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님 저희 남편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지인의 소개로 연락했다는 한 아주머니였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아주머니의 너무나 간절한 목소리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제 남편이 00시 연꽃단지 조성 지자체 보조금 편취로 검찰에 구속됐어요.”
당시 관리가 허술해 보이는 지자체 보조금을 흔히 ‘눈먼 돈’이라고 부르며 허위 영수증을 첨부해 보조금을 부정하게 타가는 사례가 있었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며 대대적인 감사가 있던 때였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가 이미 많이 되어 있었다. 바로 ‘지자체 보조금 편취사건’이었다.
법조계에선 흔히들 이런 사건을 ‘언론 탄 사건’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건들은 다루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다양한 언론 채널에서 보도되며 아직 혐의가 입증이 되지 않았고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당사자가 유죄인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개인적으로 업무적인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선임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절실함이 마음에 걸려 일단 남편부터 접견해보기로 했다.
성실하고 순박한 농민으로 보였다. 대체 이 사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 저는 연꽃단지 조성 사업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00시 공무원들이 설득해서 하게 된 건데…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남편은 00시의 연꽃단지 조성 사업을 거절했지만 00시 공무원들이 연재배 지원 조건을 들어 설득하자 결국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문제는, 2005년부터 00시에서는 종근 구입 보조금은 기존 재배면적이 아닌 새롭게 증가 된 면적에만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기존의 재배면적에서 생산된 종근에 대해서는 허위 정산자료를 제출해 보조금을 받았던 것이었다. 이분은 당시 그게 규정 위반인지 조차를 몰랐다고 했다.
나는 증거기록을 등사하고 많은 양의 기록을 나하나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관련 기록을 살펴볼수록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쌓였고 결국 이 사건은 무죄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주머니의 남편의 허위 영수증 첨부는 기존 재배면적에서 자체 생산한 종근 비용을 영수증 처리할 방법이 없어 첨부하게 된 것이고,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는 모두 사업 목적에 따라 지출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였다.
자체 생산한 종근비용에 대해서 00시 담당 공무원들도 다각도로 검토했으나 투명하게 처리하는 방법이 없어 타인 명의의 허위 영수증을 정산자료로 인정해주었다는 진술과 객관적 자료도 확보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사건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PT변론을 준비했다.
다행히도 PT변론이 재판부의 심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 했다.
재판부는 일주일 만에 보석 허가 결정을 내렸고 이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보석 허가 결정이 나온 이후였기에 수사검사가 직접 법정에 나와 증인신문 과정에 참여했다.
재판 과정에서 증인들의 진술과 피고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하나둘씩 쌓이자 검사 측이 점점 불리해졌고 검사 측은 공소장 변경을 위한 추가 수사 및 사용 내역을 다시 확인하겠다는 사실조회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공소제기 후의 수사는 단순히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피고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고, 공소 제기 후에는 검사와 피고인이 법정에서 대등한 당사자로 다퉈야 하는데, 피의자가 되어 수서를 또 받는다는 것은 당사자의 지위와도 모순될 뿐 아니라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문제점을 재판부에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재판부 역시 검사의 사실조회 요청을 기각하고 변론을 종결하였다.
드디어 1심 선고일이 다가왔다.

“피고인은 무죄”
아주머니는 남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노력과 진심이 통했다는 안도감과 감격이 몰려와 마음이 뭉클해졌다.
검사의 항소가 있었지만 사건은 최종적으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던 시기에 이 사건을 맡게 되며 여러 힘든 일과 고비도 많았지만, 한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순박한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었던 기억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