 조명하기로 결심했다. 60대에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던 그는 사건의 부당성을 알게 되었고,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2020년 재심을 청구했다. 최 씨는 당시 검찰의 불법 구금과 재판 과정에서의 2차 가해를 주장하며 정당방위와 재판 절차의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최 씨는 대법원에 재항고했고, 대법원은 지난 20일 “불법 구금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이 크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불법 구금과 직권남용
대법원은 최 씨가 검찰에 소환된 1964년 7월 초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된 9월 1일까지 두 달 동안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검찰이 조사 첫날 아무런 고지 없이 자신을 구속했으며, 기소된 뒤 재판부는 '남성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남성과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는 등 2차 가해를 했다고 폭로했다.
최씨 사건은 형법학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중요한 판례로 꼽혀왔다.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신의 법익을 방위하는 행위가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는지에 관한 형법 제21조 '정당방위'에 관한 대표적인 판례다.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이 사건은 '강제 키스 절단 사건'으로 기록됐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라도 직권남용 행위가 드러나면 재심이 가능하다. 대법원은 당시 검찰의 행위가 형법 124조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여성 인권과 성인지 감수성의 발전
1964년 당시 법원과 언론은 최 씨의 저항을 “도를 넘은 과잉방위”로 평가하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남성에게 호감을 준 것이 아니냐”, “결혼할 의사가 없느냐”라는 재판부의 발언과 언론 보도에서 드러난다.
반면, 2020년 부산에서 발생한 유사 사건에서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어 3cm를 절단했을 때,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거나 과잉방위로 판단하며 불기소 처분했다.
부산고법에서 재심이 열리면 최 씨의 무죄와 정당방위 인정 여부가 다뤄질 예정이다.
최 씨의 변호인단은 수사 과정에서의 불법 행위와 새로운 증거를 바탕으로 재심에서 무죄를 주장할 계획이다. 변호인단은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씨는 대법원의 결정을 들은 후 “이제 무죄를 향해 나아갈 기회가 생겼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우리 후손이 이런 피해를 겪지 않도록,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