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을 해결한 c형사의 꿈

1997년부터 형사 C는 3년 넘게 청와대 내부 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장신의 키와 수려한 외모로 청와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당시 인기 많았던 홍콩 영화배우 곽부성과 유덕화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겉보기에 멋져 보이는 VIP 경호 업무엔 항상 극도의 긴장감과 체력 소모가 뒤따랐다. VIP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그는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2001년, 형사 C는 청와대를 떠나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로 자리를 옮겼다. 경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이다. 사실 형사라는 직업을 어린 시절 꿈꿨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우연한 기회로 형사가 되었을 뿐인 그였지만 형사가 되어 사건 현장에 출동하고 수사를 진행하며 경호업무와는 다른 일에 묘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0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한 사건이 서울 잠원동 한강변의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예기치 않은 살인사건이었다.


2010년 12월 5일 늦은 밤, 친구와 헤어진 A 씨(남성, 20대 중반)는 한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밤길을 홀로 걷고 있었다. 밤이 늦었지만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던 A 씨는 버스비라도 아껴볼까 싶어 집까지 걸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A 씨는 혼자였지만 MP3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덕분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한적한 귀갓길이 평화로운 산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한 그림자가 A 씨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고, 음악에 파묻힌 A 씨는 낯선 그림자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림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A 씨의 등에 날카로운 칼날이 꽂혔다.


등에 꽂힌 벼락같은 고통과 함께 A 씨의 평화로운 밤도 깨졌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본 남자였다. A 씨가 도망가기 시작하자 남자도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고통은 곧 공포로 뒤바뀌었고 A 씨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남자는 A 씨를 집요하게 쫓아와 그의 옆구리와 허벅지를 가차 없이 찔러댔다.

 

A 씨는 끝까지 저항하며 계속해서 달렸다. 그 사이 A 씨의 폐는 깊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가득 찼고 숨은 점점 가빠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A 씨는 자신을 쫓던 남자가 결국 추격을 포기하고 사라질 때까지 버텨냈다. 이후 A 씨가 발견된 곳은 이른 새벽 잠원동의 성당 앞이었다. 쓰러져 있는 A 씨를 지나가던 한 행인이 발견했을 때 그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겨우 붙들고 말했다. “119를 불려주세요.” 그게 A 씨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서초경찰서 강력반에 있던 형사 C는 사건 발생 직후 바로 사건에 배정됐다. 형사 C는 팀원들과 함께 범행 현장과 인근 지역의 CCTV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총 1777대의 CCTV 기록과 6개 노선버스의 CCTV까지 확보해 확인했지만 아쉽게도 결정적인 장면이 찍혀있지 않았다.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단서는 피해자 A 씨와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용의자의 모습이었다. CCTV의 화질이 좋지 않아 용의자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형사 C는 희미한 화면 속에서 용의자의 머리가 빡빡머리에 가까울 정도로 짧다는 특징과 나이키 제품으로 추정되는 빨간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인 정보였고 용의자를 특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어느 순간 용의자는 CCTV 사각지대로 사라져 버렸다. 결국 형사 C의 수사팀은 CCTV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데 실패했다.


형사 C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A 씨에 대한 탐문수사를 진행했다. 혹시나 살인의 원인이 될 만한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본 것이다. 하지만 성실했던 20대 청년 A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하다 할 단서가 나오지 않자 서초경찰서 강력받은 새벽의 잠원동 살인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당시만 해도 ‘묻지마 살인’은 드문 일이었고, 사건의 동기조차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형사 C에게도 부담이었다.

 

