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의 수사반장 [형사 Y 가 발견한 토막 사체의 머리]

경기 시흥경찰서 형사 Y는 2015년 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해 봄, 가족 중 두 명이나 중병을 앓아 그는 혼자서 병간호를 도맡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강력반 생활은 멈출 수 없었고, 피로는 하루하루 그의 몸을 갉아먹듯 쌓여갔다. 체격이 좋고 체력도 타고난 그였지만, 그 시기의 삶은 유난히 무겁고 고단했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소진되는 걸 느끼며, 그는 온몸이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2015년 4월 5일 자정 넘은 시간이었다. 형사 Y는 지친 몸으로 밤샘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급한 전화벨이 울렸다.


시흥경찰서 강력반에 지원요청 바란다는 지구대 경찰의 전화였다. 몸통만 남은 토막사체가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피곤으로 흐릿해진 눈이 순간 선명해졌다. 곧이어 들려온 팀원의 목소리가 그의 등을 떠밀었다.


“형님, 뭔 일이에요? ” Y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토막사체래. 지금 바로 출동 준비해.”
지구대에 신고가 들어온 시각은 4월 5일 00시 05분. 시화방조제에서 주변에 게를 잡으러 갔던 남자의 신고였다. 커다란 고깃덩이 같은 것을 보았는데 돼지몸통인지 사람의 사체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이 사체를 확인하고 다급하게 시흥경찰서 강력반에 지원요청을 했다.


형사 Y는 00시 40분에 출동해 희미한 달빛 아래, 썰물로 드러난 갯벌 한가운데 놓여 있던 몸통만의 사체는 기괴하고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강렬하게 각인됐다. 주변에 흩어진 담배꽁초와 비닐봉지 같은 사소한 흔적들은 단서라기보다는 무질서한 혼란처럼 보였다.


형사 Y는 사체의 발견 위치가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시화방조제는 시화호와 오이도를 잇는 12km 길이의 방조제로, 한쪽은 배들이 드나드는 선착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썰물 때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넓은 갯벌이었다. 사체는 썰물로 드러난 갯벌 위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결코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Y는 사건의 가능성을 두 가지로 좁혔다.

 

하나는 범인이 밀물 때 토막 사체를 유기했으나 물이 빠지면서 갯벌 위로 그대로 드러난 경우였다. 비교적 단순한 설명처럼 보였지만, 두 번째 가능성은 훨씬 복잡했다. 시화호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안산, 시흥 등 주변 지역의 하천과 복잡하게 연결된 수로였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 유기된 사체가 물길을 따라 이곳까지 흘러왔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위치 분석만으로 풀리지 않았다. 사체가 이미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상태로 훼손되었고, 남은 단서 역시 제한적이었다. 몸통만 남아 있어 지문 채취나 얼굴 인식은 불가능했고, 주변에 CCTV도 거의 없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결국, 부검에서 밝혀진 정보는 피해자가 20대에서 50대 사이의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등 부위에 흔치 않은 큰 수술 자국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 수술 자국은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신원을 특정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수사는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시흥경찰서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4월 6일, 공개적으로 사건 제보를 받기로 결정했다. 저녁 뉴스에서는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2015년 4월 6일 밤 9시 20분경, 형사 Y는 당직 근무 중 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낮부터 이어지던 제보 전화들 중 하나겠거니 싶었지만, 이번 내용은 조금 달랐다. 안산 오이도 건너편 전망대에서 마네킹 머리와 닮은 무언가를 보았다는 제보였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다소 흥분된 상태였지만, 제보 자체는 애매했다. ‘마네킹 머리’라는 표현이 신뢰를 주기에는 지나치게 막연했다.

 더구나 제보 장소는 시화호 사건의 중심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시화호에서 발견된 사체와 연관성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장난 전화나 거짓 제보일 수도 있겠군.’ Y는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망설였다. 강력반의 일이란 본래 많은 경우가 “허탕”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이 제보가 사실이라면, 단순히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단서일지도 몰랐다. 결국 형사 Y는 제보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보자가 현장으로 함께 가자는 요청에 벌벌 떨며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Y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무언가 끔찍한 것을 본 사람이라는 것을.


Y는 팀원들과 함께 서둘러 제보자가 말한 해안가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을 아무리 뒤져도 사체의 머리는커녕 마네킹처럼 보이는 물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팀은 머리가 파도에 떠밀려 더 멀리 갔을 가능성을 고려해 수색 범위를 넓혔고, 마침내 밤 10시가 넘어서 해안가 바위 틈에서 유기된 사체의 머리를 발견했다.


Y는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머리 쪽으로 다가갔다. 사체는 눈, 코, 입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고, 마치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였다. 그 표정은 “이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문이 없는 상황에서 신원을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때 Y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의 얼굴 인식 데이터를 활용하면 피해자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곧바로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현장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형사 Y는 곧바로 사체의 머리를 들고 과학수사팀(과수팀)을 찾아갔다. 신원 확인이 급선무였다. 그는 사체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고, 과수팀은 사체의 얼굴을 다양한 각도에서 정밀하게 사진으로 남겼다.


