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시사법률 김혜인 기자 기자 | 수면제가 탄 술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4년간 수감 생활을 해온 김신혜(48) 씨가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박현수 지원장)는 오늘(6일)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서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자백은 강압 수사와 불법적 절차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에서 김 씨의 아버지 A(당시 52세) 씨는 한 버스정류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현장에서는 차량 전조등 파편이 발견되어 뺑소니 사고로 추정됐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수면유도제 성분 '독실아민'이 검출되면서 살인 혐의로 방향이 전환됐다.
사건 직후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자백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이를 번복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재판부는 번복된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김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후 2015년, 김 씨는 강압 수사 및 불법 압수수색 등 위법 수사 정황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경찰은 영장 없이 김 씨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현장검증을 강제로 진행했으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해 김 씨로부터 자백을 받아낸 정황이 드러났다.
이번 재심에서 재판부는 △ 불법 압수수색 및 증거의 위법성 △ 자백의 신빙성 부족 △ 보험금 범행 동기의 부재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피해자가 사망 직전 수면제를 대량으로 복용한 흔적이 없고, 혈중알코올농도 수치가 사망 원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김 씨가 범행 직후 친구를 만나려 한 행적, 보험 설계사였던 김 씨가 보험금 지급 요건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범행 동기가 부족하다는 판단도 내렸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 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부족하다”며 “수사 과정에서의 심각한 위법성과 강압 수사가 드러난 이상, 김 씨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씨의 남동생은 선고 직후 “오랜 시간 억울함을 견뎌낸 누나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오후 전남 장흥교도에서 곧바로 출소한 김 씨는 기자들과 만나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이 수십년 걸려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며 "(아버지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고, 부끄럽지 않게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딸로 살았던 그 세월이 헛되지 않게끔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장흥교도소 정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김 씨는 '낙동강 살인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장동익 씨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