형사 C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CCTV에 찍힌 용의자의 사진을 들고 한강변 일대를 돌며 탐문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소위 운동화 마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용의자가 누군지는 모른다며, 다만 그가 신었던 빨간 운동화에 대해선 자신을 보였다.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으로 무엇보다 화려한 색상이 사람들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다는 것이었다. 형사 C는 운동화 사진도 함께 들고 다니며 탐문을 진행했다. 길거리에서, 공원에서, 한강변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형사 C는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늦은 밤 낯선 남자의 칼에 찔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착한 청년의 한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서초경찰서 강력반은 고민 끝에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도주로도 없이 범인이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보면, 용의자가 사건 현장과 가까운 인근 아파트로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었다. 형사들은 인근 아파트 세대를 일일이 방문해 탐문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힘든 작업이었다. 게다가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칠 가능성도 높은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12월 16일, 겨우 잠자리에 든 형사 C는 얼마 자지도 못한 채 ‘헉’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심장은 요동쳤다. 괴이하고도 생생한 꿈이 형사 C의 잠을 깨웠던 것이다. 꿈속에서 형사는 어느 아파트의 현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닫힌 방문을 열었고, 방 안에 있던 웬 남자가 고개를 휙 돌려 형사 C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의 심장은 얼어붙었다. 그 얼굴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의 용의자. 꿈 속에서는 흐릿하기만 했던 용의자의 이목구비가 무척이나 또렷하게 보였다. 형사 C는 숨 막히는 긴장감에 압도되며 꿈에서 깨어났다. 업무와 관련한 꿈이라고는 한 번도 꾼 적 없던 그였기에 이 꿈은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날 아침 형사 C의 꿈 이야기를 들은 강력반 팀장은 안 그래도 새벽에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편안한 얼굴을 하고 인사를 하고 떠나는 꿈을 꿨다는 것이었다. 같은 밤 꿈에서 형사 C는 용의자의 얼굴을, A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형사 C는 생각했다.


하지만 더욱 기이한 일은 현실에서 벌어졌다. 그날 아침, 형사 C는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부터 탐문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집을 거쳐 한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에 들어섰을 때, 형사 C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간밤 꿈속에서 본 그 아파트의 거실 풍경과 똑같았던 것이다. 현관에서 형사들을 맞이한 건 노파와 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머리가 길었고 형사 가 꿈에서 본 용의자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형사 C는 혹 다른 손자는 없느냐고 노파에게 물었다. 노파는 없다고 대답했다. 형사들은 어쩐지 미묘하게 어색한 듯 보이는 노파의 태도가 미심쩍었지만 일단 물러났다.

 

형사들의 촉이 예리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곧장 아파트 세대원 명단을 확인했고, 다른 손자는 없다던 노파의 말과 달리 또 다른 손자인 B 씨가 그곳에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형사들은 다시 노파의 집으로 향했다. 노파와 머리가 긴 손자는 다른 사람은 없다고 짜증을 내며 형사들을 집 밖으로 쫓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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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형사 C의 눈은 다른 것을 포착했다. 안쪽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형사 C는 망설임 없이 그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형사 C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기묘했다. 방안 벽지에는 온통 동그라미 낙서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방에 있던 남자는 형사 C가 꿈속에서 본 용의자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사 C는 순간 턱 하고 막히는 숨을 급히 가다듬었다.


형사들이 B 씨를 현장에서 긴급체포 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형사들은 일단 철수한 후 영장검사를 찾아가 체포영장 발부를 요청하고 12월 26일, 영장과 함께 용의자 B 씨를 체포했다. 용의자 B 씨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해외유학까지 떠난 인물이지만 유학 생활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와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다.

 

그날 형사 C는 용의자 B 씨를 유치장에 보내며 피해자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을 봤던 꿈 이야기를 전했다. 홀어머니와 살았던 피해자 A 씨의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피해자의 인생에 대해서도 전했다. 형사 C는 이를 통해 B 씨의 양심을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날 새벽 사무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던 형사 C를 깨운 건 상황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유치장에 있는 B 씨가 형사 C를 불러 달라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형사 C는 담배타령인가 싶어 대충 몸을 추스르고 유치장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B 씨는 담배부터 찾았다.

 

세 대를 연달아 피우던 B 씨는 형사 C가 돌아가려는 순간, 스스로 범행을 자백했다. A4 5장 분량의 자술서도 스스로 작성했다. 미국 유학생활에 실패한 B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칼을 휘두르는 검술게임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점점 현실과는 단절되어 갔고 유일한 탈출구인 게임 속에서도 패배를 거듭하자 분노와 좌절이 쌓여갔다. 범행 당일, B 씨는 게임에서 연달아 패하자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극도로 흥분한 상태로 집 밖으로 나왔다. 그의 두 손엔 칼 두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B 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B 씨는 범행대상을 A 씨로 바꿨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자백했다. 그러면서 자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형사 C에게 감사의 인사도 남겼다.


이 사건은 증거와 추리, 탐문에 더해 꿈에서 보여진 이상한 장면이 연결고리가 현실에서 풀려갔던 기이한 사건이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연결되어 결국 사건을 해결하고 덕분에 억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 A 씨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수 있었던 이 사건을 형사 C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 이 글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된 코너입니다.