촬영이 끝나자 Y는 주저할 틈 없이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로 연락을 취했다. 사체의 얼굴 사진을 보내며 바이오 안면인식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방법이 마지막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한편, 사체 수색은 머리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서 계속 진행되었다. 그 결과, 머리 발견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사체의 손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과학수사팀은 이 손을 이용해 신원 확인을 시도했고, 지문 감식을 통해 피해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20분 후,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에서도 바이오 안면인식 결과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는 통보가 도착했다. 두 결과는 동일했다. 피해자는 2013년 정식 절차를 밟아 국내에 입국한 중국 국적의 여성이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녀의 남편인 50대 A씨는 2009년에 한국으로 입국했다가, 2013년 중국으로 출국한 뒤 2014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수사팀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A씨를 주요 용의자로 특정했다. 몇 가지 정황 증거도 그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첫째, 피해자가 실종된 이후에도 A씨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다. 둘째, 피해자의 등에 있던 특이한 수술 자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A씨가 경찰의 공개 제보 방송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이었다. 모든 단서가 점차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더구나 형사 Y는 그 무렵 피해자의 조카에게도 한 통의 제보전화를 받았다. 피해자의 조카는 뉴스를 보고 연락을 했다면서 아무래도 등에 수술자국이 있는 사람이 본인의 숙모 같다고 했다. 숙모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아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피해자의 조카는 뉴스를 보고 A씨에게 연락해 숙모가 살해당한 것 같으니 알아보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A씨는 신경 쓰지 말라며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형사 Y는 점점 더 A씨를 의심했다.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A씨 부부의 주거지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A씨는 몇 차례에 걸쳐 수상한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특히 사체 발견 시점 전후로 A씨가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한 행동을 한 것이 명백해 보였다.


4월 8일 이른 아침, A씨가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또다시 CCTV에 잡혔다. 이번에도 그는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형사 Y는 팀원들과 함께 CCTV를 통해 A씨의 동선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향한 곳이 놀랍게도, 시화호 사건 발생 직후 수사팀에 제보를 했던 피해자의 조카가 살고 있는 거주지였다.


A씨는 그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왔는데, 내려올 때는 여행가방이 사라진 상태였다. 상황은 점점 더 의심스러워졌다. 형사 Y는 수사팀과 함께 해당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철저히 수색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옥상 구석에서 A씨가 숨겨둔 여행가방을 찾아냈다. 가방을 열자, 안에는 피해자의 잘린 다리가 담겨 있었다. A씨는 체포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평소 TV를 보지 않아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이 이렇게 큰 사건이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왜소한 체형의 A씨는 겉보기에는 수더분하고 평범한 남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이면에는 깊은 비극과 범죄가 숨겨져 있었다. A씨는 아내가 은행에 입금하라고 맡긴 돈을 도박으로 모두 탕진하고 있었다. 결국 아내가 돈의 출처를 따지며 다투던 중, 그는 2015년 4월 1일 아내를 살해했다.

 

 범행 후 A씨는 다음 날인 4월 2일, 아내의 사체를 토막 내어 유기하기로 결심했다. 오후 5시경, 그는 피해자의 몸통과 옷가지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자전거에 실어 집에서 약 4km 떨어진 정왕천에 유기했다. 이후 머리와 양손발을 각각 담은 쓰레기봉투를 시화지구개발기념공원으로 옮겨 사람이 없는 틈을 타 해안가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사건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는 조카의 전화를 받고 놀라 나머지 사체 부위를 회수하기 위해 조카의 집을 찾았다. 결국 그는 조카 집 옥상에 남은 사체 부위를 숨겼지만, 이 행동이 그의 범죄를 밝혀내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A씨의 범행은 치밀해 보였지만, 잔혹함 뒤에 숨겨진 당황스러운 허술함은 결국 그를 덜미 잡히게 만들었다.하지만 사건에는 여전히 신기한 부분이 있었다.


A씨는 피해자의 몸통을 집에서 불과 4km 떨어진 정왕천에 유기했는데, 이상하게도 피해자의 몸통은 18km나 떨어진 시화방조제 부근 갯벌에서 발견되었다. 그 과정에서 비닐이 벗겨져 사체가 노출된 상태였다.


형사 Y는 이에 대해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미신 같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죽은 피해자의 억울한 마음이 이런 우연을 만든 게 아닐까?” 이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형사 Y는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그동안 몸을 짓누르던 피로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병중에 있던 가족들 역시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일지 몰라도, 피해자의 억울함이 풀린 덕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2015년은 형사 Y에게 두 가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힘겨운 고통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잊지 못할 시화호 토막 사체 살인사건의 해였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이후에도 그는 가끔 이 사건을 떠올리며 조용히 피해자를 위해 기도하곤 한다. “억울한 피해자가 천국에서는 부디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그의 기도는 매번 짧지만, 진심이었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